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앞둔 박항서 감독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16일(현지시간) 태국 빠툼타니주 클롱루앙군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날 베트남은 태국에 0-1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2017년 10월 베트남 지휘봉을 잡고 5년여 동안 이끌어온 박 감독은 이달 말 계약이 만료된다.

▲ 태국과 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앞둔 박항서 감독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16일(현지시간) 태국 빠툼타니주 클롱루앙군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날 베트남은 태국에 0-1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2017년 10월 베트남 지휘봉을 잡고 5년여 동안 이끌어온 박 감독은 이달 말 계약이 만료된다. ⓒ 로이터/연합뉴스

 
원했던 가장 최상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자랑스러운 최선의 해피엔딩이었다. '쌀딩크'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의 아름다운 동행이 막을 내렸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월 16일(한국시간) 태국 빠툼타니의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홈 1차전에서 2-2로 비긴 베트남은 1·2차전 합계 2-3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박항서 감독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베트남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라스트 댄스'에서 비록 우승을 일궈내지는 못했지만, 선전 끝에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뤄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박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태국 대표팀과 마노 폴킹 감독에게 축하를 전한다. 베트남 팬들에게 우승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는 계속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 내일부터 난 더 이상 베트남 감독이 아니지만 팬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국가대표팀과 U-23 팀을 열렬히 응원하겠다. 서로에 대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란다"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현지에서도 우승 실패에 대한 아쉬움보다 박 감독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언론은 결승전이 끝난 후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에 남긴 업적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 팬들과 누리꾼들도 SNS 등을 통하여 박항서 감독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감사의 인사가 쏟아지고 있다.
 
베트남 축구 몇 단계나 도약시킨 박항서 감독
 
 2023년 1월 16일 열린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 베트남 선수들이 태국과의 경기 전 팀 단체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년 1월 16일 열린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 베트남 선수들이 태국과의 경기 전 팀 단체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은 이미 베트남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대 최고의 감독이다. 2017년 10월 베트남 A대표팀 및 U23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한 이래 박 감독은 눈부신 업적을 쌓으며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던 베트남 축구를 몇 단계나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항서호는 23세 이하 대표팀의 'AFC U23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AFF컵 결승진출 2회-우승 1회, 2019 AFC아시안컵 8강, FIFA월드컵 동남아 최초의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동남아시안게임 2연패,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 등이다. 모두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 혹은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박 감독의 부임 이전까지 100위권 밖을 맴돌던 베트남의 FIFA랭킹은 박 감독의 등장 이후 두 자릿수대로 진입하여 줄곧 내려오지 않았다. 베트남 축구가 박항서 시대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박 감독의 성공은 동남아시아 축구에 '지도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기대 이상의 신화를 창조하며 동남아시아 축구계에서 한국 지도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인도네시아, 김판곤 전 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장은 말레이시아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AFF컵에서 박항서의 베트남을 비롯하여 태국을 제외하고 나란히 4강에 오른 3팀이 모두 한국인 지도자들이 지휘봉을 잡은 팀이라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박 감독의 성공이 한국축구와 우리 사회에 주는 또다른 교훈은 '경험과 연륜의 재발견'이라는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데 있다. 박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4강신화를 이뤄내는 데 기여하며 이름을 크게 알렸지만, 이후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여 잊혀져가고 있던 인물이었다. 한일월드컵과 같은 해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사령탑에 올랐으나 금메달에 실패하면서 더 이상 대표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 했다. 지도자 경력은 길지만, 스타 출신 감독들에 밀려 프로 감독 데뷔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박 감독은 이후로는 주로 K리그 중하위권팀들의 감독직을 전전했고, 베트남의 지휘봉을 잡기 직전에는 1부리그도 아닌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의 감독직을 맡고 있었다. 박 감독이 베트남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현지에서도 고작 "한국 3부리그 수준의 감독을 데려왔다"며 뜬금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박 감독과 베트남 축구의 만남은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며 만일 국내 무대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축구 경력의 막바지에 와 있었을 박 감독은, 말년에 첫 해외무대 도전을 통하여 '지도자 인생의 뒤늦은 전성기'를 스스로 개척했다. 그간 높은 축구 인기에 비하여 피지컬과 기술의 한계로 국제대회 성적은 좋지 않았던 베트남은, 박 감독이 부임하면서 체계적인 선수관리, 압박과 역습, 활동량같은 한국축구의 장점들을 이식하며 한결 끈끈한 팀으로 진화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던 도전의 결과
 
 2023년 1월 16일 방콕 타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베트남과 태국의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을 앞두고 베트남 팬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2023년 1월 16일 방콕 타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베트남과 태국의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을 앞두고 베트남 팬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 AFP / 연합뉴스

 
베트남은 박 감독 이전까지 외국인 감독의 평균 임기가 1년에 불과했을 정도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불확실한 선택을 '신의 한 수'로 바꾸어낸 것은 온전히 박 감독의 능력과 노력이었다.
 
축구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구성원들과 마음을 사로잡는 겸손한 인품, 축구에 대한 진정성 등은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파파'로 불리우며 한 명의 축구 감독 이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베트남 감독이 되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박 감독이 수십 년간 잡초처럼 여기저기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축적한 경험과 연륜이 베트남이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결합되면서 비로소 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처럼 박 감독이 그저 과거의 성공이나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는 베테랑 지도자들의 전철을 밟았다면 오늘날 베트남에서 인생역전에 가까운 대성공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박 감독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축구계와 대중들도 베트남에서의 성공신화를 통하여 비로소 박항서라는 인물의 진가를 재발견하게 됐다.
 
한국축구 내부에서는 여전히 국내파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적 선입견이 존재한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대표팀을 맡았던 국내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대체로 실망스러웠고, 인맥과 서열 위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축구계 구조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과 동남아 한류 열풍에서 보듯이, 국내파 지도자들이라고 해서 능력이 모자라다는 것은 그저 선입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박항서 감독같이 충분히 능력있고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 인재들이 왜 한국축구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는지도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한국축구는 2000년대 이후 많은 선수들이 해외무대로 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해외로 나가서 활약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본이나 중국 클럽 정도였다. 좁은 국내 축구시장에서 비슷비슷한 철학과 스타일을 가진 인물들끼리 아옹다옹하는 것을 넘어 더 다양한 축구를 경험하고 도전해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베트남을 떠나게 된 박 감독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길을 모색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국축구는 박 감독이 베트남과 동남아축구계에 다져놓은 한국축구에 대한 긍정적인 위상, 그리고 박항서라는 인물이 보유한 경험과 연륜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앞으로 한국축구를 위하여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박 감독은 유명세를 떨치면서 그의 롤모델인 히딩크를 빗댄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박 감독이 베트남에게 남긴 발자취는 누군가의 아류를 넘어선 지 오래이며, 박항서라는 이름 그 자체로 한국과 베트남 축구를 상징하는 위대한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박 감독의 신화는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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