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득점 상황에서 대만 수비수(2번)와 경합하는 이민아(7번)

첫 득점 상황에서 대만 수비수(2번)와 경합하는 이민아(7번) ⓒ 대한축구협회

 
359일 남은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귀중한 경험을 했고 3위라는 최종 성적에 어울리는 숙제도 받아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게임에서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4골이나 터뜨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대표팀 경험 많은 언니들과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부드럽게 이어주고 있는 강채림의 1골 1도움 활약도 눈부셨고, 9개월만에 A매치 골을 터뜨리며 활짝 웃은 새색시 이민아의 빼어난 드리블 기술이 여전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26일(화) 오후 4시 일본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2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여자부 대만과의 마지막 게임을 4-0으로 크게 이겨 1승 1무 1패(6득점 3실점)의 최종 성적 3위로 대회를 끝냈다.

핵심 선수 셋의 빈 자리까지 확인한 게임

우리 선수들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후반전 초반(49분)에 에이스 지소연이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선수 교체를 한 번 더 했다. 언제나 듬직한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 조소현이 대만과의 이번 게임 선수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고, 게임 시작 후 16분만에 대만 골키퍼 청 쑤위와 크게 충돌한 센터백 임선주도 들것에 실려나갔으니 우리 여자대표팀 척추 라인(임선주 - 조소현 - 지소연)에 구멍이 뚫린 것은 분명했다.

개최국이자 2회 연속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일본과의 첫 게임 1-2 패배,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 2022 우승 팀 중국과의 두 번째 게임 1-1 아쉬운 결과에 이르기까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대표팀의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 셋 없이 게임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에이스 지소연이 정상적으로 뛸 때 3-0 점수판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35분에 대만 수비수 창 치란의 자책골을 이끌어내는 과정부터 매우 인상적이었다. 왼쪽 측면에서 지소연-장슬기가 만든 공간 침투 타이밍이 기가 막혔고 장슬기의 반 박자 빠른 얼리 크로스가 골문 바로 앞으로 몸을 내던지며 달려든 이민아에게 뻗어간 것이다. 공식적인 득점 기록은 이민아의 슛을 막기 위해 함께 몸을 내던진 대만 수비수 창 치란의 자책골로 찍혔다.

3분 뒤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공간을 열어나가는 패스 줄기가 빠르고 정확했다. 오른쪽 윙백 추효주가 옆줄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한 최유리에게 시원한 공간 패스를 열어주었고 최유리는 골문 앞으로 달려드는 동료를 믿고 반 박자 빠른 얼리 크로스를 날카롭게 보내줬다. 이 순간을 기다린 강채림은 감각적인 오른발 슬라이딩 슛으로 귀중한 추가골을 넣었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골 결정력에 문제를 드러냈던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점수판을 3-0까지 만들어냈다. 40분에 왼쪽 측면에서 최유리와 지소연의 원 터치 패스가 빛났고 지소연의 오른발 인사이드 3자 패스를 받은 이민아는 대만 수비수 쑤 신윤을 오른발 아웃사이드 방향 전환 드리블로 가볍게 따돌리면서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낮게 깔아서 차 넣었다. '3자 패스-공간 열기-드리블 돌파-완벽한 마무리 슛'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작품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에 지소연까지 발목을 다쳐 나간 뒤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종료 직전 새내기 고민정이 강채림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받아 정확한 헤더 슛으로 쐐기골을 터뜨려 A매치 데뷔전 데뷔골 주인공이 탄생했다. 나이가 꽤 많기는 하지만 포스트 플레이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 다시 불러온 키다리 멀티 플레이어 박은선의 활용도가 빛나는 순간이었기에 고민정의 이 쐐기골은 더 뜻깊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만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강채림의 크로스가 넘어오는 순간 박은선 수비에 쏠리는 바람에 그 뒤에 숨어있던 고민정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대비는?

이어 열린 일본과 중국의 여자부 마지막 게임이 득점 없이 끝나는 바람에 2승 1무(6득점 2실점)의 성적을 낸 개최국 일본이 2008년, 2010년, 2019년에 이어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감격을 누렸고 중국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종 순위표를 놓고 봐도 우리 여자대표팀이 17년만에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노렸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본 여자축구의 레벨이 세계 상위권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 선수들이 이 대회 첫 게임에서 일본을 크게 흔들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소연의 짜릿한 동점골이 터졌을 때만 해도 역전승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단 6분만에 뼈아픈 추가골을 내주고 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중국과의 두 번째 게임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지만 단 한 번의 수비 실수로 뼈아픈 동점골을 내주며 주저앉았다. 우리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 내준 3골 모두 상대 선수가 잘했다기보다는 우리 수비수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모자란 것이었다. 작은 실수로 보였지만 '골'로 말하는 축구 게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반복한다는 것은 가장 큰 대회인 월드컵을 앞두고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정리된 셈이다.

월드컵 본선 무대가 열리면 가장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지소연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은 이번 대회를 통해 '장슬기-강채림-최유리-이민아-이영주-추효주'를 주축 선수들로 자리잡게 만든 것에서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번 대회가 열리기 전 최근 올림픽 여자축구 금메달을 따낸 신흥 강호 캐나다와의 평가전을 치른 것부터 이미 2023년 7월 20일 개막하는 호주-뉴질랜드 공동 개최의 여자 월드컵 준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WK리그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유럽의 강팀들과 평가전을 추진하여 보완할 점들을 더 섬세하게 찾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세대들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선수들도 다른 월드컵을 코앞에 뒀다. 다음 달 코스타리카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 우리 선수들도 참가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와의 첫 게임(8월 12일), 나이지리아와의 두 번째 게임(8월 15일), 유럽의 강팀 프랑스와의 세 번째 게임(8월 18일) 모두 주목할 일이다.

2022 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결과
(7월 26일 오후 4시 가시마 스타디움, 일본 이바라키현)

한국 4-0 대만 [득점 : 창 치란(35분,자책골), 강채림(38분,도움-최유리), 이민아(40분,도움-지소연), 고민정(90+1분,도움-강채림)]

한국 선수들
FW : 강채림, 최유리(79분↔장유빈)
MF : 장슬기, 지소연(49분↔장창), 이민아, 이영주(79분↔박은선), 추효주(79분↔고민정)
DF : 홍혜지, 임선주(16분↔김윤지), 김혜리
GK : 윤영글

2022 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최종 순위
1위 일본 7점 2승 1무 6득점 2실점 +4
2위 중국 5점 1승 2무 3득점 1실점 +2
3위 한국 4점 1승 1무 1패 6득점 3실점 +3
4위 대만 0점 3패 1득점 10실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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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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