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스토리

 
사람은 누구나 세월의 영향을 받는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변함없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었다. 육체의 노화는 자연의 섭리이기에 거부할 수 없지만 그 시기를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노화의 가장 큰 적은 어쩌면 나이든 육체가 아니라 늙어가고 있다는 통념에 익숙해져버린 사고방식인지도 모른다.
 
지난 30일 방송된 tvN 스토리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에서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오늘의 독썰가로 등장하여 '늙는다는 착각(엘렌 랭어)'을 소개하며 인간의 사고방식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강연했다.
 
누구나 나이들면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신체적으로 예전에 가능했던 일도 지금은 어려움을 느낄 때, 작은 글씨가 보이지않거나 건강검진을 할때마다 이상을 느낄 때, 자주 연락오지않는 자녀나 지인에게 서운해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 등 우리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변화를 인식하고 나이들었다는 생각에 속상해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나이듬에 대한 착각이자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심리학의 거장이자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인 엘렌 랭어는 저서에서 인간의 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고방식과 마음가짐이라고 주장한다, 노인과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살려고 노력할수록 실제로 신체적인 노화도 지연된다는 것이 랭어의 주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 시간만큼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노화는 최대한 피하고 싶어한다. 늙지않는다는 것.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랭어는 요양원 거주 노인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더 많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장려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장소. 영화 선택 유무, 화초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한 노인들이 그 대조군이었던 노인들에 비하여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고 민첩했으며 심지어 사망률이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랭어는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에 돌입한다. 랭어는 1979년 당시 80대 초반의 노인 남성들을 실험 대상으로 섭외하여 20년전인 1959년을 기준으로 마치 현재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 생활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청소-설거지 등 집안일은 모두 스스로 하도록했다.
 
놀랍게도 실험 결과, 처음에는 거동조차 불편하던 노인들은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었고 체중이 불어났으며 관절 유연성과 손가락 길이, 손놀림까지 월등히 나아지며 외모까지 '더 젊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참가자들의 신체나이는 최대 50대 수준까지 향상됐다.이 연구는 이후 수십년간 노화에 대한 시각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을 제시했다. 랭어는 이를 통하여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체가 아니다.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는 실험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만일 우리의 삶이 다른 나이대 집단의 삶과 유사하다면 우리는 그 나이대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을까. 아니면 원래 나이대 사람들에 가깝게 나이를 먹을까.
 
여기서 저자는 배우자의 나이에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랭어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배우자를 만난 사람은 기대수명이 더 증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자들은 더 늙게 되어 기대수명보다 하락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생물학적 시계를 배우자의 나이와 맞추면서 기준이 달라진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인간이 심리적으로 자신을 위하여 정보를 구성하는 방식이 육체적으로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사람들이 '사회적 시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특정한 행동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사회적 역할을 고정해놓고 지키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 인간은 일정한 시기에 따라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과 출산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짓눌려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나이와 세대, 계급, 환경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인간들 사이에서 거리감과 갈등을 초래한다.
 
그런데 서로의 사회적 위치와 관점이 비슷해진다면? 예를 들어 카리스마넘치고 무서운 군대선임도 어리버리한 초보 시절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친숙함을 느끼거나, 불편한 고부관계도 졸업앨범이나 학창시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같은 시기, 같은 경험을 주제로 동질감을 느낄수 있다. 이른바 서로의 사회적 시계를 맞춤으로서, 세대와 지위를 떠나 거리감을 좁히면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거나 친밀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김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시계 때문에 우리 사회에 퍼진 잘못된 고정관념의 한국적인 사례로 '재수'를 꼽았다. 대입에 낙방하고 다음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재수라는 표현안에는, 이른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가는게 일반적이고 정상이라는 편견이 담겨있다는 것. 바로 우리가 정해놓은 사회적 시계에 맞추지않으면, 자칫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시계를 확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는 왜 이러한 사회적 시계에 맞추면서 살아야만하는가. 저자는 나이에 대한 재해석을 주장하면서 질병과 쇠약을 나이에 융합시키거나, 나이가 들면 무조건 감각과 욕망,신체적인 능력이 줄어든다고 가정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낸다.
 
