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르가 섞이지 않고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이 서구권과 비슷해졌다. 한국 드라마가 서구권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방송 제작 스타일에 가까워질수록 해외 시청자들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지난 9일 <연합뉴스>가 '한류 연구 미국학자 "K-콘텐츠, 고유성 지켜야 지속 성장"' 기사에서 전한 애덤 스타인먼 워너브라더스 부사장의 미국 시장 내 K-콘텐츠 성공 요인이다. 애덤 부사장은 이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2022 글로벌 콘텐츠 콘퍼런스'의 발표자로 나서 BTS 및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 전 세계가 놀란 K-콘텐츠의 성공을 두고 "모두가 한국 콘텐츠를 원하는 세상이 됐다"고 평했다.

맞다. 영상 분야만 놓고 보자면 <기생충>을 필두로 한 한국영화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미국 내 성공은 K-콘텐츠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미 도달했다는 증거라 봐도 무방하다. 이는 곧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전 세계 영상 콘텐츠 수용자들이 K-콘텐츠를 할리우드 스타일과 비교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징어 게임>으로 폭발한 K-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재분석할 생각은 없다. 다만, K-콘텐츠가 작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미국 대형 배급사의 부사장이 꼽은 핵심은 분명 시의적절해 보인다.

할리우드 스타일에 근접하는 것이 최선일 순 없다. 같은 컨퍼런스에서 한류 콘텐츠 전문가로서 기조연설자에 나선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사회학)가 "과거의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언급하며 "한국 콘텐츠의 고유성"을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일 터다.

이어 샘 리처드 교수가 꼽은 K-콘텐츠의 독특함은 분명 시의적절하고도 유의미한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공개 후 11일 연속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유지 중인 <지금 우리 학교는>의 독창성 및 성공요인을 설명할 수 있는, 두 서구인의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해석 말이다.

K-콘텐츠에 대한 두 미국인의 흥미로운 해석

보도에 따르면, 샘 리처드 교수는 한국 콘텐츠의 독특함 중 하나로 "폭력성과 선정적인 내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점"을 꼽았다고 한다. 누구는 공감하고 또 누구는 의아할 만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을 둘러싼 폭력성과 선정성 논란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말이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이 해석조차 서구권 스타일과의 공통점과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좀비물의 경우, <지금 우리 학교는>이 미국식 좀비물과 비교해 딱히 폭력성을 전시하는 방향의 결과물이라 보기 어렵다. 미국 지상파는 물론 OTT 드라마나 영화 속 좀비나 호러 장르물과 비교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수위가 결코 높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성의 간접적인 표현'이 한국 콘텐츠의 독특함이라니. 북미 등 서구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다면 혹은 한국 영상물이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시청자들은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콘텐츠는 표현 자체 수위보다 한국 특유의 리얼리즘 성향으로 인해 (폭력성을 포함한) 정서적 농도가 훨씬 진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샘 리처드 교수가 콕 짚어 <지금 우리 학교는>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인을 매료시킨 K-콘텐츠인 <오징어 게임>과 < D.P >, <지옥>의 공개 이후 같은 반응을 확인한 바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포함해 장르물인 이 작품들이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중에서도 K-좀비물이 사랑 받는 이유를 묻는다면, 서양의 좀비물보다는 좀 더 뜨겁기 때문 아닐까 싶다. '뜨겁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등장하는 인물의 정서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훅' 다가서는 것 같다.
(9일 무비스트 <생존보다 중요한 건 책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재규 감독> 인터뷰 기사 중에서)

이처럼 이재규 감독도 이와 관련해 "뜨겁다"는 표현으로 비슷한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요약하자면, 전반적인 작품 완성도나 형식에 있어 서구적인 기준에 다가가면서도 좀 더 진하고 뜨거운 정서적 농도가 폭력적인 장면의 노출보다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

<지금 우리 학교는>이야말로 이러한 스타일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인이 흥미롭게 소비하는 좀비물로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폭력성과 선정성의 수위를 조절하며 한국적인 뜨거운 정서로 감정에 소구하는 것이다. 다른 듯 같은 맥락에서, 한때 한국 관객들이 그리 질타했던 K-신파가 장르적인 완성도와 한국식 작가주의를 만나 긍정적인 진화를 이뤄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의 폭력성에 관해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콘텐츠들의 가장 큰 특징은 '욕설로부터의 해방'이라 할 수 있다. 떠올려 보라. 역시나 전 세계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미드' <브레이킹 배드> 속 가장 유명한 대사가 주인공 중 한 명인 '약쟁이' 제시의 'Bitch!'였다는 사실을. 반면 우리 지상파 콘텐츠들은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곤 강력한 심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직접적인 욕설이 대표적인 제한 사례였다. 그런데 OTT가 이를 해방시켰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앞서 <인간수업>이 있었다. 고등학생을 주인공 삼아 학교 내 폭력이나 따돌림을 주요 소재로 삼았던 <인간수업> 역시도 폭력성이나 선정성 논란이 일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간 지상파나 케이블의 강력한 심의는 드라마 창작자들에게 자기 검열을 작동시킬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다. 그들이 OTT로 나가면서 훨씬 큰 창작의 자유가 허용된 것이다.

샘 리처드 교수의 평가가 진짜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서구의 평론가가 보기엔 우리 콘텐츠가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도리어 간접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라는 것이다.

이렇게 폭넓게 허용된 표현의 자유 앞에서 폭력성이나 선정성이란 유혹에 흔들리느냐 마느냐는 창작자들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고 수준 높은 한국 관객들이 이를 허용할 리 만무하다. 

보도에 따르면, 샘 리처드 교수도 한국 콘텐츠가 독창적인 또 다른 요인으로 "서구에서 젠더 개념이 재평가되는 변화 속에 아이돌을 필두로 한국의 남성성이 그 경계를 허문 점,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공감할 스토리텔링과 이슈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고 한다. 이 역시 폭력성이나 선정성과 함께 고민해 볼 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 시청자들 역시도 K-콘텐츠의 자극적인 표현 수위에 집중하기보다 (젠더 이슈를 녹인) 캐릭터나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사회비판적인 요소에 반응하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오징어 게임> 등에 대한 평가가 딱 그랬다.  

<지금 우리 학교는> 공개 직후 초반부 일부 장면을 두고 제기된 논란이 안타까운 것은 그래서다. 몇몇 장면을 두고 제기된 폭력성 논란은 12부작 전체를 놓고 보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순 있다. 하지만 작품의 전개나 주제와의 밀착도로 봤을 때, 폭력의 전시라기보다 캐릭터 설정이나 향후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서적인 환기에 더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좀비 바이러스의 최초 생성자이자 학교 폭력 피해자인 과학 교사의 아들이 당하는 폭행에 이은 분노 장면도, 중후반부 주요한 캐릭터로 부상하는 성폭력 피해자 및 가해자 학생에 대한 묘사 역시도 그런 맥락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이은 <지금 우리 학교는>의 성공과 맞물려 K-콘텐츠는 이제 해외 시청자들이나 평자들에게 '볼 만하다', '특별하다'라는 인식의 궤도에 올라섰다. 넷플릭스 순위를 통한 결과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할리우드 스타일에 대한 근접만큼이나 그간 쌓아 올린 우리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지키는 동시에 폭력성이나 선정성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두 미국인 평자들의 고견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지금우리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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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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