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란 공공의 권력이나 사법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 또는 집단이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피해를 구제해주거나 억울함을 갚아준다는 뜻에서 '사적 구제'나 '사적 보복'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대사회에선 질서 유지의 주요한 수단이었던 사적 제재는 이후 사법 체계가 만들어지며 국가가 형벌권 행사를 전담하게 되자 금지되었다.

오늘날 법치주의 국가에서 위법인 사적 제재는 여전히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는 대중문화의 중요한 소재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홍길동, 각시탈 같은 히어로가 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사적 복수를 소재로 삼은 웹툰 <비질란테>, 드라마 <지옥> <모범택시> <빈센조>가 많은 이의 공감과 대리만족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8일 방송한 KBS1TV <시사직격> '법 대신 나선다!-온라인 사적 제재, 정의인가 일탈인가'편은 디지털 시대에 사적 제재를 하는 사람들과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이들은 왜 정당한 법적 처벌 대신 사적 제재를 선택한 것일까?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사람들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KBS

 
현실에서 사적 제재는 온라인상에서 가장 활발하다. 개인방송 운영자인 이승원씨는 중고차 허위매물 사기, 폭리마진을 당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 그는 우연히 지인의 중고차 사기 피해 사건을 해결해준 뒤 본격적으로 해결사로 나섰다고 한다. 법적 절차를 밟기 어려운 노약자나 소송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고통받는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와 언쟁을 벌이고 피해 금액을 돌려받는 과정은 전부 개인방송을 통해 알리고 있다. 이승원씨처럼 해결사를 자처하는 개인방송 운영자는 늘어나는 중이다.

온라인상에서 사적 제재는 SNS나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면 소위 '화력지원', '좌표찍기'라 불리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수입 렌터카 100여 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범죄 조직이 검거된 사건의 배경엔 한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의 활약이 있었다. 한 회원의 주차 갑질을 고발하는 글이 발단되어 회원들이 각자 알아낸 정보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렌터카 사기 범죄 집단의 꼬리가 잡힌 것이다.

법을 넘어선 사적 제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사법 체계의 진행 과정이 느리고 문턱이 높아서다. 한편으로는 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한 점도 크다. 2021년 한국법제연구원에서 발간한 '국민법의식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의 경우 현재의 처벌 수준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여론은 무려 87.7%(매우 약하다 60.2%, 약하다 27.5%)를 넘었다. 최근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 기준과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대중이 생각하는 법 감정과 현실적 처벌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뜻이다.

지난 2021년 12월, 참혹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후 만기 출소한 조두순의 자택에 한 20대 남성이 침입해 둔기로 머리를 가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을 바라보는 이웃들은 "(조두순을) 더 세게 때렸으면 좋겠지", "(조두순의) 피해에 동정하고 싶지 않아요. (조두순을) 때리러 간 사람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수상해와 주거침입으로 구속된 남성을 두둔한다.

무자비한 학대로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의 목숨을 앗아간 양모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를 우편함을 임의로 뒤져서 폭로한 개인방송 운영자 정병곤씨에 대한 대중의 시선도 관대하다. 편지의 무단 공개는 분명 위법한 행위이지만, 공익을 위한 일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KBS


기억해야 할 하나의 원칙

드라마 <지옥>에서 죄인을 지목하고 사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직접 응징하는 '화살촉'에서 볼 수 있듯 군중의 분노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음식과 관련한 유명 방송 운영자를 통해 다른 음식점의 메뉴를 표절했다는 폭로를 당한 한 음식점의 사장은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악성댓글과 별점테러를 당하며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가게의 평판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을 겪었다. 

사적 제재는 개인이 하는 활동이기에 정보의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 성범죄의 잔혹함이 만천하에 드러난 N번방 사건 이후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과 함께 운영자 외에 이용자들의 신상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직접 혐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겠다며 나타난 '디지털 교도소' 역시 무고한 피해자를 낳았다. 당시 조작된 증거로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되었던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디지털 교도소 사건은 "현대판 마녀사냥"이라 규정한다.

그렇다면 사적 제재는 무조건 나쁜 행위인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폭로하는 일은 때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미투 운동'이다. 용기를 낸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뒤흔들며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배드 파더스'도 위법 여부를 떠나 이 문제를 공론화한 바가 크다. 분명 법이 있더라도 적절한 처벌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복잡한 사법 체계를 활용할 여력이 안 되는 피해자도 상당하기에 사적 제재의 공익성을 무시할 순 없다.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시사직격> 방송의 한 장면 ⓒ KBS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처벌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다양한 기준과 방법으로 옮기게 되면 질서가 파괴되며 무법의 상태로 빠지게 된다. 해결책은 없을까? 입법부와 사법부는 불신을 해소하도록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처벌을 해야 한다. 국민도 사회적 감시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공권력 작동의 근본으로 자주 인용되는 원칙을 기억할 필요성이 있다. 이 원칙을 온라인 사적 제재와 과정에서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가 힘없는 개인을 지키는 수단일지, 아니면 위험한 흉기일지는 우리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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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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