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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 소리의 비밀 2

<다큐멘타리 이야기> 반포매미에 관한 한여름 보고서 14

02.10.10 04:39최종업데이트02.10.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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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2. 할머니는 돌떡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3.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넘어 오실때까지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1933년 작

@IMG1@이 노래는 윤석중 선생이 1933년 우리네 민간에 전해 내려오던 전래동요를 정리해서 새로이 3절까지 만든 노래다. 이 전래 동요에서 보면 매미 소리가 나온다.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말리려고 마당에 널어 놓은 고추를 먹고는 너무 매워서 호들갑을 피우는 장면이 연상되는 노래다.

여기서 '달래 먹고'는 다소 이상하다. 달래를 먹고 아이들이 왜 저러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구전되어 오던 가사에서는 달래가 아니라 담배였다고 한다. 담배잎을 씹어 보고는 너무 쓰고 맛이 독해서 아이들이 고추를 입에 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난리를 피면서 아이들이 우는 행위를 맴맴이라고 표현한 것인 듯하다. 그만큼 매미는 우는 곤충의 대명사요, 운다는 행위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성어 '맴맴'을 통해서 그 이상의 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매미 소리를 표현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맴맴맴' 혹은 '매엠맴' 등으로 표현한다. 실제로 이전 기사에서 인용한 일간지들의 매미에 관한 기사 중에 하나를 보면 기자도 매미 소리를 '맴맴맴'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맴맴맴'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실제도 소리를 입으로 내 보라고 하면 '매엠맴엠맴' 혹은 '맴~맴~맴~'이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 '맴'이라는 음에 고저를 번갈아주면서 소리를 내게 된다.

'고추 먹고 맴맴'이란 가사도 윤석중 선생이 '맴맴'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노래를 부를 때는 '매엠맴'으로 발음하게 된다. 리듬과 운율상 맴맴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듣는 어떤 매미 소리의 제대로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촬영을 하면서 모든 매미들이 이렇게 울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맴맴맴이라고 우는 매미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전래 동요 속에서는 매미 울음 소리를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매미 촬영을 하기 시작한 지 꽤 흘렀다. 매미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머리를 채우기 시작한 첫번째 의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내가 관찰한 너무나 두드러진 어떤 현상과 간단한 자료 조사가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지난 8월6일 낮 11시. 나무 위 매미들의 생활을 찍기 위한 나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전날 사용했던 카메라를 붐 대 끝에 다는 방법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다. 아예 녀석들이 많이 매달려 있는 나무 아래에 1미터 높이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삼각대를 세운 다음 카메라를 나무에 가만히 매달려 있는 놈에게 맞추어 놓았다. 전날보다 거리는 멀었지만 약간의 망원렌즈 효과가 있는 다른 렌즈를 달아 거리의 문제를 해결했다. 단은 아파트 정원에 사람들이 내놓은 재활용 책상을 이용했다. 안성맞춤이었다.

남은 것은 오디오 픽업 문제였다. 망원렌즈를 사용하므로 뷰파인더에 잡히는 매미의 크기는 바로 근처에 카메라가 다가와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거리는 약간 되기 때문에 한 마리의 매미가 우는 소리를 깨끗하게 픽업할 정도는 안되었다.

이 문제도 나는 붐대로 해결했다. 원래 붐 대라는 것이 붐 마이크를 의미한다. 즉 오디오 픽업을 위한 장비다. 긴 막대기에 끝에 마이크가 달려 있는 것이 일반 마이크와 다른 점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붐 마이크는 그냥 막대기만 있는 것이어서 라인마이크를 그 끝에 달아 매미에 근접해서 녀석의 울음 소리를 녹음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움직임이 명확히 드러났다. 녀석은 울기 시작할 때 꽁지를 위로 치켜 세우고 날개를 활짝 벌렸다. 아주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우는 동안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매미가 사냥을 하는 곤충이 아니어서 그렇지 누가 봐도 마치 적을 공격하려고 준비하는 그런 자세처럼 보였다.

여기서 한 가지 동작과 소리의 일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녀석이 꼬리를 들고 날개를 벌리고 있는 동안 녀석의 소리는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 소리가 좀 잦아지는가 하더니 녀석도 꼬리를 내리면서 날개를 접었다. 동시에 소리도 줄어 들고 결국 잦아들었다.

나의 어설픈 특수 촬영에 포착된 놈은 선창을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오직 멀리서 동료들의 울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따라서 울 뿐이었다. 그리고 울음을 그칠 때도 울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의 울음소리가 자지러들기 시작하면 따라서 울음을 그쳤다.

그다지 줏대가 있는 놈 같지는 않았다. 매에에라고 계속 지속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그 음의 단순함이 놈의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게끔 하는데 부채질을 하는 듯했다.

나중에 해를 넘겨 내가 잠원동에서 진짜 반포로 이사를 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 잠원동 매미를 촬영하던 때의 일이 기억난다. 한 초등학생이 정원의 나지막한 나무들 사이에서 매미를 잡고 있었는데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하고 매미를 좋아하는 녀석을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대뜸 '매미가 좋으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자신의 이야기는 뒤로 한 채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는 매미 무지 싫어해요. 맨 날 매미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해요.' 매미로 인한 소음피해사례였다.

과연 매미 울음소리의 소음피해까지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생겼다. 그래도 곤충의 소리에 불과하고 성인들 대부분에게는 추억 속의 소리로 자리 잡고 있는데 피해까지라고 말할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이미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은 매미 소리를 소음피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8월6일 저녁8시. 야간 매미 촬영을 잠시 접어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매미 소리를 소음이라고 느꼈듯이 비단 나만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매미 소리를 소음피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도시 매미의 소음 피해에 대해 보도된 일간지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IMG2@정말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의외로 도심에서 매미 울음소리의 소음피해를 보도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기사는 소음피해 사례를 다루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매미 울음 소리로 주민들이 밤잠을 설친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야말로 열대야가 심한 날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피해지역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은 반포와 여의도였다. 그리고 매미가 밤에도 울어댄다는 사실을 상당히 특이한 도시현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원래 매미는 햇빛이 있는 낮에 우는 것이 곤충학자들 사이의 정설인데 도시 매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촬영 내내 밤에 우는 매미를 보면서 아마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도시적 환경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신문기사들도 그렇게 보도하고 있었다. 치안을 위해 켜져 있는 가로등이나 밤새 끄지지 않는 빌딩의 불빛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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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연재

박성호의 <다큐멘타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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