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일제때 군국의 어머니로 그려져"

[인터뷰]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 이재명 명지대 교수

등록 2007.11.15 10:19수정 2007.11.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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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금기어인 '친일연극' 연구에 뛰어든 이재명 교수. 그의 노력으로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의 친일연극 실상이 드러났다. ⓒ 조호진

연극계의 금기어인 '친일연극' 연구에 뛰어든 이재명 교수. 그의 노력으로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의 친일연극 실상이 드러났다. ⓒ 조호진

 

공연예술계의 친일활동을 발굴 연구한 10권짜리 <근대 희곡·시나리오 선집>(2004년 평민사)으로 지난 7일 제3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재명(52)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연극계의 치부인 '친일문제'를 공식 거론하면서 가시밭길을 선택한 그는 자신보다 더 외롭고 힘겨운 상황에서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선배 학자를 기리는 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 상은 영광 일색의 상이 아니라 어둠의 친일역사를 밝히는 데 더욱 매진해달라는 십자가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200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을 방문, 일제말기의 공연대본을 대량 입수하면서 연극사의 '암흑기'로 불리는 일제 치하의 극문화 연구에 불을 밝힌 학자다. 임종국상심사위원회는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연극계의 친일행위 실상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기여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연극계의 오랜 금기어였던 '친일연극'을 암흑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외톨이 학자가 됐다. 그가 연 친일연극 판도라의 상자에는 한국 연극계의 거목(巨木)인 동랑(東朗) 유치진(1905-1974)의 치부가 담겨 있었다. 유치진의 또 다른 얼굴은 '친일연극의 대부'였던 것이다. 또한 월북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발굴하면서 기존의 반쪽짜리 연극사를 재조명하기에까지 이르자 연극계는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치진을 비롯한 공연예술계의 친일문제들을 거론할 때마다 기득권을 쥔 연극사 학술계에서는 외톨이가 됐다"면서 "연극계는 친일청산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대중들의 지지와 힘이 뒤따르고 있는 만큼 친일청산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들이 더욱 분발해야 된다"고 다짐했다.

 

한국은행이 신사임당을 5만원권 초상인물로 선정한 것과 관련해 "송영의 친일작품 <신사임당>에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그려졌지만 잘 살펴보면 조선의 아들딸을 지원병과 정신대로 보내는 군국의 어머니였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면서 대중 이미지로 굳어지고, 화폐 인물 선정에 영향이 끼친 점은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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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연극을 발굴-연구해 집대성한 '근대 희곡·시나리오 선집'(10권)과 유족들의 반대로 싣지 못한 '유치진 희곡'. ⓒ 조호진

친일연극을 발굴-연구해 집대성한 '근대 희곡·시나리오 선집'(10권)과 유족들의 반대로 싣지 못한 '유치진 희곡'. ⓒ 조호진

 

다음은 지난 7일, 14일 두 차례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반쪽짜리 왜곡된 연극사... 월북작가들은 미군정에 쫓겨 북에 갔다"

 

- 수상 소감은.
"'친일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사람들이 학술상을 먼저 받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먼저 받아서 의외이다. 공연예술계의 친일문제에 대해 더 연구하라는 격려와 기폭제로 삼겠다."

 

- 10여년에 걸쳐 국내외 도서관을 뒤지다시피 하면서 자료 발굴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먼지 속의 자료를 뒤지다가 귀한 자료를 발굴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고, 또 새로운 자료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10여 년 동안 자료 찾기에 매달렸다. 특히 미국 국립문서보존소에서 '암흑기'에 해당됐던 일제 강점기 당시의 자료를 뭉치로 발견할 때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귀한 자료를 발굴했다는 보람도 컸지만 학계는 물론이고 언론 등의 무관심에 섭섭함도 서운함도 컸다."

 

- 발굴한 82편의 작품에서 친일작품은 어느 정도인가?
"80% 이상이 친일과 관련된 작품이다. 일제는 조선 민중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대중적으로 효과가 큰 연극을 이용했다. 일제는 친일단체인 '조선연극문화협회'를 내세워 연극경연대회를 3회에 걸쳐 진행했는데,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발굴한 20여 편은 연극경연대회 출품작이었다.

 

20여 편의 출품작은 이 협회 고문이었던 박영희(김기진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조직했다가 탈퇴하면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으로 친일문학 운동에 협력한 인물)가 심사하기 위해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품작마다 박영희의 창씨 개명한 요시무라(芳村香道)라는 이름이 스탬프로 찍혀 있었다.

