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영상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영상 캡처 ⓒ AFP/연합뉴스

 
"제가 우크라이나 군에게 항복을 명령했다는 가짜 정보가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자, 들어보세요. 저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고, 우리 조국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국가,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26일 오후 전 세계로 타전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메시지다. 이렇게 본인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라이브 영상을 송출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도 키예프를 지키며 사흘째를 맞은 러시아가 자행한 우크라이나 침공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호소하고 있었다.

이처럼 젤린스키 대통령을 필두로 러시아의 침공에 결사항전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분투가 국내외 언론은 물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중이다. 키예프의 시장부터 초로의 여성까지 중화기와 소총을 든 우크라이나 정치인과 국민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 공영 방송들도 이러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주요 뉴스로 발빠르게 전하는 중이다. 25일에 이어 26일에도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 톱뉴스는 당연 우크라이나발 현지 보도였다. 헌데, 그 시각 두 공영방송의 유튜브 채널은 의아할 수밖에 없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중계 중이었다 .       

의미도, 정보도 없는 공영방송의 실시간 전쟁 중계  
       
 MBC NEWS 유튜브의 [LIVE]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수도 키예프 실시간 영상.

MBC NEWS 유튜브의 [LIVE]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수도 키예프 실시간 영상. ⓒ 유튜브 캡쳐

 
"우크라이나 현장 영상이 아닌 다른 영상이 송출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에프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시위 현장이나 미국 현지 등 우크라이나가 아닌 다른 지역 영상이 송출될 수 있습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영상 송출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KBS News(뉴스) 유튜브 채널이 게시해 놓은 공지 내용이다. 위 공지처럼, 지난 25일부터 해당 KBS 유튜브 채널은 키예프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 중이다. 영상 제목은 <LIVE -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이 시각 키예프 현장‧세계 각국 관련 속보>. 

MBC도 대동소이했다. 앞선 24일부터 영상을 송출한 MBCNEWS 채널의 관련 영상 제목은 <[LIVE]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수도 키예프 실시간 영상 | View of Kyiv as Russia launches Ukraine invasion>이었다.

해당 채널은 영상 설명을 통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는 그 날까지, '끝까지 라이브' MBC 뉴스가 함께합니다"라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실시간 영상을 전해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두 공영방송이 CCTV 영상을 비롯해 키예프 시가지 및 우크라이나 국민들 모습을 경쟁적으로 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영상들의 구성은 간단하다. 간간이 폭격음이 들리는 키예프 시가지 전경이 내
려다보이는 고정된 하이앵글(부감) CCTV 영상을 송출하거나 도심 외각에서 피신 중인 키예프 시민들이나 시가지를 지키는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전부다.

초반에 송출된 영상 구성 또한 어떤 설명도 없었다.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는 것도도, 주요한 리포트가 포함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요즘 유튜브 등을 통해 유행하는 '불멍'이나 '물멍' 영상과 닮아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쟁을 중계하고 소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영상들이었다.

약속이나 한듯 양 방송사는 같은 출처, 같은 내용의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사흘 째를 맞으면서 양 방송사는 간간이 자사 리포트를 영상에 삽입하거나 동시 송출하는 다소 간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었다.  

예상 그대로, 댓글 창은 목불인견 수준이었다. 20대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인 만큼  유력 후보들을 지지하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욕하거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코미디언 이력을 비방하는 혐오성 댓글도 적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물론 양 국가 군인들이 숱하게 희생된 전쟁의 비극을 누군가 혐오와 배설의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심지어 양 방송사는 이 영상에 유튜브 광고까지 붙여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소셜 미디어상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영방송이 타국의 전쟁을 마치 게임 영상이나 '불멍' 영상처럼 소비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거나 '전쟁 포르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었다. 한 영화 감독은 본인 소셜 미디어에 "만약 서울에 전쟁이 났는데, 우크라이나 방송국에서 서울 CCTV를 유튜브 생중계한다고 생각해봐라"라며 보도윤리를 의심케 하는 해당 영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인 방송인은 왜 분노했나  
 
 25일(우크라이나 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추락한 항공기의 파편이 보이고 있다.

25일(우크라이나 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추락한 항공기의 파편이 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한국 뉴스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영상을 만드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곧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거 알겠는데, 다른 나라에 대한 여론몰이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진짜 아닌 것 같다."

KBS1 <이웃집 찰스> 등에 출연한 우크라이나 출신 방송인 겸 모델 올레나 시도르추크가 26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게시한 글 중 일부다. 시도르추크를 이렇게 분노케 한 뉴스 영상 역시 공영방송의 디지컬 콘텐츠였다.

지난 25일 MBC <엠빅뉴스>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위기의 리더십'이란 영상을 자사 홈페이지 및 유튜브 등에 공개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했다. 해당 영상에서 <엠빅뉴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에서 대통령이 된 드라마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아마추어 같은 그의 정치 행보도 비판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코미디언 이력이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국정 운영이나 외교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푸틴 정권의 책임론이야말로 전쟁 발발의 가장 큰 요인으로 손꼽힌다는 사실이리라. 

이런 가운데 MBC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아마추어리즘' 운운한 것은 미국 등 서방 시각에 치우쳤다거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평가와는 동떨어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시도르추크가 한글로 적은 날선 지적이 딱 그랬다. 그는 MBC의 이런 평가가 우리 대선을 염두에 둔 편협한 시각이란 일침으로 나아갔다. 

"원하는 그림만 보여주고 일부 팩트만 이야기하면서 '우크라이나처럼 되지 않게 선거를 잘하자'는 메시지를 푸쉬해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언론사가 할 짓인가(...). 언론사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이어 시도르추크는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 72%가 바보라고 생각하는가. 우크라이나 정치 배경을 1도 모르니까 우리의 이런 선택을 절대 이해 못 하는 거다"라며 "지금 상황에서 젤렌스키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올바른 정책 덕분에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어느 때보다 통합됐다. 우크라이나가 8년째 전쟁 중인 걸 잊지 말자"고 꼬집었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한 듯 26일 <엠빅뉴스>는 해당 영상을 삭제 조치했다. 반면 26일 오후 9시 현재까지 양 공양방송 유튜브 채널의 키예프 실시간 영상은 여전히 전 세계로 타전 중이다.

CNN 등 미국 뉴스 채널이 이라크 전쟁을 실시간 중계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방송사의 전쟁 보도가 여기까지 진화(?)했다. 일부 방송사들의 실종된 저널리즘 윤리를 꾸짖은 우크라이나인 방송인의 일침을 경청할 때가 아닌가 싶다. 

"프레이밍도 적당히 하는 게 능력이다. 개인 유튜브도 아닌 언론 매체인데, 언론인답게 중립적으로 뉴스를 보도해라. 이런 행위는 언론이라는 탈을 씌운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최소한 새로운 정보를 얻는 시청자들을 위해 선을 지킬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한 예의이다."
MBC KBS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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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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