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에 역대급 새판짜기가 현실화됐다. 지난 5월 25일까지 2022년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자율협상 기간이 마감됐다. 이번 FA시장 '빅6'로 거론되었던 스타급 선수들의 행선지가 모두 결정되며 대규모 선수 이동에 따른 각 팀 전력과 차기 시즌 리그 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2022-23시즌 '연봉킹'은 서울 SK의 김선형이었다. 올시즌 SK의 통합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챔프전 MVP를 차지했던 김선형은 원소속팀과 계약기간 3년, 올해 보수 총액 8억원(연봉 5억 6000만 원, 인센티브 2억 4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FA 최대어 6인방 중 원소속팀 잔류를 선택한 유일한 선수다.
 
지난 2011년 드래프트 2순위로 SK에 입단해 줄곧 SK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한 프랜차이즈스타인 김선형은 두 번째 FA에서도 구단과 재계약했다. 나이와 팀내 위상-구단의 예우-여전한 기량 등을 고려할 때 이제 은퇴할 때까지 SK의 '원클럽맨'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SK는 안영준이 군에 입대했지만 김선형을 잔류시킨데 이어 가드 홍경기(계약기간 2년 첫 시즌 보수총액 1억 2000만 원)- 포워드 송창용(2년 첫 시즌 보수총액 7000만원)을 보강하며 2연패 도전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팀 내 또 다른 FA인 장문호와도 4500만 원에 1년간 FA 계약을 체결했다.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KCC 본사에서 열린 이승현과 허웅의 KCC이지스 입단식에서 이승현(왼쪽부터), 전창진 감독, 허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밝게 웃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KCC 본사에서 열린 이승현과 허웅의 KCC이지스 입단식에서 이승현(왼쪽부터), 전창진 감독, 허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밝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FA시장은 대어들의 이동이 유난히 활발했다. 특히 전주 KCC는 국가대표 빅맨 이승현과 정상급 슈터 허웅을 동시에 잡으며 이번 에어컨리그의 최대 '큰 손'으로 등극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9위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던 KCC는, 노쇠화 조짐을 드러내던 주포 이정현이 FA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했고 송교창이 군에 입대했지만 이승현과 허웅으로 단숨에 공백을 메웠다. 두 선수는 모두 5년 계약, 올해 보수 총액 7억5000만원의 동일한 조건으로 KCC에 합류하여 우승반지 사냥에 나선다.
 
KCC에는 리그 최고의 빅맨으로 꼽히는 귀화선수 라건아가 있다. 라건아와 이승현은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빅맨 듀오로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허웅은 정확한 3점슛과 함께 현재 KBL 최고의 인기스타로 꼽힌다. 여기에 스윙맨으로 활용도가 쏠쏠하던 내부 FA 정창영도 2억5000만 원에 3년 계약을 맺어 잔류시켰다.
 
KCC는 이상민-추승균-조성원-조니 맥도월에 활약했던 신선우 감독 시절, 하승진-강병현-전태풍 등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던 허재 감독 시절에 이어 또한번 올스타급 진용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다음 시즌도 우승후보로 꼽힐만 하지만, 군입대한 송교창과 유현준까지 복귀하는 2023-2024시즌에는 진정한 완전체로 역대급 전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다만 이승현과 허웅의 동시영입으로 샐러리캡이 빡빡해졌고, 원소속팀에 내줘야 할 보호선수나 보상금까지 감안하면 그만큼 출혈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변수다.
 
한편으로 두 선수의 이적을 아쉬운 표정으로 지켜봐야하는 이들도 있다. 이승현의 원소속팀 이던 고양 오리온은 최근 데이원자산운용에 인수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리온 시대의 추억를 대표하는 마지막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승현마저 팀을 떠나면서 오리온을 응원하던 팬들은 여러모로 착잡할 수밖에 없다.
 
허웅은 친아버지인 허재 전 감독과의 엇갈린 인연으로 또 한번 눈길을 모았다. 최근 허재가 신생구단 데이원자산운용의 임원급 인사로 농구계 복귀 소식이 알려지면서 FA자격을 얻은 허웅을 영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허재는 KCC 감독 시절 신인드래프트에서 허웅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부자가 한 팀에서 뛰면 불편한 게 많다''라는 이유로 끝내 지명을 포기했다.
 
