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0.4초 대 0.6초의 숨막히는 접전

[포르투갈 3-1 잉글랜드]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차기

06.07.02 08:33최종업데이트06.07.0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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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승부차기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키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페널티 지점으로 걸어간다. 이 골만 넣으면 포르투갈이 잉글랜드를 이기고 4강에 올라간다. 그가 허리를 구부린다. 공을 두 손으로 잡는다. 그러고는 공에 짧게 입맞춤을 한다.

골라인과 페널티 지점과의 거리는 불과 10.97m다. 공이 골라인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0.4초다.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읽고 몸을 날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0.6초다. 0.4초 대 0.6초의 숨막히는 접전, 그 접전의 순간이 펼쳐진다.

나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근래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사실 내게 월드컵은 한국의 16강 진출 좌절과 함께 끝났다. 우리나라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해서 그런지 다른 나라 경기는 좀체 흥미가 나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 삼아 전날 있던 경기를 다음날 언론을 통해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2일·한국 시각) 독일 겔젠키르헨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경기는 아니었다. 외출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묘하다. 경기를 한 번 보게 되니 이내 푹 빠져든다. 사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나도 모르게 한쪽 편을 들게 된다.

나는 포르투갈을 응원했다. 거기에는 일정 부분 방송국 해설자의 입김(?)이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해설자는 포르투갈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8강에 진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포르투갈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8강전에서는 북한과 붙었습니다. 북한이 먼저 3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내리 5골을 허용했습니다. 그중 4골은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가 넣었습니다."

나로서는 분명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북한이 3-5로 역전패했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내가 포르투갈을 응원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느새 포르투갈의 '피구' 선수에게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은 한국에 졌다. 피구는 그라운드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피구를 히딩크 감독이 따뜻하게 안아줬다. 그제야 피구가 엷게 웃었다. 나는 그때 확인했다. 패자의 눈물도 때로는 아름답다는 것을.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은 역대 전적에서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경기는 전·후반, 연장전까지 내내 치열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잉글랜드는 안정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수비를 강화하면서 공격에 치중했다. 포르투갈은 활발한 공격을 펼쳤지만 잉글랜드의 그물망 수비를 뚫지 못했다. 전반전은 그렇게 끝났다.

후반에 잉글랜드의 베컴이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급기야 17분경에는 '루니'가 퇴장 당했다. 잉글랜드는 더욱 수비에 치중했다. 포르투갈은 거칠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 오히려 잉글랜드의 역습에 말려 여러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연장전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총공격을 감행하고 잉글랜드는 사력을 다해 이를 막아냈다.

결국 양 팀은 연장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포르투갈에서는 첫 번째로 시망 사브로자가 찼다. 성공이다. 잉글랜드에서는 프랭크 램퍼드가 1번으로 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실패다. 프랭크 램퍼드가 낙담한다. 동료선수들이 위로해준다.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우구 비아나가 찬다. 아, 이럴 수가! 실패다. 포르투갈 선수들이 낙담한다. 그러나 이내 비아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준다. 잉글랜드에서 두 번째로 오언 하그리브스가 찬다. 성공이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환호한다.

포르투갈의 세 번째 키커로 프티가 나선다. 슛 해보지만, 그러나 어이없게도 골문을 빗나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승리의 여신이 잉글랜드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가 실패하고 포르투갈의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하자 분위기가 반전한다. 급기야 네 번째 키커마저 실패하자 잉글랜드는 망연자실한다.

이제 포르투갈에서는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그가 성공하면 포르투갈은 4강에 올라간다. 나는 손에 땀을 쥔다. 과연 성공할 것인가. 모두 숨을 죽인다. 그러나 정적은 극히 짧았다. 호날두의 슛과 동시에 환성이 터진다. 포르투갈 선수는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잉글랜드 선수는 무릎을 괸 채 어깨를 들먹거린다.

포르투갈이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올라갔다. 포르투갈 국민들은 40년만이라며 열광했다. 기쁠 것이다. 벌써 새벽 5시다. 어차피 오늘은 밤을 새워야겠다. 브라질과 프랑스가 경기를 하고 있다. 어느 팀을 응원할까? (이후 열린 브라질과 프랑스의 8강전에서는 프랑스가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1-0으로 이겼다.)
2006-07-02 08:3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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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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