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포스터.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포스터.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범죄도시 시리즈>의 성공 이후로 '한국 영화 부활의 신호탄'이라는 표현이 왕왕 보이고는 한다. 1년 간격으로 개봉한 시리즈의 2편과 3편이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니, 이 시리즈가 관객들을 다시금 극장으로 이끌었음에 이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한들 그것만으로 한국 영화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는 걸까? 흥행의 배턴을 이어받아 우리와 함께 달릴 다음 주자가 없다면, 그것은 결국 '한국 영화'가 아니라 '범죄도시 시리즈'만의 성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우려와 달리, 다행히도 한여름의 극장가는 예전처럼 관객들로 북적였다. 그 속에는 <엘리멘탈>이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같은 외화들의 힘도 다분히 있었지만, <밀수>로 시작하여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이어진 대작들의 릴레이 개봉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해주었다. 그 이후로도 조용히 호평을 이어가는 <달짝지근해: 7510>이나 장르적 다양성을 더해준 <잠> 등이 명절 전까지의 공백을 알차게 메워주었고, 차근차근 한국 영화계는 부활의 계단을 올라갔다.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스틸컷.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스틸컷.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문제는 추석 시즌의 1번 주자가 배턴을 받아들기는커녕 아예 라인을 이탈하여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이다. 경쟁작들보다 일주일 먼저 우리를 찾아온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사실 한국 영화계에 있어 나름의 도전일 수 있었다. 돌고 돌아 반복되는 것이 유행이라 한다면, 20년 전의 소위 조폭 코미디를 어떻게 변주하여 끌어올 수 있을지. 7월에 촬영을 시작하여 동년 9월에 개봉하는 속도전이 앞으로의 영화 제작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이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떼어놓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도전의 결과만으로 작품을 관람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어떠한 도전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그저 20년 전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그대로 펼쳐놓고 시대착오적인 유머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짝짓기에 목을 매었고, 등장하는 인물마다 시쳇말로 '섹드립'을 뱉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가문의 존속과 계승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없이, 어째서 저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혼인을 강요하며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감독은 재미라도 발견해 주길 바랐을까. 아니면 그런 바람조차 없이 그저 과거작을 복사하고 붙여 넣었을 뿐인 걸까.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스틸컷.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스틸컷.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이 영화를 이야기하며 섹드립, 화장실 유머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음담과 욕설을 제외하면 영화에 남는 대사가 몇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질이든 양질이든 일단은 드립이고 유머였기에 듣는 이를 웃게 하는 것이 목표였겠지만, 애석하게도 영화 속 대화를 들으며 올라온 것은 오로지 불쾌함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섹드립 자체가 불쾌해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섹드립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동엽 씨의 개그를 보면서는 나도 몰래 사춘기 아이처럼 웃고 끄덕이게 되니까. 그렇다면 대 무엇이 달랐기에 <가문의 영광: 리턴즈>의 유머에는 웃어 보일 수가 없던 걸까.

신동엽 씨의 태도에는 여유로움이 있었고 또 능청스러움이 있었다. 그는 대개 직접적인 묘사를 피한 채 상대가 문득 알아차리게끔 한 발자국을 남겨 놓는데, 덕분에 그는 선을 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우리는 우리에게 편한 방식으로 그의 개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가문의 영광: 리턴즈>의 홍덕자(김수미) 일당은 강압적인 조폭의 옷을 입었기 때문인지 유머까지도 관객에게 욱여넣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아직도 프로이트의 항문기에 머물러 있던 걸까. 그저 성적인 특정 단어를 외치거나 "했냐? 잤냐? 좋았냐?" 같은 대사를 코미디라 늘어놓았으니, 웃음의 역치에 관계없이 약간의 씰룩거림조차 나올 리 만무했다.

생각해 보자. 불이 꺼진 엘리베이터에서 비상 버튼을 찾겠다며 상대 가슴을 주무르는 것이 과연 그렇게나 웃긴 일인 걸까. 혹시라도 이런 것을 레트로라 생각한다면, 말을 끊고 냅다 키스를 해버리는 것이 아직도 마초적이라 생각한다면, 부디 다음 작품 전에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이제 그만 타임머신에서 빠져나오기를 부탁드린다.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포스터.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포스터.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개봉 전부터 이어진 배우들의 발언이나 예고편 속 분위기에서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볼 수 있다. 작품성도 없고 개연성도 없으며 그 공백을 저질스러운 화장실 유머와 김수미 배우 특유의 욕설, 그리고 온갖 장르에서 베껴온 조각들로 채워 놓았다. 심지어 짧은 제작 기간 탓인지 음향에 문제가 있어 배우들의 대사가 뭉개졌고, 김수미 배우의 연세 탓인지 이제는 속사포의 욕들을 알아듣기조차 힘들었으며, 의미 없는 카 레이싱과 얏빠리(추성훈)의 <범죄도시> 식 액션은 극의 색과 조금도 어우러지지 못했다. 완성도를 배제한 채 이것저것 감독의 욕심만을 가득 담은 이 포트폴리오는 결단코 합격점이 아니었다.

앞으로 찾아올 추석 대작들을 둘러보면, <가문의 영광: 리턴즈>만큼 명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웃음을, < 1947 보스톤 >이 눈물을, <거미집>이 작품을 곱씹는 재미를 가득 담고 있겠지만, 이 영화가 지닌 넓은 타깃층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점이다.

과거 극장에서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즐겼던 사람도, 케이블 TV의 프로그램으로 시리즈를 접했던 사람도, 명절에 모두가 함께 모여 극장으로 향하기에 이만큼 수월한 영화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작은 이 영화가 경쟁작들보다 먼저 입소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봉 시기부터 영화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단지 그 모든 강점과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질이 현저히 낮았기에,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결국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채 흥행 배턴을 떨구고야 말았다. 다가오는 명절, 개봉을 준비 중인 작품들이 떨어진 배턴을 다시 잡아낼 수 있기를, 또 부디 이 안일한 영화에 시간을 빼앗기는 이가 없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쳐본다.
영화 영화리뷰 가문의 영광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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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는 생각의 힘을 글로 옮겨 나눕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도 함께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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