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동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큰 위기를 겪었다. 나름 행사를 잘 치러낸 뒤 불거진 제천시와 전임 집행위원장의 소송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 3년간 집행위원장직을 수행한 조성우 감독이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를 이동준 음악 감독이 잇게 됐다. 4월 초 임기를 시작한 이동준 집행위원장을 영화제 개막에 앞서 만날 수 있었다. 
 
초과 예산 집행을 두고 갈등을 빚은 뒤 일각에선 누가 제천음악영화제 살림을 맡을지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선 아무리 좋은 청사진을 제시해도 결국 시나 외부 요인으로 부침을 반복해 온 곳인 만큼 해당 자리가 '독배'와 같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 어지러운 판세에 <태극기 휘날리며> < 7번방의 선물 > 등 다양한 작품으로 입지를 다져온 이동준 감독이 소방수로 등장한 셈이다.
 
"음악 축제 성격 크게 강화할 것"
 
이동준 감독이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경이었다. 초유의 갈등 사태로 파국을 예고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두고 정작 본인은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집행위원과 이사진들의 설득이 있었고, 결국 어렵게 수락한 경우였다. 대표적인 1세대 영화 음악 감독으로 제천음악영화제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게 외부 평가였다고 한다.
 
"자칫 하다가 영화제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들었다. 18년이나 이어왔는데 집행위원들이 마음이 아프다고들 하셨다. 이분들과 이사님들이 함께 100프로 의견 일치로 시에 저를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시에선 지역 인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여론이 제천영화제 위기론으로 흐르자 위원들의 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 예산으로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인력 운용 또한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직을 수락한 이동준 집행위원장은 꽤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이런 직함은 사실 낯선 것이라 불편해야 하는데 마치 새로운 작품의 음악을 맡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며 그는 미국 최대 복합 문화 축제 중 하나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를 언급했다.
 
"다들 제천음악영화제라고 하면 영화제가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뮤직 그리고 필름 페스티벌이 공존하는 게 맞는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원 썸머 나잇이라는 음악 행사가 있고, 종종 영화 음악 공연을 덧붙이는 형식인데 좀 기형적이긴 하다. 진짜 뮤직 페스티벌이라면 영화음악은 물론이고, EDM을 비롯해 여러 기획 공연이 더 있어야 한다. 올해 그래서 '레전드 오브 록' 같은 장르적 음악축제를 더하게 됐다. 장기적으로 음악 축제의 성격이 도드라지도록 할 것이다. 북유럽 등 다양한 국가와 교류하면서 영화음악은 더 확고하게, 영화제는 음악영화 범주 안에서 음악축제를 확장해가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이동준 집행위원장은 전통의 재즈 레이블인 블루노트, UMF 같은 여러 장르 음악축제를 들며 협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롤링스톤즈가 제천에서 생의 마지막 공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이 엄청 올 것이다"라며 그는 "뉴 뮤직 카테고리도 만들고 갤러리 전시와 함께 공연도 하면 재밌을 것이다. 블루노트 인 제천은 꼭 해보고 싶은 행사"라고 강조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행사장 전경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행사장 전경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풀어야 할 과제들
 
이런 포부는 분명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직면한 과제들이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4년 전 서울 사무국 집단 사퇴, 지난해 시와 집행위원장 간 소송 등 조직 내 소통 문제가 불씨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연직이던 조직위원장직을 올해부턴 제천시장이 아닌 영화계 인사(이장호 감독)가 맡는다고 하지만 영화제 자율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시의 개입이) 아주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하는 이해는 생겼다. 지난해 예산 초과 집행이 시 입장에선 큰 짐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제만 압박하는 게 맞는 건 아니겠지만 마음을 비우고 이해하려 한다. 제가 낙관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화제는 영화 전문가와 시, 그리고 시민이 같이 윈윈하는 게 좋다고 본다. 어느 쪽이 한 쪽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만 버린다면 잘 풀릴 것이다. 시를 설득하면서 좋은 그림을 제시하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그래서 제천영화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
 
제천이 지금은 휴양지 느낌인데 여기에 하이테크를 결합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숙박 등 인프라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대기업 등의 협조를 얻고, 하이테크가 결합된 다목적 행사를 상시로 유치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 이전에 음악축제를 연다거나. 겨울엔 제천영화제가 주도하는 다른 행사를 열고. 지금 제천이 전주영화제나 부천영화제의 3분의 1 수준 예산인데 음악축제의 정체성을 키우면서 다양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재밌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비전이 있기에 직을 수락한 것이다."

 
음악축제 확장은 곧 영화제 자부담률을 높이는 방안으로 연결된다는 게 이동준 위원장의 생각이었다. 영화제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자체 수입을 늘려야 한다며 이 위원장은 이 부분에서 나름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꾸준히 제기된 제천시민과 소통 문제도 시내 여러 집합 공간을 활용한 기획 공연을 늘리고, 영화제를 찾는 셀럽과 스킨십을 늘리는 방식으로 차즘 해결해 가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알만한 배우나 영화계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직접 현장에서 만날 수 있게끔 GV 행사를 묶었다. 심사위원들이 물론 영화 평가도 하지만, 시민과 만남으로 영화제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키는 역할을 해주실 것이다. 그래서 올해 박성웅 배우도 모셨고, 사카모토 류이치 감독의 따님도 모셨다. 사카모토 미우(영화 <철도원> 등의 OST에 참여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 기자 주)는 팬분들 앞에서 직접 노래도 선보일 것이다. 이처럼 닫힌 곳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더욱 함께 호흡하도록 할 예정이다."
 
내년이면 영화제도 20년을 맞는다. '다 카포(다시 처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초심과 미래 지향성을 이동준 위원장은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내년에 특히 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바로 직전인 19회는 그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고민했다. 지난 영화제들을 돌아보며 무엇을 놓쳤고, 뭐가 빠졌는지 돌아보자는 취지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셈이다. 물론 예산이 빠듯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새로 홍보 트레일러를 만들지 못하고 예전 트레일러를 편집해서 만들었다. 오늘의 영화제는 내일을 준비하는 영화제가 되도록 할 것이다.
 
집행부도 대부분 새로 구성돼서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인데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때론 설득해야 하고, 충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설명하고 보듬는다면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00프로 설득이 안 되더라도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멋진 영화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동준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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