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루키 류현진이 KBO리그에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같은 해 안산공고의 김광현과 광주 동성고의 양현종은 쿠바에서 열린 2006 U-18 야구월드컵에 참가해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7년 프로에서 만난 세 명의 좌완투수는 각자 전성기도, 팀 전력도 달랐지만 뛰어난 구위를 앞세워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2021년, KBO리그의 새내기와 초고고급 투수였던 세 선수는 이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98승을 기록한 후 가장 먼저 빅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가 됐고 KBO리그 136승의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붙박이 선발로 활약하고 있다. 한편 KBO리그 147승에 빛나는 양현종은 루키 신분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롱릴리프와 임시선발을 오가고 있다.

한국 야구팬들은 동 시대에 등장해 동시대에 활약했고 동시대에 한국야구를 빛내고 있는 세 명의 좌완 투수가 동시에 빅리그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한다. 물론 세 선수가 빅리그에서 처한 상황과 입지가 다르기 때문에 세 투수가 동시에 선발투수로 활약하는 것을 마냥 낙관적으로 전망할 순 없다. 하지만 지난 6,7일(이하 한국시각)에 있었던 세 선수의 선발 등판 내용을 보면 동반 선발진입도 전혀 불가능하게 보이진 않는다.

토론토 부동의 에이스와 팀 내 유일한 좌완선발
 
 보스턴과의 경기에 등판한 류현진

보스턴과의 경기에 등판한 류현진 ⓒ AP/연합뉴스

 
야구는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동료의 실책이나 실투 하나에 의해 패전투수가 될 수도 있고 아무리 투수가 고전한 경기에서도 타선의 지원으로 승리를 챙길 수도 있는 종목이다. 지난 4월8일 텍사스전에서 7이닝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패전의 멍에를 썼던 류현진은 7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전에서 5이닝6피안타4실점으로 고전하고도 타선의 지원을 등에 업어 시즌 2승째를 챙긴 것처럼 말이다.

지난 4월 26일 템파베이 레이스전에서 4회 2사 후 엉덩이에 통증을 느껴 자진강판된 후 열흘짜리 부상자명단에 올랐던 류현진은 12일 만의 빅리그 복귀전에서 3회까지 4실점하며 크게 고전했다. 다른 투수 같았으면 조기 강판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찰리 몬토요 감독은 류현진으로 하여금 5회까지 마운드를 지키게 했고 류현진은 더 이상의 추가실점 없이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난조를 보인 류현진이 5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이유는 그가 토론토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작년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맺은 류현진은 팀 내 투수 중 최고 연봉을 받고 있어 부상과 같은 변수가 없는 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 현재 토론토 마운드에서 류현진 다음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로비 레이의 연봉(800만 달러)은 류현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반면에 세인트루이스의 김광현은 6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4회 무사 만루 위기를 적시타 없이 1점으로 막는 등 4이닝 동안 1실점의 좋은 투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가 4회말 공격에서 1사 1,3루의 득점기회를 잡자 마이크 쉴트 감독은 김광현 타석에서 대타 맷 카펜터를 투입했다. 카펜터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5회부터 불펜투수가 올라오면서 김광현은 시즌 2승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하지만 4회 대타로 교체됐다고 해서 '선발투수 김광현'에 대한 세인트루이스 벤치의 신뢰가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김광현은 여전히 세인트루이스 선발진에서 귀하디 귀한 좌완 투수로 로테이션에서 빠지기 힘든 투수다. 스프링캠프에서 당한 등부상의 여파로 시속 150km를 상회하는 강한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지만 김광현은 KBO리그 136승 투수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명문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선발 데뷔전 3.1이닝 8K 역투로 '양갱' 별명 획득

류현진과 김광현이 각각 토론토와 세인트루이스의 붙박이 선발로 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야구팬들의 관심은 양현종의 선발진입 여부에 쏠려 있다. 양현종은 지난 4월26일 빅리그 콜업 후 두 번의 등판에서 8.2이닝 2실점으로 기대 이상의 투구내용을 선보였다. 특히 1일 강호 보스턴 레드삭스전의 4.1이닝1피안타4탈삼진 무실점 역투는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의 눈도장을 찍기 충분했고 결국 6일 미네소타 트윈스전 빅리그 데뷔 첫 선발 등판으로 이어졌다.

당초 80~85개 정도의 투구 수를 예상했던 양현종은 3.1이닝 동안 66개의 공을 던지고 책임주자 3명을 남겨둔 1사 만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하지만 양현종은 이날 10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무려 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양현종은 지난 1980년 8월 1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전에 등판했던 대니 다윈 이후 무려 41년 만에 3.1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아낸 텍사스 투수가 됐다.

선발 데뷔전에서 엄청난 삼진쇼를 펼친 양현종은 현지 팬들에게 양현종의 성과 갱스터를 합친 '양갱(YANG GA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현지에서는 대단히 강렬한 의미를 가진 별명이지만 국내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군것질거리가 생각나는 정겨운 별명으로 변질됐다). 루키 투수가 빅리그 등판 3경기 만에 현지팬들이 부르는 별명이 생겼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양현종이 인상적인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고 해서 앞으로 선발 자리가 보장된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텍사스는 카일 깁슨과 마이크 폴티네비치, 조단 라일리스,데인 더닝으로 선발진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부상으로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걸렀던 일본인 투수 아리하라 고헤이도 복귀를 앞두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5이닝도 채우지 못한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루키 투수가 많은 삼진을 잡았다고 해서 덜컥 선발 한 자리를 내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양현종이 텍사스의 대체 선발 1순위 요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만약 선발진에 결원이 생긴다면 양현종이 바로 그 자리를 채울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1996년의 박찬호,작년의 김광현처럼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잡는다면 양현종은 충분히 텍사스 선발진에 정착할 수 있다. 양현종이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는 날, 야구팬들은 코리안 좌완 3인방이 나란히 빅리그에서 선발로 활약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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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코리안 좌완 3인방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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