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송성영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아주 아주 작은 집이 한 채 있습니다. 바로 딱새의 집입니다. 딱새의 집은 다름 아닌 우체통이랍니다.

얼마 전 우리 집 단골손님인 그들, 딱새 가족들이 다시 날아왔습니다. 집 주변을 오락가락하다가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씨받이 해바라기에 앉기도 하고 저만치 지붕 끄트머리에 그림처럼 살포시 앉아 "찌빗 찌빗 찌빗" 울어댑니다.

'올해도 신세 좀 집시다! 찌빗 찌빗!' 그렇게 울어대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식구들보다 딱새들이 먼저 이곳에 터를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 딱새 가족들이 우리의 단골 손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식구들이 그들의 손님일는지도 모릅니다.

6년 전 우리가 이 집에 이사오던 그 해, 처마 끝에 터를 잡았던 딱새. 그 다음 해는 사랑채 옆 작은 창고 안에 있던 박스 안에 둥지를 틀었고, 또 그 이듬해는 흙벽에 매달아 놓은 마늘 더미 위에, 그리고 못쓰게 된 벽시계를 뜯어 우체통을 만들었던 3년 전부터는 줄곤 그 우체통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왔습니다.

@ADTOP3@
▲ 마늘더미 위에 낳은 딱새알
ⓒ 송성영
ⓒ 송성영
우리 집 딱새는 매년 화실 앞 포도나무에 새순이 오를 무렵이면 어김없이 날아와 둥지를 틉니다. 둥지를 틀기 전에 먼저 집안 곳곳을 날아다니며 둥지틀 자리를 탐색합니다. 안심하고 알을 낳을 수 있는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지요.

나는 3년 전부터 6mm 캠코더에 우리 집 식구들의 단편적인 생활상뿐만 아니라 개, 닭, 가재, 고양이, 딱새 심지어는 개미들에 이르기까지 틈틈이 주변 환경을 캠코더에 담아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자료들은 다큐멘타리나 단편 영화를 만들기 위한 것인데 거기에 빠져서는 안될 주인공이 바로 딱새랍니다. 작년에는 이 딱새를 소재로 '알'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어 '제2회 퍼블릭엑센스 시민영상제'(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회 주최)에서 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사랑채 옆 창고(명상실) 안에 새 집을 짓고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벌레를 잡아다 주는 딱새
ⓒ 송성영
다큐멘타리 형식에 드라마를 가미한 단편영화 '알'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매년 시골 흙집에 날아오는 딱새, 딱새들처럼 즐거운 시골생활을 보내고 있는 한 가정... 아빠는 가끔씩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다. 특히 새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아기 새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사건이 벌어지자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집을 떠나게 된다.

비와 바람과 눈처럼 살고자 했던 아빠, 작중 인물 속의 주인공 어린 '나'는 비와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아빠의 온기를 느끼게 되고...

아빠가 떠난 지 1년,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딱새들이 다시 찾아온다. 이번에는 엄마가 만든 우체통에 알을 낳는다. 새는 바로 아빠의 마음이 전해져 온 것이라 믿게 되고... 그 무렵 아빠의 오랜 도반, 스님이 아빠의 소식을 전해준다.

여름이 다 지날 무렵, '나'는 4개의 알 중, 우연히 빈 우체통 새집에서 부화되지 않은 하나의 새알을 발견한다. 부화되지 않은 알은 순수세계에 푹 빠져 있는 아빠와 같다. 아빠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알속을 떠올리며 '나'는 아빠가 진정 꿈꾸고 있는 세상을 조금씩 깨달아 나간다. 그 세상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순수한 세상이다...


▲ 3년전 부터는 매년 우체통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 송성영
무당새라고도 불리는 딱새는 사람과 가장 친밀한 새들 중의 한 종류입니다. 딱새를 촬영하기 위해 딱새의 집, 우체통 앞에 캠코더를 켜놓고 무한정 고정시켜 놓았는데 10분도 채 안 돼서 날아왔답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캠코더에 위에 앉아다가 새끼가 있는 둥지로 들어가 먹이를 줄 정도였습니다.

예전에는 시골마을 주변에서 딱새를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경운기에 둥지를 틀고 경운기를 뒤 따라다니며 새끼에게 먹이를 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막힌 장면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딱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게 될 무렵이면 시골 마을 곳곳은 때 아닌 가을 들녘처럼 누렇게 변해 갑니다. 모두들 풀밭에 제초제를 치기 때문입니다. 제초제로 인해 푸른 풀들이 누렇게 죽어 있으니 거기에 딱새의 먹이가 될 만한 벌레들이 살 수 없게 되는 것이고 당연히 딱새들도 그 주변에는 둥지를 틀지 않게 됩니다.

우리 동네에서 유독 우리 집에만 딱새가 날아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전혀 제초제를 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으니 풀들이 싱싱하게 우거지게 되고 또 거기에 딱새들의 먹을거리인 이런저런 벌레들이 풍부하게 살아가게 되고, 결국은 그것들을 기반으로 딱새들이 둥지를 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헌데 아침마다 날아와 우체통 집을 손보던 딱새들의 날개짓이 뜸해졌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뒷편 밭주인이 제초제를 대량 살포한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새는 다시 날아올 것입니다. 다시 날아와 폭신한 둥지를 만들고 거기에 대여섯 개의 알을 낳을 것입니다.

▲ 우체통 속의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암컷
ⓒ 송성영
▲ 딱새는 암수가 번갈아 가며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 다 줍니다.
ⓒ 송성영
나는 올해도 우리 식구들과 함께 그 딱새 알을 바라보면서 꿈꾸게 될 것입니다. 알속처럼 티없이 맑은 세상을 꿈꿀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맑고 깨끗한 세상을 꿈꿀 것입니다.

딱새의 알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알'을 만들 때, 알 속에는 가장 맑고 깨끗한 세상이, 또한 가장 너른 세상이 담겨져 있다고 했더니 우리 집 아이들이 내게 물었습니다.

"아빠, 그게 어떤 세상이야?"
"서로 서로가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게,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
"알 속에 진짜로 그런 세상이 있어?"
"그~럼, 알 속에도 있고, 니 마음 속에도 있지..."
"에이, 뭔 소린가 하나도 모르겠네..."

ⓒ 송성영
그렇게 아이들은 딱새를 통해 세상을 향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딱새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세상 만들기의 첫발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