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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던진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야구의 추억, 번외편] 치열하게 살아아온 '야인', 김성근 SK 감독

08.03.27 10:56최종업데이트08.03.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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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팀이 이기고 약한 팀이 지는 것이 '스포츠를 스포츠이게' 하는 핵심이다. 강하고 약함과 무관하게 튀어나오는 승부란 도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강한 팀은 영원한 강팀이고, 한 번 약한 팀은 영원한 약팀인 것이 아님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한 하나의 단단한 질서에 불과해진다. 그저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또 그렇게 된 것을 확인하면 그만인, 멈춰서 있는 고요한 구조 말이다.

한국 프로야구사를 살찌워온 것은 '타이거즈'와 '라이온즈'의 '막강 전설'만이 아니다. 그 강함과 약함을 거꾸로 뒤집어 더 날카로운 도전과 응전의 드라마로 가꾸어온 '돌풍'이 없었다면, 야구장은 그저 하품나는 '세상 돌아가는 법칙'의 축소판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 '분수껏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나 새겨주는 곳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1989년의 돌핀스, 그리고 1996년의 레이더스. 수년간 압도적인 꼴찌의 기록을 이어가다가 문득 우리 야구 역사에서 가장 뚜렷이 기억될 두 번의 거친 돌풍을 일으켰던 두 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형편없는 자금력과 어찌 해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빈약한 선수 자원, 그리고 여러 해 거듭되며 체질이 돼버린 '패배의 관성'에 찌들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김성근'이라는 설계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볼품없는 선수라도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 김성근 감독 ⓒ SK 와이번스


지난 1월 말, 일본 고지현에 차려진 2008년도 SK와이번스 스프링캠프. 장작과 부러진 배트 따위를 모아 피운 모닥불에 중간 중간 손을 녹여가며 다시 배트를 휘둘러야 할 만큼 바람이 차게 불던 야구장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이제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 그러나 여기에서는 투구 폼을, 저기에서는 스윙 자세를 꼼꼼히 지도하다가 또 다음 순간 그물망 앞에서 티 볼을 던지는 그는 아들 뻘 되는 여느 코치들보다도 훨씬 젊어 보였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수란 건, 사람이란 건 말이야, 본능적으로 게으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가 같이 게으르면, 끝나는 거야."

실제로 그는 어느 젊은 선수보다도 부지런했고, 어느 후보 선수보다도 다급해 보였다. 그는 언제나 '지옥훈련'으로 악명이 높았고,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대개의 선수들은 '선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강훈련'을 맛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그의 강요에 못 이겨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몸을 푸는 대신 오대산 계곡 얼음물 속에 몸을 담가야 했던 어느 재일교포 투수는 "칼이 있으면 감독을 찔러버리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을까.

그를 여러 해 겪었던 이들은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지셨다"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만났던 날에도 훈련을 마친 한 젊은 투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주저앉아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 어이가 없어요. 이건 뭐, 화가 나는 게 아니고, 그냥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네요. 말이 안 나오고…"

선수들은 눈 뜨면 야구장에 나와 달리고 던지고 때렸다. 그나마 시간이 되면 짬짬이 라면 한 그릇에 주먹밥 하나를 우겨넣고 미처 목구멍으로 넘기지도 못한 채 다시 나와 달리고 던지고 때렸다. 오후 훈련이 끝나면 간신히 숙소로 돌아와 샤워나 하고 저녁을 먹고는 다시 불려나가 한 시간쯤 김성근 감독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도 끝나면 다시 야구장으로 나가 야간훈련을 했다. 잠이 모자랄 정도로 야구만 하는 일정은 지켜보는 사람마저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지독한 훈련이, 그가 설계하는 돌풍의 연료였다.

"89년 돌핀스, 96년 레이더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야, 사람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이구나. 아무리 무명이고 볼품없는 선수들이라도 이들이 가진 잠재력이라는 게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19승의 신인 최다승 기록을 가진 박정현, 유일한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 기록을 가진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하나인 정명원, 그리고 중간계투로 20승 신화를 만들어낸 김현욱, 그와 더불어 100% 승률 기록을 가진 오봉옥.

