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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동메달을 따면 '죄송'해야 하나?

[取중眞담] 훌륭한 성적을 거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08.08.11 10:26최종업데이트08.08.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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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구촌 최대 축제인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도 베이징 현지까지 날아왔지만 모든 경기에 취재기자를 보낼 수 없다보니 TV는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정보 수집 수단이다.

CCTV(중국중앙방송), BTV(베이징방송)를 비롯해 50여 개의 채널이 하루 종일 올림픽 관련 뉴스와 경기를 중계하고 있기 때문에 TV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관심이 집중된 한국 선수단의 경기나 소식을 TV로 접하는 건 쉽지 않다. 중계되는 모든 경기가 중국 선수단 위주이기 때문이다.

9일 밤 한국에게 첫 금메달의 낭보를 전해준 유도의 최민호 선수는 아직까지도 이곳 TV에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17-26으로 뒤지다가 29-29로 비기는 역전드라마를 펼친 여자 핸드볼 경기나 세계 4위 브라질의 콧대를 보기좋게 꺾어준 여자 농구 경기도 마찬가지다.

사격에서 은메달을 딴 진종오 선수나 10일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 선수는 결승인데다 중국 선수들과 자웅을 겨뤘기에 경기에 이어 시상식까지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나운서 끌어안고 펑펑 운 중국 여자 선수

중국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준 여자 역도선수 천셰샤(48kg). 그는 경기 다음날 CCTV 특설 스튜디오에 나와 시종 웃음을 띠며 즐거워하더니, 사회자의 요청에 노래까지 불렀다. ⓒ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TV를 보며 눈에 띄는 것은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를 하는 중국 선수들의 표정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은 물론 의기양양하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하려는 중국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준 여자 역도선수 천셰샤(48kg)는 경기 다음날 CCTV 특설 스튜디오에 나와 시종 웃음을 띠며 즐거워하더니, 사회자의 요청에 급기야 노래까지 한 곡 뽑았다.

반면 성적이 나쁘거나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참담한 표정이다. 9일 수영에서 예선 탈락한 한 여자 수영선수는 "정말 열심히 훈련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실망했다"며 경기장밖 거리에서의 인터뷰 중에 여자 아나운서의 목을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질문하던 아나운서까지 같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수영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한 장린은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게 못내 분한 모습이 너무 뚜렷했다. 시상식에서부터 잔뜩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그는 기념촬영도 마지 못해 하고 경기장을 서둘러 빠져나갈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장린은 대회 직전까지도 메달권에서 한참 뒤처져 있던 선수다.

그 외에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중국 선수들은 하늘이라도 무너진듯 절망한 표정을 지은 채 대부분 인터뷰를 피하거나 마지못해 인터뷰를 하다가도 말을 끊고 황급히 자리를 떠버리기 일쑤였다. 굳이 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언론이 가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금메달 못 따 죄송하다"니...

▲ 은메달도 괜찮아! 10일 중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공기권총 10m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진종오선수(왼쪽끝). 금메달을 딴 중국선수와 동메달을 딴 북한 선수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중국 선수들만 안쓰러운 것은 아니었다. 한국 선수들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사격에서 은메달을 딴 진종오 선수가 경기 후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에게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단다.

시상식에서도 실망한 표정을 숨기고 유난히 쾌활한 모습을 보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진 선수가 왜 체육회장에게는 죄송하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을까. 그는 자신의 주종목인 50m도 아닌 10m 공기권총에서 올림픽 2회 연속 은메달의 금자탑을 세우지 않았나.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쳐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유도의 최민호 선수는 "메달을 딴 것 만으로도 기뻤는데 주위반응은 그렇지 않았다"며 "금메달과 동메달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압박이 얼마나 컸는지 토로했다.

귀공자 같은 얼굴에 항상 여유가 있어보였던 수영의 박태환 선수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제 잠을 설쳤다"며 "지금에서야 솔직히 말하지만 너무 어깨가 무거웠고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그간 그를 괴롭혀왔던 엄청난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박태환 경기를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했던 이유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혹은 동메달이든 메달은 색깔을 떠나 그 선수가 훈련 과정에서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며 보답이다. 메달을 따지 못하고 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고국으로 발길을 돌린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은메달 아니 동메달에 그쳤어도 시상대에서 금메달 수상자와 손을 높이 맞잡고 흔들며 자랑스러워 하는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을 본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워하지는 말자. 그들의 어깨를 한없이 찍어누르는 그 무언가의 압력이 얄궂기까지 하다.

10일 아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전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못 따면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쏟아질까 하고 가슴 졸이며 결승전을 지켜본 사람이 비단 기자 뿐이었을까.

해묵은 금메달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게 한 블로거의 글을 추천하고 싶다.

진종오 선수가 사격 공기권총 10미터 은메달을 땄다.
아쉬운 은메달이니 이런 표현 정말 쓰지 말자~
물론 쓸 수는 있다.
금메달만 과연 최고인가?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해서 딴 메달이다.
그걸 금 은 동으로 구분해서 주는 것일 뿐~
값진 은메달 귀한 은메달 이렇게 쓰면 안될까?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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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전 : 2008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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