 

지난 80년대에는 청계천 헌책방에서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영화 시나리오인 <거경전>(巨鯨傳)과 <조선해협>(朝鮮海峽) 등 상영 시나리오 두 권을 입수했다. 이 작품에도 요시무라(芳村香道)라는 이름이 스탬프로 찍혀 있었는데, 책갈피에서 1943년 조선연극문화협회가 요시무라에게 제2회 연극경연대회 출품작인 김태진의 <행복의 계시>를 심사해달라는 공문 한 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 민족적인 작품은 없었는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작품을 쓴 극작가 임선규의 <동학당>은 실패로 끝난 동학혁명과 사랑이야기를 엮으면서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양반집 딸과 상민집 아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동학과 연결되는 작품인데, 당시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극장 주변 여관이 동이 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1941년에 동학을 소재로 한 작품 등장이 의아스러웠는데 '박진'이라는 연출자가 박정양 대감의 자제여서 일제 검열을 피할 수 있었고, 접주들이 나오는 대목이 없어 공연이 가능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학당> 이외에는 민족적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일제의 이중, 삼중의 검열과 감시 하에서 민족적인 작품을 공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 발굴 작품 가운데 월북작가 작품이 많다.
"미군정은 할리우드 영화를 살리기 위해 연극 말살정책을 폈다.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을 차지하면서 연극인들은 무대를 잃었고, 게다가 극장을 차지한 모리배들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삶의 터전마저 빼앗겼다. 자진 월북한 연극도 있었지만 상당수 연극인은 미군정에 의해 쫓겨나다시피 한 경우이다. 월북작가의 20-30% 가량은 사회주의에 동조했고 나머지는 연극을 하고 싶어 올라간 순수한 연극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연극인들을 적극 환영했다. 김일성은 연극을, 김정일은 영화를 좋아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 선전에 연극이 크게 도움 된다는 것을 알고 연극인들을 북으로 불러들여 '인민배우', '공훈배우' 등의 최고 대우를 해주었다. 북한은 친일경력을 묻지 않았다. 정치적 이용가치에 의해 눈감아준 것이다. 전쟁 이후 60년대 들어서 사회주의 연극이 본격 시작되면서 월북작가들은 자연스레 물갈이가 되었다."

 

- 연극사의 재정리를 시도하고 있는데.
"연극인 80% 가량이 월북하고 남한에는 20% 가량이 남게 되면서 반쪽짜리 왜곡된 연극사가 됐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다수 월북작가들은 미군정의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따라서 '월북작가'라는 족쇄로 묶기보다는 정당한 평가를 통해 복원해야 하는데 연극계의 그러한 노력은 전무했다. 남한 연극계는 자신들의 연극을 '정통연극' 곧 '신극'이라고 정리하고, 월북작가들의 연극을 '신파극'이라고 매도하면서 자신들의 시각으로 연극사를 정리했다.

 

이번 발굴을 통해 월북작가들의 작품들이 그대로 공개됐는데 소설에 못지않은 뛰어난 희곡작품들이 많았다. 송영의 경우 소설보다 뛰어난 희곡작품이 많은데도 평론가들은 이를 외면한 채 송영을 소설가로만 연구했다. 문학 순혈주의가 낳은 배타의식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연극작품에 대해서 문학범주에 같이 논의하고 정당하게 평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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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이 설립한 서울예대. 유치진은 연극계의 거목이이기도 하지만 친일연극의 대부이기도 한다. 유치진을 비롯한 친일연극 청산은 연극계의 기득권에 부딪친 상태이며 또한 ,서울예대 출신의 문화권력은 친일청산의 장벽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 조호진

유치진이 설립한 서울예대. 유치진은 연극계의 거목이이기도 하지만 친일연극의 대부이기도 한다. 유치진을 비롯한 친일연극 청산은 연극계의 기득권에 부딪친 상태이며 또한 ,서울예대 출신의 문화권력은 친일청산의 장벽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 조호진

- 유치진의 친일작품이 유족의 반대로 선집에 포함되지 못하고 별쇄본으로 비공식 출간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족 측에서 유치진 전집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거기에 실을 예정이니 선집에서 빼라는 요구에 부딪쳐 별쇄본으로 묶게 됐다. 하지만 지난 93년 서울예대가 9권짜리 유치진 전집을 출판하면서 문제가 되는 친일 작품과 평론 등은 다 뺐다. 과연 친일 작품을 보완해 전집을 출판할지는 의문이다."

