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프리킥으로 센추리 자축포'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손흥민, '프리킥으로 센추리 자축포'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의 자존심' 손흥민은 지난 6월 6일 칠레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하는 새 역사를 썼다. 대표팀은 이날 경기에서 2-0으로 완승했고 손흥민은 후반 46분 프리킥 쐐기골을 기록하며 센츄리클럽 가입에 의미를 더했다.
 
센츄리클럽은 축구 레전드의 상징과도 같다.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A매치에 10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높은 수준의 기량과 성과를 꾸준히 증명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A매치 최다출장은 홍명보(울산 현대 감독)의 136경기이며 이운재(132경기), 차범근(130경기), 이영표(127경기) 등 모두 한국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레전드들이다. 현역 선수로는 2019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기성용의 110회가 최다출장 기록이다.
 
손흥민은 대한축구협회 집계 기준 한국 남자 선수로는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역대 16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A매치 개인 최다 출전 순위에서는 박지성(100경기)과 공동 13위다. 아직 대표팀을 은퇴하지 않은 현역 선수로 국한하면 독보적인 1위로 기록이 현재진행형이다.
 
조커 역할에서 에이스로 성장하기까지

손흥민이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은 16세이던 2008년 연령대별 대표팀인 17세 이하 대표팀에서였다. 손흥민은 당시 국제청소년축구대회 중국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같은해 열린 2008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6경기 4골을 기록하며 준우승에 기여했고, 2009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하여 3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8강진출을 이끌었다.
 
만 18세이자 2010년 12월 손흥민은 시리아와 친선경기를 통하여 성인대표팀 소속으로 역사적인 A매치 경력의 첫발을 내딛었다. 남아공월드컵 16강을 이끈 허정무 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은 조광래 감독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추진하면서 당시 독일 함부르크에서 차세대 유망주로 조금씩 주목받고 있던 손흥민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손흥민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당당히 발탁되며 국가대표로서 첫 성인 대회를 경험했다. 이 대회는 한국축구의 '2002년 황금 세대'를 대표하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다. 손흥민은 우수한 스피드와 민첩성을 인정받아 주로 후반 교체멤버로 활약했고 자신의 A매치 세 번째 경기이자 한국의 조별리그 최종전인 인도전에서 역사적인 데뷔골을 기록했다.
 
우승을 노렸던 한국은 2011 아시안컵을 3위로 마감했고, 손흥민은 첫 성인대회를 4경기 1득점으로 마감했다. 특히 3·4위전을 승리로 마친 뒤 막내인 손흥민이 대표팀을 은퇴하는 박지성과 이영표를 무등 태우고 함께 헹가래를 쳐주던 장면은 한국축구에 '한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손흥민, ‘센추리 찰칵 세리머니’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손흥민, ‘센추리 찰칵 세리머니’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은 이후로도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되었지만 초창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여 안정적인 주전으로 기용되지는 못했다. 손흥민이 유럽에서 조금씩 위상을 높여가던 시절에도 대표팀에서는 조광래호 시절 박주영, 최강희호 시절 이동국이 공격의 핵심으로 중용되며 한동안 손흥민은 짧은 시간을 기용되는 조커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손흥민의 부친인 손웅정씨가 들쭉날쭉한 출전시간에 불만을 품고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광래 감독에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2013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의 분수령이었던 카타르전에서 종료 직전 짜릿한 극장골을 넣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본격적인 주전으로 올라선 것은 홍명보호 시절부터다.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짓고 물러난 최강희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4-2-3-1 전술에서 왼쪽 윙어 자리의 주전으로 손흥민을 낙점했다. 홍명보호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출장했고 알제리전에서는 첫 득점까지 기록하며 자기 몫을 해냈다.
 
이후 손흥민은 슈틸리케-신태용-벤투 감독 체제를 거치면서 부동의 주전이자 에이스로 성장했다. 2015년 9월 3일 열린 라오스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2차예선에서는 A대표팀 승선 이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두 번째 출전한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우즈베키스탄전(8강) 멀티골, 호주전(결승) 극적인 동점골 등 총 5경기 3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멕시코와 독일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총 3골로 안정환-박지성과 함께 역대 한국인 선수 월드컵 본선 최다득점자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연령대별 대표팀에도 와일드카드로 참여하여 2016 리우올림픽(4경기 2골)에서는 8강에 올랐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6경기 1골)에서는 금메달을 거머쥐며 병역혜택까지 얻었다. 손흥민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2번의 월드컵 본선과 3번의 아시안컵에 출전했고 연령대별 대표팀이 나서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도 한 차례씩 경험했다.
 
