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마요르카의 이강인이 라요 바예카노전에서 왼발슛으로 시즌 1호골을 터뜨리는 장면

▲ 이강인 ⓒ 마요르카 트위터


'골든보이' 이강인이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눈부신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강인은 28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데 바예카스에서 열린 라요 바예카노와의 2022~2023시즌 스페인 라리가 3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시즌 1호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강인은 팀이 베나트 무리키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선 후반 19분 추가골을 터뜨렸다. 골키퍼 골킥이 상대 선수 헤더 미스로 뒤로 흐른 것을 놓치지 않고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힌 이강인은, 절묘한 트래핑으로 공을 낚아채 페널티 박스 왼쪽으로 드리블 돌파하면서 강력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강인은 후반 29분까지 뛰고 야브레스와 교체아웃 됐다. 2-0으로 승리한 마요르카는 1무1패 뒤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이강인은 이날 슈팅 3회(유효슈팅 1회), 키패스 2회, 패스성공률 81%(17/21)를 기록하며 프리메라 리가 공식 경기 최우수선수(Man of the Match)에 올시즌 처음으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어느덧 프로 4년차가 된 이강인은 2022-23시즌 들어 어느 때보다 좋은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6일 아틀레틱 클루브(0-0)와의 라리가 1라운드 개막전(0-0.86분), 21일 홈에서 열린 레알 베티스(1-2, 풀타임)와의 홈 개막전에 이어 라요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출전하며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시즌까지 선발 출전과 출전시간이 항상 들쭉날쭉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출전시간이 늘어나며 경기력도 살아나고 있다. 베티스전에서는 무리키의 득점을 도우며 시즌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데 이어 라요전에서는 골까지 터뜨리며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강인은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를 거쳐 프로에 데뷔했고 2019년에는 대한민국의 U-20월드컵 준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골든볼)에 선정되며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성인무대에서의 행보는 순탄하지 못했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1군에서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구단내 복잡한 정치싸움-감독들의 신뢰 부족으로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이강인은 지난해 여름, 유소년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적하는 선택을 내리며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하지만 마요르카에서도 이강인의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총 30경기에 나섰지만 선발 출전은 15회에 그쳤고, 경기당 평균 출전시간은 47분(1408분)에 그치며 사실상 발렌시아 시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자연히 대표팀에서도 멀어지며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성인대표팀에서는 지난해 3월 한일전 이후 더 이상 부름을 받지 못했다. 한단계 아래라고 할 수 있는 연령대별 대표팀으로 내려왔지만, 김학범 감독이 이끌었던 2020 도쿄올림픽, 황선홍 감독이 이끌었던 AFC U-23 챔피언십에서 잇달아 부진한 모습으로 팀의 참패를 바라만봐야했다. 한때 최고의 유망주에서 이제는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올여름 다시 한 번 이적설이 거론되기도 했던 이강인은 고심 끝에 일단 마요르카에 잔류했다. 지난 시즌 강등 위기까지 맞았던 마요르카는 3월말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선임하면서 마지막 9경기 동안 5승1무3패를 기록하여 16위로 극적인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아기레 감독 역시 부임 초기 첫 시즌에는 전임 감독들처럼 이강인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1부 잔류에 성공하며 한숨을 돌린뒤 본격적으로 선수단 관찰에 나선 아기레 감독은 프리시즌을 거치며 이강인의 재능과 열정을 눈여겨봤다. 아기레 감독은 "이강인은 자유도가 높을수록 좋은 플레이로 응답하는 선수다. 그는 느리거나 약하지않고 경기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팀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이라며 이강인의 퍼포먼스를 극찬했다. 이강인의 장단점과 세간의 선입견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례적인 립서비스 수준의 칭찬에 그쳤던 이전의 감독들과는 결이 다른 평가였다.
 
아기레 감독은 이강인을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주전으로 낙점하며 신뢰하고 있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전문가들이 예상한 마요르카의 올시즌 예상 베스트 11에도 들지못했던 이강인으로서는 놀라운 위상변화다.
 
5-3-2 포메이션을 주전술로 채택한 아기레호에서 이강인은 일단 무리키와 투톱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한단계 아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와 처진 스트라이커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프리롤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강인은 특유의 예리한 전진 패스와 부드러운 탈압박으로 팀 공격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강인을 가장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정정용 감독이 U-20 대표팀에서 보여준 '이강인 사용법'과도 흡사하다.
 
아기레 감독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인물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모국인 멕시코 대표팀의 감독으로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이웃나라이자 라이벌인 일본 축구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라라기에서의 승부조작 의혹 논란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직에서 해임된 이후에도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거치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아기레 감독은 북중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대륙의 클럽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루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다. 본인의 축구철학을 선수들한테 주입시키기보다, 선수구성과 팀의 상황에 맞춰 특화된 전술과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데 더 능하다는게 강점으로 꼽힌다.
 
플레이스타일상 장단점이 뚜렷한 이강인은, 소위 '감독빨'을 많이 타는 유형의 선수로 꼽힌다. 이강인은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이고 최적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서는 이러한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공미들이 시대 흐름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하락세를 타고 있다.
 
스페인 현지에서도 이강인이 아시아 선수임에도 기술적 능력과 창의성에서는 수준급으로 인정받았지만, 스피드와 피지컬, 수비가담에 약점이 있고 전술적 범용성에 제약이 있어서 최적의 활용법을 찾기 어려운 선수로 평가해왔다. 이는 클럽만이 아니라 대표팀 감독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상황 하에서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능한 아기레 감독과의 궁합은 이강인의 재발견에 큰 도움이 됐다. 올시즌 마요르카의 경기력과 이강인의 활약상이 모두 준수하고, 현재 마요르카가 베스트11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층이 그리 두텁지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강인이 당분간 계속 주전으로 중용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보인다.
 
이제 국내팬들의 관심은 이강인의 부활이 대표팀 재승선으로까지 이어질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카타르월드컵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벤투호에게 오는 9월 코스타리카-카메룬과의 2연전은 사실상 최종엔트리 승선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여겨진다. 벤투 감독에게도 지난 동아시안컵 한일전(0-3) 참패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정예 멤버를 소집하여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벤투 감독이 최근 소속팀에서 물오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강인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한다는 여론이 나온다. 이강인은 현재 벤투호의 미드필드진에 부족한 창의성과 기술을 더해줄수 있는 선수다. 벤투 감독 역시 대표팀에 이강인을 여러 차레 활용해보며 선수의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클럽과 달리, 대표팀은 이강인을 중심으로 전술을 맞춰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선수선발에 있어서 한 번 생각한 틀을 쉽게 바꾸지않는 보수적인 벤투 감독의 성향, 공격자원보다 수비 보강이 더 시급한 대표팀의 사정 등을 감안할 때, 이강인의 재기용에 회의적인 전망도 존재한다.
 
이는 이강인을 중심으로 내년으로 연기된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려는 U-23 대표팀 황선홍호도 마찬가지 고민이다. 올림픽 축구대표팀도 AFC U-23대회의 충격을 딛고 9월 26일 화성에서 우즈베키스탄 올림픽대표팀과 친선 경기로 새로운 출발에 나선다. 이강인이 이번에도 만일 A팀 승선에 실패한다면 '이강인 활용법'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U-23 대표팀이 이어받게 된다.
 
이강인은 한국축구가 배출한 역대급 재능 중 한명이다. 이강인이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한국축구의 미래와 관련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픔이 많았던 이강인이 성인무대에서의 화려한 비상과 함께 첫 월드컵 출전의 꿈까지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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