 

- 유치진이 설립한 서울예대는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소위 '문화권력'이 형성됐고, 이로 인해 유치진의 친일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각이 있다.
"남쪽 공연예술계의 친일 문제를 거론하는데 있어서 친일연극의 주창자이자 대부인 유치진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가 설립한 서울예대(서울예전)가 작가와 연출가를 배출하는 중심 학교가 되면서 그의 친일을 언급하기 힘든 구조가 형성됐고, 공연예술계의 친일잔재 청산에 장벽이 됐다.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연극계에 끼친 지대한 공헌을 들어 작은 친일문제는 덮자는 기존 논의를 답습하고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유치진 옹호세력이 무조건 덮으려고 하기보다 과오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면 친일문제를 청산하고 미래로 갈 수 있을 텐데 계속 감추려고만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 연극계에 끼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유치진은 1940년 12월 일제의 신체제 정책에 기반해 결성된 조선연극협회 이사와 극작가동호회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친일연극에 앞장선다. 특히 유치진이 대표였던 ‘현대극장’은 친일연극을 표방한 단체로 만주국을 세운 일본을 위한 조선인의 만주이주정책을 장려한 <흑룡강>을 1941년 발표, 친일조직인 일진회를 중심으로 일한(日韓) 합병을 열망하는 작품 <북진대>를 1942년 발표, 친일 관변연극 대회인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서 <대추나무>로 작품상을 수상한다.

 

-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의 경우 친일 교수를 거론했다가 해직의 고통까지 겪었다. 그런 어려움은 없었는가?
"몸소 느끼고 있다. 10권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처럼 유치진을 비롯한 공연예술계의 친일문제들을 거론할 때마다 기득권을 쥔 연극사 학술계에서는 외톨이가 됐다. 발굴한 9권의 자료집을 바탕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대학원 교재로 수업에 활용도 하지만 기존 연극계와 연극사 학술계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고 있다.

 

논문 <현대 연극사의 재검토>(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두 번이나 퇴짜 맞았다. 기존의 연극사와 달리 월북작가 등을 포함해 다룬 연극사 논문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우리 연극사의 정통이 북에 있다는 것이냐' 등의 이유로 논문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오늘의 연극계에는 새로운 시각의 논문조차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다행한 것은 기존 논의에 물들지 않은 젊은 연구자들이 금기시된 이념 등을 재평가하고 재조명하면서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 공연예술계의 친일청산은 어느 정도 진행 중인가.
"작가, 연출가, 배우 등 80% 가량이 북한에 참여하거나 동조하면서 월북하고 나머지 우익  20%가 남한에 남으면서 연극사가 왜곡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연극인이었는데 자숙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80년대부터 친일논의가 일부 있었지만 '암흑기'란 이름으로 덮어두려고 했다. 무엇보다 당시의 연극 대본 대부분이 사장(死藏)되거나 6.25 전쟁과정에서 소실되는 등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번 자료발굴을 통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연극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과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연극계의 친일청산에 대해 예리하게 판단하고 있고, 친일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연극계는 완강히 거부하지만 대중들의 지지와 힘이 뒤따르고 있는 만큼 공연예술계의 친일청산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들이 더욱 분발해야 된다고 본다."

 

- 한국은행이 2009년 상반기에 발행 예정인 5만원권 초상인물로 신사임당을 선정했다. 여성단체들은 신사임당이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라며 유관순 열사를 선정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발굴한 작품 가운데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송영의 작품 <신사임당>이 친일작품으로 분류되었는데, 신사임당은 어떤 인물로 등장하는가.
"1945년 2월 연극경연대회 출품작인 목적극 <신사임당>(申師任堂)에서 신사임당은 고귀한 인품과 인내로 방황하는 남편과 자식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현모양처로 그려진다. 하지만 문맥을 잘 살펴보면 조선의 아들딸 잘 키워서 지원병과 정신대로 보내는 군국의 어머니로 부름받은 것이다. 송영도 작의(作意)에서 '황민화정책의 수용' 차원에서 쓴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일제와 작가가 역사적 인물을 선전도구화한 것이 문제이지, 신사임당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면서 대중 이미지로 굳어지고, 화폐 인물 선정에 영향이 끼친 점은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사임당의 5만원권 화폐인물 선정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화폐인물로 여성이 꼭 필요하다면 여성단체가 촉구했듯이 유관순 열사를 선정하는 게 시대정신에도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향후 계획은.
"1945년부터 50년까지 해방공간과 전쟁공간의 연극사에 대해 준비중이며 학술진흥재단에 프로젝트를 신청중이다. 아울러 '한국근대극문화자료센터'라는 홈페이지 만들어 대중과 학생들의 온-오프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

2007.11.15 10:1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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