철저한 무명이었던 수많은 이름들이 김성근을 만나 이마에 피멍이 들도록 쥐어 박히며 피눈물로 벼려낸 독기로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위업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꼴찌 예약'팀이 우승 문턱까지 돌진하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강한 훈련'에 대한 소신은 그저 '하면 된다'는 70년대식 군인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흔히 자율야구와 관리야구, 이런 구분을 하는데, 그건 의미가 없다고 봐.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관리 속에 살아왔지, 자율 속에 살아오지 않았잖아? 자신이 뜻이 있어서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어디 있나? 학원 가라니까 가고 외우라니까 외우면서 살아가잖아.

그러니까 이건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의 문제점이기도 한데, 선수들도 어렸을 때부터 감독에게 야단맞으면서 감독 뜻대로 오른쪽 가라면 오른쪽 가고 왼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가고 하면서 살아오다 보니까 사고력이 없어. 그런 아이들이 혼자서 뭘 할 수 있나…. 그래서 내가 끊임없이 훈련을 시키면서도 스스로 생각을 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이 밟아가는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걸 빨리 찾는 놈이 강한 놈인데… 그런 놈이 많지가 않아."

▲ 타격지도 일본 고지캠프에서 김성근 감독이 신인 모창민 선수의 타격을 지도하고 있다. ⓒ Sk 와이번스



그는 우울하고 답답한 표정이었다. 강한 훈련, 아니 강한 '관리'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다 열대어를 생수에 넣을 수 없듯, 관리 속에서 살아온 존재가 항상 힘겨워하고 탈출을 꿈꾸면서도 그것을 벗어나서는 삶을 조직해 나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굴레이며 한계일 뿐이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문제의식을 요구하고, 자신이 밟아오는 시행착오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집중하길 당부한다.

그의 '정신교육'은 유명하다. 항상 저녁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미팅'을 가지며 그날 훈련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이어 김성근 감독의 '강의'를 듣게 된다. 그것은 그가 감독을 맡은 팀의 동계훈련에서 항상 되풀이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껏 수백, 수천번 이상 이어져왔을 그 강의의 내용은, 그러나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매일 새로이 책을 읽으며 준비하는 그의 이야기는 대개 자신만의 과정을 돌아보며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에 관한 것이다. 그는 항상 이야기한다.

"야구를 즐겨라!"

야구를 즐겨라, 즐기지 못하면 발전은 없다

'지옥훈련' 속에서 듣게 되는 '즐겨라'라는 충고. 어딘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섬뜩한 미소 속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외치던 유격장 교관의 기억이 떠올라 느낌이 좋지 않았다.

"즐긴다는 것은 이런 거야. 우리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해나가다가 벽에 부닥치면, 이걸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고. 그게 해결이 안 되면 밤에 잠도 오지 않고, TV를 보면서도 그 생각만 나고. 그러다가 그걸 해결하게 되면 엄청난 성취감, 즐거움이 느껴지잖아.

김 작가(기자 본인)도 글을 쓰다가 한 군데서 막히면 그걸 풀어내려고 인상을 쓰고 머리를 쥐어뜯고, 밤새도록 고민하고 하잖아. 그리고 그게 딱 풀리면 희열을 느낄 테고. 그게 바로 즐거움이야. 그 즐거움이 없으면, 끝까지 야구는 남이 시켜서 하는 게 되는 거고, 그러면 발전이 없는 거지."

'자율적으로 하는 야구가 강하다. 그러나 타율적인 존재를 자율적인 존재로 바꾸어주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알고 싶어 하기 전까지는 가르쳐주지 말라'고 했던 교육학자 루소(J.J.Rouseau)의 생각과도 맞닿아있다.

더구나 그는 좀처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며 즐기는 야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이라는 좀체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잠 못 이루고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감독으로서의 자기존재를 즐겨내기 위해서 말이다. 

'기득권'을 뺏었지만, '항명사태' 겪지 않은 그만의 노하우?

2007년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의 김성근 감독 ⓒ SK 와이번스


"나는 가깝게 지내는 게 제일 싫어."

무슨 대인기피증 환자의 자기고백 같은 선언 앞에 당황한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이유를 설명한다.

