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포스터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포스터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외

 
28일 개봉 예정인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이건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라는 짧은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2011년을 딱 하루 남겨둔 12월 31일 밤 영호(강하늘 분)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바로 2003년으로 시점을 이동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삶에 위로를 얻게 된 영호(강하늘 분)와 소희(천우희 분)가 '비가 내리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3년 또 한 번 대학교 입학에 실패하고 지루한 삼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스물한 살 영호는 꿈도, 별다른 목표도 없는 인물이다. 여느 때처럼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날 우연히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국민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진 영호에게 말없이 손수건을 건넨 친구가 있었던 것. 갑자기 생각난 이름 하나로 주변에 주소를 수소문해 무작정 편지를 보낸 영호는 그 일을 계기로 평범했던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 컷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 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외

 
한편 엄마와 함께 오래된 헌책방을 운영하는 소희(천우희 분)도 꿈을 찾지 못한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어느날 언니 소연에게 도착한 편지를 받게 된 그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장을 쓰다가, 돌연 마음을 바꾼다. "몇 가지 규칙만 지켜줬으면 좋겠어.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 하기 없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 이러한 부탁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편지를 이어나가며 점점 가까워 진다. 

영화는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 펜팔을 주고 받아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 시절 우리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낯선 사람과도 손편지를 주고 받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마음 속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던 때 편지 한 통을 보내고 답장을 받으려면 며칠을 꼬박 기다려야 했고 기다림은 그 자체로 설렘이 됐다. 영호와 소희 역시 오직 편지만으로 조심스럽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 나간다.

별다른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극은 영호가 약속을 깨고 만나자는 제안을 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아픈 언니를 대신해서 편지를 썼다고 밝힐 수도, 언니를 데리고 영호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소희는 '12월 31일에 비가 오면 만나자'는 답장으로 무마하려 한다. 한겨울인 12월 31일 눈이 아닌, 비가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후 영호는 매년 12월 31일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영호가 기다리고 있는 대상 역시 비와 소연이었던 것.

서툴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청춘들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멜로 영화라기보다 성장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편지로만 소통하는 두 남녀 주인공이 극 중에서 만나는 장면 역시 거의 없다. 대신 영화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두 청춘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위안을 얻고 자신의 궤도를 찾아 나가는 데 집중한다. 

영화는 2003년과 2011년을 오가는데, 주로 2003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다 보니 손편지, 헌책방, '가로본능' 휴대폰 등 관객을 추억에 젖게 만드는 공간이나 소품들도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기 시작했던 2011년까지도 주인공들은 종이 잡지와 수제 우산을 버리지 못하고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데, 이 점 역시 영화의 잔잔한 감성을 더욱 살린다.

편지를 주고받았던 시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비어 있는 부분들이 꽤 많지만 이를 채워나가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영호의 곁을 맴도는 재수학원 동기 수진을 맡은 특별출연 강소라가 눈에 띈다. 수진은 극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외로움으로 점철된 탄탄한 서사와 강소라의 섬세한 감정연기는 수진이 왜 영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단번에 납득시킨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란 사실 기적을 기대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도 언제든 기적이 될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비가 오는 연말이면 더 생각나는 영화가 될듯.

한 줄 평: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손편지같은 영화
별점: ★★★(3/5)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 컷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 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외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관련 정보

감독: 조진모
출연: 강하늘, 천우희, 강소라
제작: (주)아지트필름
배급: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러닝타임: 117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21년 4월 28일
 
비와당신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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