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1라운드가 모두 종료됐다. 본선 출전 32개국이 모두 첫 경기를 마친 가운데, 대부분 우승후보들이 일찌감치 조 선두 자리에 올라서며 명불허전임을 증명했다.
 
현재 조별리그 8개 조 중 7개 조에서 FIFA 랭킹 10위권 이내의 강호들이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A조에서 랭킹 8위 네덜란드(2-0, vs. 세네갈), B조에서 5위 잉글랜드(6-2, vs. 이란), D조에서 4위 프랑스(4-1, vs. 호주) E조에서 7위 스페인(7-0, vs. 코스타리카), F조에서 2위 벨기에(1-0, vs. 캐나다), G조의 1위 브라질(2-0, vs. 세르비아), H조의 9위 포르투갈(3-2, vs. 가나)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중 벨기에 정도만 다소 고전했을 뿐, 나머지 팀들은 모두 상대를 압도하며 멀티골을 터뜨리고 낙승할 만큼 한수위의 전력을 과시했다. 특히 잉글랜드는 6골, 스페인은 무려 7골의 골폭죽을 터뜨리며 우승후보다운 수준차를 보여줬다.
 
  22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사우디의 사우드 압둘하미드가 돌파하는 아르헨 리오넬 메시를 막아서고 있다. 2022.11.23

22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사우디의 사우드 압둘하미드가 돌파하는 아르헨 리오넬 메시를 막아서고 있다. 2022.11.23 ⓒ 연합뉴스

 
유일한 예외는 바로 C조다.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 유럽의 복병 폴란드 등 각 대륙의 쟁쟁한 강팀들이 몰린 조에서, 놀랍게도 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당당하게 1위에 올라있다.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제3대륙팀 중에서 유일하게 조 선두에 오른 것이 사우디다. FIFA 랭킹 51위로 이번 대회 참가한 32개국 중 가나(61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사우디는 첫 경기부터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에 2-1로 격침시키는 '루사일의 기적'을 연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사우디는 전반 리오넬 메시에게 페널티킥(PK) 실점을 허용했고 이후 한동안 일방적인 공세를 허용하며 고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않은 사우디는 조직적인 압박과 지능적인 라인 컨트롤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유도해내며 아르헨티나의 공간침투와 추가골을 무력화시키고 흐름을 가져왔다. 올해부터 월드컵에서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시스템 덕분에로 라우타로가 기록한 2골이 모두 무효 처리된 것도 사우디에게 결정적인 행운으로 작용했다.
 
후반들어 사우디는 3분 살레 알 셰리가 동점골- 8분 살렘 알 도사리가 환상적인 역전골을 잇달아 터지며 단 3번의 찬스에서 2골을 몰차이는 극강의 집중력을 과시했다. 골키퍼 모하메드 알 오와이스의 신들린 선방과 사우디 수비수의 몸을 날리는 허슬플레이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사우디는 승점 3점을 따내면서 월드컵 역사에 남을 이변을 이뤄냈고, 사우디 왕실은 역대급 승리를 자축하며 국가 공휴일을 선포할 만큼 이날의 승리는 1승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반면 폴란드와 멕시코가 무승부로 각각 승점 1점씩 나눠가지면서 졸지에 최하위까지 추락한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에서 단숨에 조별리그 탈락을 걱정해야할 처지에 몰렸다.
 
 2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 일본 도안 리츠가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22.11.23

2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 일본 도안 리츠가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22.11.23 ⓒ 연합뉴스

 
사우디가 기적을 일으킨지 하루 뒤에는 역시 아시아팀인 일본이 우승후보 독일을 격침시키는 또다른 이변을 연출했다. 이번에도 역전승이었다. 일본은 23일 카타르 알라이얀 칼리파국제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전반 33분 독일 미드필더 일카이 귄도안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30분 미드필더 도안 리츠의 동점골, 후반 38분 공격수 아사노 타쿠마의 역전 결승골로 짜릿한 2-1 승리를 거머쥐었다.

