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마다 아이가 하나나 둘인 시대다. 아니 가끔 셋이기도 하지만 드물다. 이제는 안 낳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저러한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더 공이 들어간다. 그런데 어쩐지 아이를 키우는 게 점점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지난 12일부터 EBS <다큐 프라임>은 3부작으로 '아이'를 방영하고 있다. 중세 시대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으로 여겨졌고, 당연히 교육도 그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계몽 사상가 존 로크는 아이는 백지 상태에 태어난다고 했다. 역시나 백지 상태의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했다. 2021년,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다큐 프라임>은 21세기에 걸맞은 교육관을 위해 아이들의 존재와 성장의 비밀에 주목한다.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일춘기,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첫 번째 시기 

그 첫 번째 시간은 '일춘기'이다(지난 12일 방송). 사춘기나 오춘기는 흔한 말이지만, 일춘기라니. 춘기라는 접미사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뜻한다. 그렇게 본다면 일춘기는 인생 첫 번째 질풍노도의 시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왜 우리 아이는 남들과 다를까'일 것이다. 왜 우리 아이는 남들처럼 얌전하지 않고, 왜 우리 아이는 남들처럼 어울려 놀지 않고, 왜 우리 아이는 자기 중심적일까 등등.

그런데 다큐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에게 성격과 기질이 있는데, 이 중 기질은 천성적으로 타고 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의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 타고난 성질이 사회와 부딪치며 자신을 드러내는 역동적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과정이 3살에서 5살 사이 '일춘기'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큐는 아이들이 가진 고유의 기질을 알면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가진 고유의 기질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아동 심리학자 메리 로스바트는 크게 내향성, 의식적 통제, 부정적 정서 등으로 아이들의 기질을 구분한다. 다큐는 이런 지표에 따라 아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참 다른 아이들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 ebs


다섯 살 아린이가 타고 가던 킥보드가 고장난다. 그런데 아린이는 킥보드를 던져 놓고 곧 옆에 있는 나무에 매달린다. 인터뷰 중, 아린이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기도 하고, 뱀이 되기도 한다. 엄마는 아린이에게 말한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고. 겉으로 볼 땐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한 아이로 보인다.  

반면 일곱 살 원이는 공룡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공룡 박사지만 글루건을 녹여서 하는 붙이기 활동 같은 건 뜨거울까 봐 안 하고 싶단다. 엄마는 잘 그리지만, 새로 만난 선생님을 그리는 것은 싫단다. 이유는 잘못 그릴까 봐 걱정이 앞서서다. 

여섯 살 유찬이는 동생이랑 잘 싸운다. 자신이 놀고 있는 걸 동생이 뺏는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공룡 풍선은 유찬이가 지켜야 할 대상이다. 당연히 엄마는 그런 유찬이를 혼낸다. 

반면 다섯 살 담이 엄마는 담이가 너무 눈치를 보는 거 같아서 속상하다. 거절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선생님과 함께 그림 그리는 시간, 담이는 선생님이 말하는 모든 것을 그린다. 말만 하면 다 그려줄 태세다. 

또 다른 다섯 살 도하는 양말이 축축하다며 인터뷰에 집중을 못 한다. 엄마가 새 양말로 신겨줬지만 양말이 두껍다며 영 마땅치 않아 한다. 바깥 놀이에서 아무리 불편해도 땅에 엉덩이를 대지 않는다. 손에 흙이 묻지 않아도 털어댄다. 아무리 친구가 맛있다고 해도 잘 모르는 맛은 안 먹고 싶다. 

세상에 나쁜 기질은 없다

듣고 보면 다들 '문제 투성이' 아이들이다. 정말 그럴까.  

킥보드가 고장 나자 새 놀이감을 찾는 아린이를 본 전문가는 '산만하다'고 하는 대신 주의 배분·분산 능력이 좋다고 말한다. 수렵 시대에는 굉장히 유리한 기질이었지만, 집중을 강조하는 현대에 와서 불리한 기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이는 어떨까? 엄마는 뭐든 싫다고 하는 원이가 걱정이지만 전문가는 원이에게 인내력 성향이 강하다고 진단한다. 자기 결정권의 존중감이 강한 원이는 하기 싫은 걸 하라고 하면 힘들어 한다. 하지만 분명 훌륭하게 본인의 것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걸 드러내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영역이 존중될 때 원이의 얼굴은 밝아진다. 

동생과 싸워서 늘 혼이 나는 유찬이, 그런데 동생과 둘만 남자 유찬이가 달라진다. 형아답게 동생을 돌본다. 넘어져서 코가 아프지만 동생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 꾹 참고 일어나 다시 동생과 놀아준다. 자극 추구 성향이 강하고 위험 회피 성향이 낮은 유찬이는 적응에 유리한 안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과 맥락을 잘 구분하며 통제 능력이 뛰어나다. 엄마의 눈에 자기 것만 지키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찬이는 사실 엄마 앞에서도 멋진 형이고 싶은 아이다. 

너무 남을 배려해서 걱정이라는 담이는 사회적 민감성과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 아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날 예뻐했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그러니 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앞선다. 엄마는 담이 자신의 색깔이 없을까 걱정하지만, 바로 그 배려가 담이의 강점이다. 

다큐는 일관되게 말한다. 좋은 기질이나 나쁜 기질은 없다고. 아이들은 한 명, 한 명이 우주라고. 그리고 말한다. 2살에 형이 된 유찬이처럼 아이로 사는 것도 쉬운 건 아니라고. 부모들의 몫은 그저 아이들이 가진 기질을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힘들게 도하를 가진 엄마는 새로운 자극에 경계심이 크고 발자국 한발 떼는 게 쉽지 않은 도하가 키우기에 힘든 기질이라고 하자 이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늘 자신이 뭘 잘못해서 도하가 저럴까 생각하던 엄마는 아이의 원래 기질이 그렇다는 말에 숨통이 트이는 모습이다.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EBS <다큐 프라임>- '아이 1부 : 일춘기' ⓒ EBS

 
하지만 그런 기질도 사회적 과정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2006년에서 2021년까지 15년 동안 유아에 대한 종단 연구를 실시해 온 이주영 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기질에서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 '사회적 민감성'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기질이 변했다기보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민감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라고 분석한다. 

수렵 시대에는 가장 촉망받던 기질을 가진 아린이가 2021년에는 산만한 아이가 되듯이 기질은 시대에 따라 기피되기도 하고, 강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양육자의 양육 방식,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이들의 기질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한 명 한 명이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조심성있는 원이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내듯 아이들을 존중하고 인정해 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질 속 장점을 한껏 펼쳐낼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BS다큐프라임 - 아이 1부 일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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