"가깝게 지내면 서로 용납하는 게 많아지잖아."

그는 항상 혼자서 밥을 먹는다. 선수와도, 코치와도 동석하지 않는다. 공정해지기 위해서다.

"나는 어릴 적에 무지 가난했어. 그래서 도시락 반찬 마련할 형편이 안 돼서 밥에 간장을 뿌려가서 남몰래 가리고 먹었다고. 그리고 자라서도 누구 도움을 받은 적도 없어. 집 떠나서 항상 나 혼자 왔다갔다 했지. 그러면서 부잣집, 힘 있는 집, 배경 있는 집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그런 아이들 보면서 서럽기도 했지. 그래서 내가 약자에게 약한지 몰라. 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아.

물론 2군 가고 야구 그만둔다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 없이도 야구하는 데 지장 없어. 하지만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기회는 줘야 하잖아. 그래서 똑같이 기회를 줘. 신인이든 스타플레이어든, 똑같이 기회 주고 똑같이 벌칙 준다고. 태평양 있을 때는 최고참인 중심타자 김바위가 베이스커버 들어가는 투수에게 고민 없는 토스를 했어. 그래서 집에 가라고 했어. 지난 시즌에는 12승을 하고 있던 레이번을 2군 보냈어. 그래야 공정해져."

그의 공정함은 후보 선수들에게 희망을 보여줬고, 그들을 분발시켰다. 그리고 그의 결벽증적인 철두철미함은 기득권을 무시당한 간판선수들의 불만을 봉쇄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완전한 공정경쟁의 폭발력은 매번 그가 일으키는 돌풍의 뇌관이 되었다. 그것은 학연과 지연의 굴레가 어찌 해볼 수 없이 뒤엉켜있는 야구 판에서 신선한 단면으로 읽힌다. 그러고 보면, '완전경쟁'을 이념으로 삼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고질화된 불공정성의 족쇄에 단단히 묶여있는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선수에게 잘못이 있을 때 불러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야단칠 수 있는 자세야. 그게 되지 않고, 그냥 뒤에서 이야기하고, 중간에 누구 통해서 하고, 야단을 쳐야 하는데 못하고, 그렇게 되면 끝이야."

공정함이라는 것은 단순한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상대의 눈을 직시하며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와 당당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숱한 베테랑들의 '기득권'을 무참히 짓밟아오면서도 단 한 번의 '항명사태'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그만의 노하우이기도 할 것이다.

"관중석에서 보니, 그렇게 하는 게 좋더라고..."

지옥훈련, 정신교육, 야구에 대한 종교적일 정도의 집착. 선수들로서는 겪어보면 항상 '듣던 대로'이고 '상상했던 것 이상'인 김성근 감독. 그럼에도 그는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지난 2007년, 스스로 선수단 내규를 만들어 내걸었다. 팬에게 누를 끼치거나 싸인, 사진촬영을 거부할 경우 30만원에서 100만원까지의 벌금. 팬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200만원에서 400만원까지의 벌금.

원래 돌핀스나 레이더스 시절, 김성근 감독은 언론과 친밀하지 않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고, 팬들에게도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문학구장 3만의 만원관중 앞에서 팬티를 입고 질주하는 파격을 선보였던 이만수 수석코치는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 '과도한 팬서비스'를 이유로 벌금을 문 적이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감독 잘리고, 일본에 가서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고 있었어. 그 때는 다시 감독이 될 거라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팬의 입장에서 보고 있었지. 그런데 관중석에서 누가 '보비' 하고 부르니까 지바 롯데의 보비 발렌타인 감독이 경기에서 지고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도 관중석 쪽으로 모자를 벗으면서 활짝 웃어주더라고. 그런데 그게 좋아 보였어. 입장을 바꿔 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고 추억이 되고, 관심을 갖게 되고, 다시 야구장에 오고 싶을 것 같더라고."

▲ 통산 900승 달성 지난 2007년 6월 2일, 개인통산 900승을 돌파한 김성근 감독 ⓒ SK 와이번스


그는 항상 선수였고, 지도자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승부에 집중했고, 그 밖의 것에 한눈  팔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벗어나서 보는 야구장에서는 다른 것이 보였다.

