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수리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수리남>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과 MBC 금토 드라마 <빅마우스>를 보며 문득 <조웅전> <유충렬전> <홍계월전> 등 조선 후기 영웅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이 소설들이 떠오른 이유는 500년 정도 지났을 때 <수리남>과 <빅마우스>가 조선 후기 영웅 소설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 소설로 묶여 후손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영웅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비슷한 서사 구조를 지녔다는 점입니다. 조선 후기 영웅 소설들은 대체로 주인공이 명문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와 분리되어 고난을 겪다가 구출자를 만나고 국가 위기에 출현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국난을 평정하고 고귀한 벼슬을 받으며 헤어진 가족과 재회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수리남>과 <빅마우스>도 서사 전개에 있어 조선 후기 영웅 소설처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평범한 주인공을 등장시킨다는 점입니다. <수리남>의 주인공은 가족들을 위해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빅마우스>의 주인공은 직업이 변호사이기는 하나 변호사임에도 사기를 당하고 당장 급한 돈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매는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민을 가지고 사는 평범한 인물이라 봐도 무방한 인물입니다.
 
두 번째로는 초반에는 자신이 제거해야 할 적의 도움을 받으나 결국은 그 때문에 커다란 위기를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수리남>에서는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자 목사가 등장해 주인공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목사가 주인공의 전 재산을 날리게 만들어 버리고 감옥까지 가게 만듭니다. <빅마우스>에서는 돈이 급한 주인공에게 굵직한 사건을 물어다주며 주인공에게 구세주처럼 보였던 시장이 결국은 주인공을 사건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감옥까지 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세 번째로는 이들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등장합니다. <수리남>에서는 국정원 요원들이 등장해 주인공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며 <빅마우스>에서는 빅마우스라는 범죄 조직이 주인공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지막으로 <수리남> <빅마우스>에서 최종 보스 격에 해당하는 악당은 사건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법 위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처럼 조선 후기 영웅 소설들이 비슷한 서사 구조를 공유한 것처럼 <수리남>과 <빅마우스>도 유사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몇 백 년 후의 후손들에게는 어쩌면 <수리남>과 <빅마우스>가 조선 후기 영웅 소설들처럼 지금 시대의 영웅 이야기로 묶여 전해질 가능성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선 후기 영웅 소설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공통점은 소설 속에 당대 민중들의 갈망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 후기 민중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너무나 고통스러운 국가적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배 계층들은 권력투쟁만 일삼다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고 심지어 위기 상황이 닥쳐서도 가장 먼저 도망쳐버리며 비겁함과 무능함만 내보였으니 당시 지배 계층을 향한 민중들의 실망감과 분노는 결코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망감과 분노는 영웅의 출현을 갈망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러한 당대 민중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 조선 후기 영웅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선 후기 민중들이 원했던 진짜 영웅은 하늘을 날고 도술을 부리는 이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 민중들이 진정 원했던 영웅은 아마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자신들을 지켜주는 유능하고 도덕적인 지배 계층이었을 것입니다.
 
 윤아(오른쪽)는 <빅마우스>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에 도전한다.

드라마 <빅마우스> ⓒ <빅마우스> 홈페이지

 
<수리남>과 <빅마우스>에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 민중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영웅 소설과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수리남> <빅마우스>에 담겨 있는 이 시대 민중들의 바람은 온갖 불법을 자행해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후 세상을 자신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하는 그런 악인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그런 악인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2022년에 과연 통하지 않는다 생각하시지는 되물어보고 싶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여전히 가볍게 넘겨 볼 수 없는 것은 2022년에도 여전히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이들 중에는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그 시대 민중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영웅 소설과 <수리남> <빅마우스>는 많이 닮아 있고 그렇기에 <수리남> <빅마우스>를 현대판 영웅 소설이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조선 시대 영웅 소설과 <수리남> <빅마우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입니다. 조선 시대 영웅 소설에서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가 문제를 해결했다면 <수리남> <빅마우스>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 누구에게라도 범죄의 손길이 뻗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범죄를 해결하고 막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가 <수리남> <빅마우스> 주인공처럼 직접 범죄 한복판에 뛰어들어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고 꼭 그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평범한 주인공이 자신이 마주한 부당한 이들과 맞서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꼭 지녀야 할 자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내 일이 아니기에, 그리고 내가 그것의 부당함에 관해 목소리를 내봐야 아무 의미 없다 생각하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어도 그러한 문제를 보았을 때 눈을 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행위를 해서 우리에게 그 어떤 이득도 없는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신다면 <빅마우스>와 <수리남>중 <수리남>은 단순히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것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떠올려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빅마우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수리남>은 우리가 사회의 여러 부조리와 부패에 눈 감는 순간 그 부조리와 부패는 성실하게 그 존재를 이어갈 것이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구라도 언제나 괴롭히는 악마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경고를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가슴 깊이 받아 들일지는 두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선택하시기를 바라봅니다. 선택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며 이야기를 끝맺으려 합니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소설을 통해 정신적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시대 민중들과 달리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선택은 앞으로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마시기를.'
수리남 빅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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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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