독일은 전반까지만 해도 약 72%에 이르는 압도적인 점유율로 파상공세를 퍼부었음에도 페널티킥 외에는 필드골을 끝내 뽑아내지 못했다. 후반에는 수비진의 집중력 하락으로 조직력이 급격하게 흔들리며 공세로 돌아선 일본에게 오히려 주도권을 내줬다. 선수명단 대부분이 유럽파이고,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만 8명에 이르는 일본은 독일을 상대로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독일은 4년 전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에 패하여 탈락한 데 이어 월드컵에서 아시아팀에게만 2연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다음 2차전이 스페인이라 독일은 또 한 번의 조별리그 탈락 악몽이 걱정되는 처지로 내몰렸다. 특히 이날 독일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1-0으로 앞서가던 후반 일본 선수와의 볼경합과정에서 이른바 깡충깡충 '토끼점프'를 선보이며 상대를 도발했던 장면 직후 내리 2골을 허용하며 무너진 것은, 독일의 패배가 오만이 불러온 자멸이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당초 사우디와 일본은 각각 '죽음의 조'에 배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16강 전망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우승후보들을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선전은 아시아 축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김승규, 역습에 선방으로 응수 24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 대한민국 골키퍼 김승규가 우루과이의 역습을 막아내고 있다.

▲ 김승규, 역습에 선방으로 응수 24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 대한민국 골키퍼 김승규가 우루과이의 역습을 막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이어간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24일 카타르 알라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결과로 우루과이와 한국은 승점 1씩을 나눠 가졌다.
 
비록 사우디나 일본처럼 짜릿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선전 역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외신과 전문가들은 H조를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2강 체제로 예상했다. 1차전 역시 전력에서 앞선 우루과이가 한국을 상대로 무난히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벤투호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사우디-일본의 승리가 이른바 '선수비 후역습'으로 대표되는 언더독이 강팀을 잡아내는 교과서적인 패턴을 보여줬다면, 한국의 선전은 '정면승부'로도 강팀과 대등한 대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게 차이다.

한국은 특유의 점유율 축구(빌드업축구)와 강한 전방위 압박으로 우루과이와 팽팽하게 맞섰다. 전반 디에고 고딘의 코너킥 헤더와 후반 발베르데의 중거리포가 두 번이나 골대를 강타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기 상황에는 벤투호는 우루과이의 공격진을 잘 제어했고 볼이 우리 문전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황인범, 이재성, 정우영 등이 포진한 중원대결과 몸싸움에서 우루과이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오히려 황의조와 손흥민의 결정적인 득점찬스가 아쉽게 빗나가며 한국이 우루과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순간도 여러 차례 나왔다. 불안하는 평가를 받던 수비진은 유럽파 김민재와 부상을 털고 복귀한 김진수, 골키퍼 김승규의 뛰어난 반사신경을 앞세운 선방으로 안정감을 찾으며 클린시트에 성공했다. 후반 조커로 깜짝 투입되어 분위기를 바꾼 이강인과 조규성의 활약도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무승부는 어쩌면 양팀 모두에게 공평한 결과였을 것이다. 한국은 이로서 가나에 승리한 포르투갈에 이어 조 2위에 오르며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밝혔다. 외신들도 한국의 경기력을 호평하며 남은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아시아팀들은 그동안 월드컵에서 강팀들의 승수제물이나 들러리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회 초반 개최국 카타르(0-2 패, vs. 에콰도르)와 중동의 맹주 이란(2-6 패, vs. 잉글랜드), 오세아니아의 호주(1-4, vs. 프랑스 )이 각각 무기력한 졸전 끝에 대패를 당할 때만 해도 아시아의 수난사가 되풀이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우디, 일본, 한국의 연이은 선전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륙별로 1라운드에서 유럽은 6승 5무 2패, 남미는 2승 1무 1패, 아시아는 2승 1무 3패를 기록했다. 북중미는 2무 2패, 아프리카는 3무 2패로 아직까지 승리가 없다.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제3세계 팀 중에서는 현재까지 아시아가 가장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열리는 아시아 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아시아 축구가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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