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는 남몰래 혼자 울기도 하겠지
그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그럴 때 누가 네 옆에 있어줄까? (중략)
생각지도 못한 슬픔
생각지도 못한 기쁨
삶이란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가득찬 숲
그 숲 깊은 곳으로 너는 걸어가겠지." 
- 유모토 가즈미,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중에서.


준완(정경호 분)과 익순(곽선영 분)이 헤어지고 난 뒤 배경음악으로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이 흘렀고,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아래 <슬의생2>) 이야기는 1년을 훌쩍 건너 뛰었다. "일년 뒤에도 그 일년 뒤에도 널 기다려"라는 노래 가사처럼 준완은 여전히 익순을 못 잊었지만 율제 병원의 일상은 여전히 분주하다. 드라마는 학생에서 인턴으로, 전문의로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제 막 인턴이 된 홍도(배현성 분)와 윤복(조이현 분)의 실수담 덕분에 말 그대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환자의 두 콧구멍을 막아버리며 콧줄을 낀 윤복이 떠올라 어깨가 실룩인다. "'리차드슨 아웃'만 하면 100점"이라는 추민하(안은진 분)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이행하느라 리차드슨과 함께 수술실 밖으로 나가버린 홍도의 실수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한 장면 ⓒ tvN

 
시작은 '서툶'의 동음이의어다. 제 아무리 공부를 해도 부족한 경험은 늘 실수를 만들어낸다. 또한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기에 거기에 실린 마음 만큼이나 깊은 아픔을 남기기도 한다. 전공의 창민(김강민 분)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어린 환자 창민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어린 창민은 결국 병환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의연해 보였던 전공의 창민은 의사로서 사망 선고를 차마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슬의생2>는 새로운 시작을 서툶과 아픔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시작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홍도와 윤복의 실수담부터 창민과 겨울(신현빈 분)의 아픔, 자괴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는 교수가 된 '99학번 동기들'의 실수담으로까지 이어진다. 

뇌사 상태에 빠질 뻔한 오토바이 사고 여성도 구해내고, 임신중독증 산모도, 1.6kg 아기의 식도 폐쇄증도 치료하는 이들에게도 어리버리한 인턴의 시절이 있었을까. <슬의생2>는 홍도의 '리차드슨 아웃' 사건 못지 않은 이들의 설압자 해프닝을 소개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교수들도 과거에는 실수 투성이였다는 후일담으로 끝내지 않는다. 두 코를 다 막아버린 윤복에게 환자는 "딸도 신입사원"이라며 "괜찮다"며 외려 다독인다. 

드라마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의사로서 사망 선고를 해야 했지만 감정을 추스르느라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창민은 준완을 찾아가 사과한다. 그런 창민에게 준완은 담담하게 "울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환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고. 대신 "울 수도 있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은 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한 장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한 장면 ⓒ tvN

 
서툰 시작은 우리가 살아가며 불가피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따라 이후의 행보는 달라진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저 실수를 더 쌓아가는 게 아니라 그 실수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슬의생2> 6회의 미덕은 "우리도 실수를 했다"가 아니라, 그 실수를 통해 선배 의사들이 쌓아뒀던 '의사는 감정을 표현해선 안 된다'는 벽을 허물었다는 점이다. 

실수와 상처를 겪는 이야기는 결국 과연 어른됨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어른은 그저 더 많은 경험을 겪으면 어른이 되는 것일까? 앞서 실수를 하고, 아픔을 겪으면 어른일까? 아니, 드라마는 말한다. 후배들의 실수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어른이라고. 그리고 선배들이 만든 허상을 넘어 진솔한 인간의 모습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이 어른이라고. 그리고 어떤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오늘도 그렇게 <슬의생2>는 어른 '99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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