나이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처럼 통한다. 그러나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노화를 통한 기억력 감퇴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밝혀냈다. 80대, 90대까지도 인간의 기억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김 교수는 사람이 나이 들고 무언가를 바로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노화보다 '간섭현상(머릿 속의 기억이 사라진게 아니라 다른 기억에 간섭받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과거부터 비슷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대상의 이름과 사건을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현재에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기억속에서 비슷한 항목의 충돌이 사라지며 간섭현상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만큼 나이들수록 다양한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든 사람들이 노동력을 상실하면서 쓸모없는 사회의 짐처럼 취급당하는 현상은 씁쓸함을 남긴다. 노인의 수행 능력이 우리가 정한 어떤 기준에 못미치면, 그 기준의 타당성을 검토하기보다는 그 노인의 잘못이나 실패로 여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창의력이나 학습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이 감퇴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 영화 감독 리들리 스콧과 조지 밀러 등은 모두 70대, 80대의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시력은 인간의 노화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런데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시력검사표(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글자가 작아지는)보다 뒤집어진 검사표(위에서 아래로 글자가 커진)로 검사를 받았을 때 참가자들의 시력이 향상되었다는 의외의 측정 결과가 나왔다.
 
차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글자가 더 잘보일 것인가 안보일 것인가하는 기대감에서 나왔다. 인간은 '내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그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대부분의 일이 쉬운 단게부터 시작하여 어려운 단계에서 한계에 직면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운 지점부터 시작하여 해낼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찾아내어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지않을까라는 질문이 랭어가 제시한 화두였다.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스토리

 
인간은 일상의 경험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경험만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안돼'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랭어는 요양원에 만난 상반신이 마비된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하고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을 질문하자 할머니는 자기 손으로 코푸는 것을 꼽았다. 저자는 한번에 팔을 쓰지못하는 대신 옆구리에서 코쪽으로 팔을 30cm만 옮겨보라고 주문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차피 안될 일이라고 시도조자 하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조금씩 포기하지않고 노력한 끝에 점점 팔을 움직일수 있게 되었고 결국 자기 손으로 코를 푸는 데 성공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긍정의 생각이 마비된 몸을 극복하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과 낙관만이 전부는 아니다.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울리히 슈나벨은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대비하는 습관'을 제시했다. 습관은 낙관과 대비를 결합시켜 '확신'을 이끌어낸다. 수상을 하거나 애인만들기처럼 목표한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좋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들은 사람에게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쌓게 해주며 지혜로운 낙관을 이끌어낸다.

사람들은 나이가 갈수록 미래를 계획하는 일을 소홀히 여긴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않거나 더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국 켄터키 대학교 데이비드 스노든 연구팀의 뇌연구에 참여했던 베르나데트 수녀는 작고하기전 80대의 나이에도 각종 인지 시험에서 최우수 성적을 기록했다.그런데 작고한 이후 놀랍게도 그녀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던 중증 치매 환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생전에 주로 수녀원 운영과 미래 발전 계획을 구상하는 업무를 전담했다. 자연히 뇌에서 이런 창의적인 영역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하며 본인도 모르게 치매 증상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 그만큼 미래를 그리며 계획하는 사람들은 잘 늙지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어떻게 늙어갈지를 좌우한다. 오늘날 육체적인 노화를 거부하고 이를 늦추려는 안티에이징(Anti-aging)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노화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수용하려는 웰에이징(Well-aging)이다. 나이가 들어도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고 우리의 삶을 더 발전시키기 위하여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이 정한 늙어가다는 통념에 우리의 삶을 끼워맞추게 된다.
 
그리고는 이는 노인만이 아닌 모든 세대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이가 젊어도 정신이 늙으면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간 것과 다를 바 없다. 외부의 요인에 의하여 한계를 가두지 말고 스스로의 가능성에 집중하여 '나의 숨은 잠재력'을 꺼내기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더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길이다.
책읽어주는나의서재 늙는다는착각 사회적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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