"나는 그라운드 안에서의 승부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지. 그런데 그걸 벗어나서 보면서 눈이 좀 바뀌었다고 할까…, 그 전에는 비즈니스적인 측면 같은 건 생각도 안하면서 살았는데, 우리 프로야구단이 자꾸 관중도 없어지는데 적자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걸 보면서 프로야구 자체가 존재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아. 그리고 나와 팀의 승부보다도 한국야구라는 큰 틀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하게 되었고 …"

그래서 그는 거액의 FA선수 영입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특이한 감독이며, 구단의 요구가 없는데도 팬에 대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라고 선수들의 등을 떠미는 달라진 감독이다.

"감독님에 관한 책 하나 써도 되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며 사인을 하나 부탁했다. 그는 시원스럽게 흘려 쓴 네 개의 한자 밑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주었다. '일구이무(一球二無)'. 두 개도 아닌, 단 한 개의 공에 모든 것을 걸고 집중하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어느 일본 부인을 만났는데, 그 분이 나한테 SK 와이번스 사람이냐고 묻더니 고맙다면서 이런 얘기를 해. 자기 아들이 구장에 와서 우리 선수들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공이 스탠드로 날아오기에 집어서 던져주었는데, 공을 받은 경완이가 '아리가토' 하고 일본말로 인사를 했나봐.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고마웠던지, 고맙다, 고맙다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잠시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러고는 내 방으로 올라가서 마침 가지고 있던 (이)승엽이 400홈런 기념 배트랑 야구공을 가져와서 사인을 해줬어. 그랬더니 그 부인이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 그래서 '내가 이 팀의 감독입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또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쓴 '일구이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었어. 한 번 던진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번에 주어진 기회가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으로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심하게 된다. 아드님께도 지금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전해 달라.

그랬더니 이 부인이 갑자기 막 눈물을 쏟으시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경기장에 왔던 그 아들이 사실은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오늘 '일구이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눈물이 난다며, 그 글귀를 가훈으로 삼겠다고 하시더라고.

물론 그 부인을 만난 건 완전히 우연이겠지.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고. 그런데 그 글귀를 통해 한 사람, 한 가정에 용기를 주고 힘을 주었다는 것도 참 좋은 인연이 되지 않았나 싶어."

▲ 야간훈련 고지캠프에서 야간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김성근 감독 ⓒ SK 와이번스


창 밖에서는 야구공을 때리는 나무 배트의 '딱', '딱' 하는 소리가 상쾌하게 울리고 있었고, 김성근 감독은 여운이 남은 듯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김응용 감독이 '양지의 야구인'이라면 자신은 '음지의 야구인'이라고 표현하는, 그리고 김인식 감독이 '국민감독'이라면 자신은 '서민감독'이라고 비유하는 김성근 감독. 스스로 말했듯 볕도 없고 국민적 성원도 없는 변두리에서, 수억 짜리 거목들보다는 버림받은 잡목들을 가지고 집을 지어야 했던 불운한 설계자. 그러나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비장한 집중력으로 눈물겨운 돌풍의 전설을, 그리고 다시 곱씹을수록 향이 짙은 우승의 업적을 쌓아올린, 곁에서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외롭고 거친 바람 냄새가 물씬 풍기던 사나이.

어느 대목에서는 투박하고, 어느 구석에서는 거칠어 보이기도 했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노년의 현명함'으로 가득한 사람. 방을 나서면서, 미련이 남아 한 마디 던졌다.

"감독 은퇴하신 다음에, 감독님에 관한 책 한 권 쓰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벌써 등을 돌려 창 밖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선수들로 향하던 얼굴이 엉거주춤 돌아서며 '허 그놈 참' 하는 헛기침을 그대로 얼굴 위에 그리며 피식 웃는다.

"허허, 그럽시다."

인터뷰 끄트머리에 건진, 망외(望外)의 수확이었다.

덧붙이는 글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야구의 추억,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뿌리와이파리), <126, 팬과 함께 달리다>(풀로엮은집) 등이 있다.
김성근 야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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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연재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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