이번에도 부자의 한솥밥은 불발됐지만, 아버지의 그림자는 여전히 허웅을 따라다닌다. 허웅의 첫 소속팀이었던 DB가 허재가 마지막으로 선수시절을 보낸 팀이었다면, KCC는 허재가 지도자 생활을 보냈고 두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우승을 달성했다. KCC의 사령탑인 전창진 감독은 허재와는 용산고 선후배 사이로 농구계에서는 유명한 절친이었고, 허웅과 이승현 역시 용산중고와 상무까지 함께 생활하며 오랜 브로맨스를 형성해왔다.
 
한편 KCC를 떠난 이정현은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서울 삼성의 유니폼을 입었다. 명가재건을 노리는 삼성은 은희석 감독을 새롭게 선임한 데 이어 KBL 정상급 슈터인 이정현을 3년 7억원에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기량이 조금씩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는 위험부담은 있지만, 일단 이정현은 지난 시즌에도 평균 13.1득점, 3리바운드, 3.3어시스트로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슛과 돌파가 모두 가능하여 공격옵션이 다양하고 특히 클러치타임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삼성에 큰 힘이 되어줄 전망이다. 다만 전성기보다도 확연히 떨어진 수비력과 잦아진 기복, 볼을 오래 소유하는 스타일상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시래와의 공존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가 변수다.
 
신생팀 데이원은 안양 KGC의 우승을 이끈 김승기 감독과 전성현을 잇달아 영입했다. 현역 KBL 최고 슈터로 꼽히는 전성현은 스승을 따라 4년 7억5000만 원의 조건에 데이원과 손을 잡았다. 지난 시즌 4강을 달성한 오리온을 인수한 데이원은 기존의 이대성-이정현에 이어 전성현까지 영입하며 KBL 최고 수준의 백코트를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KCC로 떠난 골밑의 수호신 이승현을 잃은 빈 자리가 커보인 데다 기존의 에이스로 개성이 강한 이대성과 김승기 감독의 궁합이 어떨지가 변수다.
 
허웅이 이탈한 DB는 MVP 출신 두경민을 4년 5억 원의 조건에 다시 데려오며 발빠르게 공백을 메웠다. 2017-2018시즌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시즌 MVP를 차지했던 두경민은, 지난해 6월 강상재 박찬희와 2대 1 트레이드를 통해 대구 한국가스공사로 이적했다. 하지만 김낙현-앤드류 니콜슨과 공존과 실패하여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자신을 밀어낸 허웅이 KCC로 떠나면서 결국 1년 만에 친정팀으로 컴백하는 파란만장한 행보를 이어가게 됐다. 또한 DB는 내부 FA였던 베테랑 장신가드 내부 FA 박찬희와 2억 1천만원에 2년 재계약을 체결하고 데이원에서 포워드 최승욱을 2년 1억1천만원에 영입해 백업을 보강했다.
 
한국가스공사와 KT는 대어급 영입은 없었지만 준척급 선수들을 보강하며 실속을 챙겼다. 가스공사는 현대모비스에서 포워드 박지훈(2년 2억2천)을 데려온 데 이어, SK에서 이원대(3년 1억 2천)와 KGC에서 우동현(3년 5천2백)을 영입하여 가드진을 강화했다. 허훈이 군에 입대한 KT는 내부 FA 김영환(2년 2억 2천)과 재계약하고 이현석(3년 1억8천)과 김동량(3년 1억 6천5백)을 데려왔다. 반면 지난 시즌 큰 손으로 활약하던 창원 LG와,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이 진행중인 울산 현대모비스는 상대적으로 이번 FA시장에서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팀은 단연 KGC다. 2020-21시즌 우승, 지난 2021-22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던 KGC는 지난해 이재도의 LG행에 이어 올해는 김승기 감독과 전성현까지 팀을 떠나며 우승 주역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나마 김상식 전 국가대표 감독을 대안으로 영입한 데 이어 또다른 내부 FA인 노장 양희종을 3년 2억 2천에 잔류시켰다. 지난해 오세근에 이어 상징적인 원클럽맨은 지켰다는 게 위안이다. KGC는 김철욱 (2년 1억2천)의 복귀를 비롯하여 정준원(3년 9천)-배병준(1년 9천) 등 롤플레이어들을 영입했지만 큰 전력보강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음 시즌 프로농구는 큰 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연패에 도전하는 SK와 명가재건을 노리는 KCC가 사실상 나란히 여름 에어컨리그의 승자로 부상했다. 반면 지난 시즌 2·3위를 차지했던 KGC와 KT는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군입대 공백으로 고전이 예상되고, 감독과 핵심선수들이 대거 물갈이된 데이원이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역대급 선수이동이 남긴 후폭풍이 다음 시즌 프로농구에 어떤 새로운 스토리와 활력을 불어넣을지 기대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농구 FA시장 허웅 이승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