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의 2020-2021 시즌이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23일(한국시간) 스페인 우에스카에 위치한 엘 알코라스에서 열린 2020-21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 최종전에서 이강인의 발렌시아는 우에스카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장한 이강인은 81분을 활약하며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패스와 탈압박 능력으로 여러 번의 기회를 창출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발렌시아는 10승 13무 15패, 승점 43을 기록하며 13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강인은 올 시즌 팀의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첫 시즌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지난 시즌 이후 이적설이 불거졌던 이강인은 발렌시아 구단에서 팀의 핵심으로 중용하겠다고 약속하며 잔류시켰고 선수단도 젊은 선수들 위주로 개편되면서 자연스럽게 이강인의 입지가 넓어지는듯했다. 여러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도 이강인을 이번 시즌을 빛낼수 있는 핵심 유망주로 선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시즌 리그 17경기(선발 3경기) 출전에 그쳤던 이강인은 올 시즌에는 24경기(선발 15경기)에 나서서 득점없이 도움만 4개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보다는 출전 비중이 약간 늘어나기는 했지만 당시는 베테랑 선수들이 건재했다면 올시즌에는 선수단이 큰 폭으로 교체되었음에도 확실한 주전으로 중용 받지 못했다.
 
 발렌시아의 이강인

발렌시아의 이강인 ⓒ EPA/연합뉴스

 
이강인의 활약상이 그리 나빴던 것도 아니다. 일단 경기에 투입되었을 때는 창의적인 패스와 탈압박능력으로 팀에 기여했다. 이강인이 선발로 뛴 경기에서 발렌시아는 8승 4무 3패(승점 28점)를 기록한 반면, 벤치에서 출발하거나 경기에 나서지 못한 나머지 23경기에서는 2승 9무 12패(승점 15)에 그쳤다. 올시즌 발렌시아의 인상적인 승리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전이나 비야레알전도 모두 이강인이 선발로 나선 경기였다. 현지 언론에서도 팀 내에서 가장 패스 능력이 뛰어난 이강인을 왜 중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부족한 출장시간은 감독과의 불화설이나 연이은 이적설 등으로 이어졌다. 하비 그라시아 감독은 당초 이강인을 중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구단과도 전력보강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그라시아 감독 체제에서 들쭉날쭉하게 기용되던 이강인이 경기중 석연치 않은 타이밍에 교체되자 벤치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라시아 감독도 이전의 발렌시아 사령탑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강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최적화된 이강인은 올 시즌도 팀 사정에 따라 여러 포메이션에서 처진 스트라이커-측면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전전해야 했다. 발렌시아는 전통적으로 4-4-2포메이션을 주 전술로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여기에서는 이강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라시아 감독이 이강인을 좀처럼 중용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이 끝까지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기에 확실하게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강인의 부족한 체격 조건과 수비 가담 능력을 지적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아시아 선수에 대한 유럽 감독 특유의 선입견과 인종차별을 의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라시아 감독만이 아니라 그동안 거쳤던 여러 유럽 감독들이 모두 이강인을 적극적으로 중용하는 것을 주저했다는 것은, 선수 본인으로서도 생각해볼만 문제다. 하지만 선수마다 장단점은 누구나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팀에 맞게 녹여내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다.

이강인은 분명히 전술적 범용성에 한계가 있고 활용이 까다로운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능력으로 팀에 확실한 차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않으면서 팀에 붙들어놓고 있으니 선수의 성장과 자신감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발렌시아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사정도 이강인에게 보이지 않는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명문구단으로 꼽히던 발렌시아는 최근 몇 년간 구단주의 방만한 운영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코로나19 사태로 재정까지 급격히 악화하며 주축 선수들을 대거 팔아치우는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지속적인 성적 하락으로 우승권은커녕 유럽클럽대항전 진출도 멀어졌고 감독들이 매년 교체되는 사령탑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선수단 내부에서도 파벌싸움에 대한 의혹이 거론되며 이강인 역시 이 와중에서 '왕따설' 등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강인은 올여름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있다. 당장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 U20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으로 골든볼까지 수상했던 이강인에게 올림픽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소속팀 발렌시아와 계약 만료(2022년 6월)도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에게 재계약을 연거푸 제의해왔지만, 최근 몇 년간 구단의 행보에 실망을 느낀 이강인은 이를 거부해왔다. 이제는 시간을 끌수록 발렌시아에게 손해다. 현지 언론에서는 이강인의 이적이 시간문제로 보고 있으며 최근에는 구단이 이강인의 이적 요구를 수락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이강인은 잉글랜드 울버햄튼 등 여러 클럽들과 연결되어있는 상황이다.

이강인도 더 이상 어리기만 한 유망주는 아니다. 선수는 꾸준한 출전 기회를 통하여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야한다. 이강인에게 발렌시아는 유스 시절부터 프로 데뷔까지 성장을 함께한 많은 추억이 있지만 동시에 이제는 이강인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애증의 구단이 되어버렸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즌을 마감한 이강인이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올여름 다시 비상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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