손흥민은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는 A대표팀의 주장에 임명됐다. 손흥민이 처음 주장완장을 찬 것은 신태용 감독 시절이던 지난 2018년 5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이었다. 러시아월드컵 이후 전임주장 기성용이 대표팀 은퇴의사를 밝히며 주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손흥민은 벤투호의 첫 국제대회였던 2019년 아시안컵부터 정식으로 주장을 승계받아 어느덧 4년째를 맞이했다. 지난 최종예선에서는 아시아 최다인 무려 4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3번째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끌었다.
 
국가대표팀에서 대체불가한 존재감
 
축하받는 손흥민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득점한 손흥민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축하받는 손흥민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득점한 손흥민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A매치 기록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손흥민은 가장 최근 경기인 칠레전을 포함 친선경기가 47경기로 가장 많았고, 월드컵·아시안컵 예선 경기는 총 35회였다. 국제대회 본선 경기는 아시안컵 본선이 12경기, 월드컵은 6경기에 출전했다. 손흥민은 100경기 중 선발로 뛴 83경기에 이르며, 주장으로 나선 것만 31경기(벤투호 30경기)에 이를 만큼 국가대표팀에서 대체불가한 존재감을 보였다. 그리고 한국은 손흥민과 함께한 100번의 경기에서 51승 17무 32패로 절반 이상의 승리를 기록했다.
 
손흥민은 한때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비하여 대표팀에서 다소 약하다는 이미지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손흥민은 이전의 에이스들인 황선홍-이동국-박주영같이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있고 윙어와 골잡이의 역할을 넘나드는 독특한 유형의 선수다. 감독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전술적 역할들, 아시아권에서 약팀들의 밀집수비를 뚫어야 하는 대표팀의 현실. 손흥민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상대의 집중견제가 몰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A대표팀에서 어느덧 32골을 넣으며 역대 한국 선수 A매치 최다득점 6위에 올라있으며 현역 선수 중에서는 단연 1위다.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정말로 부진했다면 이런 기록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A매치 역대 최다득점자인 차범근 전 감독(58골)과 2위 황선홍(50골)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기록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3위 박이천(36골), 공동 4위 김재한, 이동국(이상 33골)의 기록은 가시권 안에 있다.
 
좌우 양발을 자유롭게 쓰는 손흥민답게 오른발로 20골, 왼발로 넣은 골도 10골에 이른다. 헤딩골은 2골에 불과하다. 손흥민은 전반(9골)보다 후반(23골)에 압도적으로 많은 골을 넣으며 뒷심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클럽에서의 위상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득점력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대표팀에서의 손흥민이 마무리 역할보다 전술적으로 상대 수비를 끌어들여 동료들에게 찬스를 열어주는 상황이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준수한 득점력이다. 손흥민의 진가는 역대 한국인 선수 월드컵 본선 최다골(3골)-최종예선 2위(6골)에서 보듯, 큰 경기와 중요한 순간에 더 진가를 발휘한다는 데 있다.
 
이제 손흥민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대표팀에서의 '화룡점정'만이 남아있다. 손흥민 이전에 한국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차범근이 A매치 최다득점 기록을 보유했다면, 박지성에게는 월드컵 4강신화(2002년)과 원정 16강(2010년)이라는 업적이 있다.

손흥민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2022 카타르월드컵을 비롯하여 약 2번 정도 월드컵 본선과 아시안컵 등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손흥민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동안 '월드컵 원정 8강' 혹은 '반세기만의 아시안컵 우승'같은 성과를 이뤄낸다면 차범근과 박지성을 넘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한국축구 역대 넘버 1'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건강한 손흥민을 되도록 대표팀에서 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선대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지성-구자철-기성용 등이 모두 30대 초반의 나이에 부상에 시달리다가 일찍 대표팀을 은퇴한 것은 축구팬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표팀을 먼저 떠나지 않아도 나이가 들며 기량이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손흥민도 이제 어느덧 30대의 반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이 그동안 뛰었던 시간보다 더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30대 중후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며 대표팀에서도 건재하다. 축구팬들은 '손흥민의 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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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A매치기록 센츄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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