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찬(Figo Chan)이란 이름의 사내가 보름 전인 지난달 16일 홍콩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시민인권전선이라 불리는 단체의 대표였던 그는 지난해 홍콩안전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피고 찬과 함께 전직 국회의원 등 6명에게도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들이 반대한 홍콩안전법 위반 혐의가 이들에게 적용됐다.

국가분열과 정권 전복, 테러활동, 타국 세력과의 결탁 등을 처벌하는 홍콩안전법은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이를 옭아매는 악법이 아니냔 비판을 받는다. 폐지 요구가 일고 있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떠올리면 이해가 편할지도 모르겠다. 홍콩안전법 제정 뒤 홍콩은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탄압받고 사상의 자유도 억압받는다. 지난달 27일엔 무려 '중국 안보 이익을 침해하는' 영화를 사전 검열해 금지하겠다는 영화검열법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했다.
 
 <경칩> 스틸컷

<경칩> 스틸컷 ⓒ GIFF

 
혁명 열기 꺾인 홍콩... 분위기는 얼어붙고

몇 년 전만 해도 홍콩은 한국과 중동의 몇몇 나라가 그러했듯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들끓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권 전역을 휩쓴 자스민 혁명의 열기가 가시기 전인 2014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주를 외치는 우산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자스민 혁명이 그러했듯 우산혁명도 자본과 총칼의 논리 아래 급격히 얼어붙었다. 홍콩안전법 제정 뒤 민주화를 주도한 인사들은 붙잡혀 감옥에 갇히거나 외국으로 망명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의 오늘은 냉엄한 겨울이다.

한 노인이 있다. 차슈덮밥 한 그릇을 방금 비우고도 다시 차슈덮밥 한 그릇을 주문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노망이 들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뚝뚝 끊어지는 기억은 노인을 다음 장면으로 이끈다.

거리엔 홍콩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문구가 라카로 적힌 시내버스가 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 문구를 바라보는 이들 중 누구도 입 밖으로 민주주의를 꺼내지 못한다. 홍콩은 여전히 얼어붙은 겨울이다.
 
 <경칩> 스틸컷

<경칩> 스틸컷 ⓒ GIFF

 
노망난 노인 때리며 "깨어나라" 외치는 여인

노인 앞에 웬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노인의 얼굴을 때리고 주문을 외운다. 호랑이에게 피 묻은 고기를 물리고 기도를 한 뒤 그 목을 자른다. 잘린 호랑이의 목에서 검은 벌레 수백 마리가 나와 붕붕 날아다닌다. 호랑이에게 제물을 올리지 않으면 그가 사람을 해친다고, 여자는 노인의 정신을 돌려놓겠다며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한다.

정신 나간 노인과 그의 정신을 붙잡아오려는 여자의 이야기를 프랑스 애니메이터들이 짤막한 애니메이션으로 담았다. 오늘날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엔 <경칩>이란 제목이 붙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 그가 잡아먹을 수많은 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이다. 바야흐로 봄이다.

노망난 노인의 정신은 겨울을 지낸 개구리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경칩>은 프랑스혁명과 민주주의의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 영화인들이 영화조차 검열을 피하지 못하게 된 홍콩의 사정을 듣고서 제작한 영화다. 국제영화제를 표방한 강릉이 한국 관객들에게 <경칩>을 소개한 건 그래서 의미가 크다. 군부독재 정권을, 이후 다시 부활한 꼭두각시 정권을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온 한국이 홍콩의 오늘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칩> 스틸컷

<경칩> 스틸컷 ⓒ G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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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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