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여자프로농구는 은행팀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실제로 WKBL에는 역대 최다우승팀 우리은행 우리원을 비롯해 신한은행 에스버드, KB스타즈 같은 은행팀이 있고 하나원큐 역시 하나은행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KDB생명 위너스가 해체됐을 때도 이를 인수한 기업 역시 다름 아닌 부산은행이었다. 현재 WKBL에는 삼성생명 블루밍스만 홀로 외롭게 '비은행구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KDB생명을 인수한 BNK 썸이 지난 시즌 창단 네 시즌 만에 처음으로 챔프전에 진출한 데 비해 지난 2012년 신세계 쿨캣을 인수했던 하나원큐는 11시즌 동안 한 번도 플레이오프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5-2016 시즌은 '첼시 리 사태'로 시즌 자체가 몰수 처리됐고 정규리그 3위에 오른 2019-2020 시즌은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종료되면서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않았다. 

이런 불운과 부진 속에 하나원큐는 2021-2022 시즌 5승 25패에 이어 지난 시즌에도 6승 24패로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나원큐는 지난 4월 FA 시장에서 베테랑 포워드 김정은을 영입했지만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많은 농구팬들로부터 최하위 후보로 지목 받고 있다. 과연 하나원큐는 만년 꼴찌 후보라는 오명을 씻고 이번 시즌 다른 구단들과 농구팬들을 놀라게 하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강이슬 떠나고 2시즌 연속 최하위 수모
 
 팀 내 최고 연봉선수 신지현은 이번 시즌에도 하나원큐의 에이스로 활약할 예정이다.

팀 내 최고 연봉선수 신지현은 이번 시즌에도 하나원큐의 에이스로 활약할 예정이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하나원큐는 2020-2021 시즌 11승 19패의 성적으로 5위에 그치며 또 한 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비록 3위에 올랐던 2019-2020시즌(.407)에 비하면 승률(.367)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팀들이 편하게 이길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하나원큐가 2020-2021 시즌 리그에서 복병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18.2득점 7.1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7.9%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던 강이슬(KB)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강이슬은 2012-2013 시즌 프로 데뷔 후 몰수처리됐던 2015-2016 시즌을 제외하면 한 번도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못했다. 리그 최고의 3점슈터로 군림하던 강이슬에게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소속팀의 전력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강이슬은 2020-2021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어 계약기간 2년에 연봉총액 3억 9000만 원의 조건에 KB로 팀을 옮겼고 이적 첫 시즌에 그토록 원하던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강이슬이 팀을 떠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팀은 하나원큐였다. 당장 평균 18득점을 책임지던 팀 내 최고 득점원을 잃은 하나원큐의 전력은 더욱 약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강이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FA로 영입한 슈터 구슬(신한은행)은 2경기 만에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새로운 에이스 신지현이 17.77득점 5.23어시스트로 고군분투했지만 하나원큐의 최하위 추락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하나원큐는 2021-2022 시즌이 끝나고 신지현마저 FA자격을 얻었다. 자칫하면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해 팀의 간판으로 성장한 '자체생산스타' 두 명을 차례로 다른 팀에 빼앗길 위기에 놓인 것이다. 강이슬에 이어 신지현마저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하나원큐는 작년 4월 계약기간 3년에 연봉총액 4억 2000만 원의 조건에 신지현과 FA계약을 체결했다. 다소 과한 계약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하나원큐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신지현 재계약과 감독교체 외에는 이렇다 할 전력보강을 하지 못한 하나원큐는 시즌 개막 후 16경기에서 1승 15패를 기록하며 WKBL 역대 최저승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나원큐는 후반기 14경기에서 5승을 추가하며 역대 최저승률의 불명예는 면했지만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치면서 약체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11.5득점 6.4리바운드로 활약한 프로 3년 차 정예림의 성장이 지난 시즌 하나원큐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김정은-엄서이-김시온 영입하며 탈꼴찌 도전
 
 지난 시즌 우리은행 우승의 주역 김정은은 6년 만에 친정팀 하나원큐로 컴백했다.

지난 시즌 우리은행 우승의 주역 김정은은 6년 만에 친정팀 하나원큐로 컴백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22-2023 시즌이 끝나고 열린 FA시장에는 2년 전 하나원큐를 떠났던 강이슬을 비롯해 혼혈 선수 김한별(BNK), 만능 포워드 김진영(신한은행) 등 대어급 선수들이 대거 FA자격을 얻었다. 모두 하나원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이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좋은 조건을 제시한 원소속팀에 잔류했다. 하나원큐는 과거 신세계와 하나은행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정은을 계약기간 2년, 연봉총액 2억 5000만 원에 복귀시켰다.

김정은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신세계에 입단해 2012년 팀이 하나은행으로 인수된 후 2017년까지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선수다. 어느덧 김한별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 고참 선수가 된 만큼 전성기 시절의 폭발적이고 꾸준한 득점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공격력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어린 유망주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을 만큼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팀 내 FA 김예진이 KB로 이적한 하나원큐는 김예진의 보상선수로 2001년생의 젊은 포워드 엄서이를 지명했다. 엄서이는 골밑에서 주로 플레이하는 선수 치고는 신장(176cm)이 작은 편이지만 이를 힘과 투지, 몸싸움으로 극복하는 언더사이즈 빅우먼이다. 엄서이가 양인영과 함께 하나원큐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 준다면 나이가 들면서 외곽플레이가 늘어난 김정은의 활동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신지현과 김애나, 정예림에 무릎부상 후 재활 중인 지난 시즌 신인왕 박소희까지 가드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하나원큐는 지난 9월 BNK에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주고 가드 김시온을 영입했다. 지난 시즌 BNK에서 평균 21분을 소화하며 4.87득점 2.4리바운드 3점슛성공률 39.7%를 기록했던 김시온은 안정된 플레이가 돋보이는 듀얼가드로 공수에서 하나원큐의 가드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다.

네 시즌 연속 최하위에 허덕이던 우리은행이 통합 6연패를 달성한 강팀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은 바로 패배의식을 버린 선수들의 달라진 자세였다. 지난 두 시즌 동안 11승 49패를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독보적인 꼴찌에 머물렀던 하나원큐 역시 '패배의식'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하나원큐가 매서운 눈빛으로 끈질기게 달려 들어 상대를 괴롭힌다면 최하위에서 벗어나는 날도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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