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방송된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1월 31일 방송된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 JTBC

 
대한민국 스포츠 레전드들의 조기축구 도전기를 다룬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가 약 1년반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최종회는 <뭉찬>에서 활약했던 역대 신구 멤버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그간의 활약상을 결산하는 자체 시상식 형식으로 꾸며졌다. 

피날레 무대인 시상식 역시 <뭉찬>답게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버럭 캐릭터로 활약한 허재는 '화상'을, 팀내 최다 자책골의 주인공 이형택은 '속상', 다양한 별명과 이미지를 수집한 여홍철은 '부캐상'을 수상했다. 최고의 개인기를 선보인 '진기명기상'은 이용대, 김요한, 진종오, 최병철이 공동 수상했고, '베스트 퍼포먼스상'은 박태환이 차지했다. '전설은 살아있다상'은 이만기, 양준혁, 김재엽 등 시니어라인이 받았다. 

이밖에 '베스트 커플상'은 김동현, 이대훈, 박태환, 모태범, 안정환, 하태권이 공동 수상했고 어쩌다 FC 최다 '도움왕'은 김병현, '득점왕'은 이대훈이 차지했다. 최고의 골에게 주어지는 '어쩌다 푸스카스상'은 그림같은 오버헤드킥을 선보인 이봉주에게 돌아갔다.

리더인 안정환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고, 마지막 시상인 '최우수 선수상'은 어쩌다 FC 멤버 전원이 공동 수상을 기록하며 멤버 각자의 모습을 본뜬 트로피를 수여했다. 감독상 시상 때 멤버들은 안정환의 수상을 기립박수로 축하했고, 선수상 시상 때는 안정환이 멤버 전원에게 일일이 트로피를 전달하며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모습으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정환은 "'뭉쳐야 찬다'를 하면서 가장 기뻤을 적은 여러분들이 '다시 선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다. 은퇴하고 나서 영광스러운 시절들을 다시 느꼈다는 것이 정말 기뻤고 지금도 제 가슴속에 남아있다"는 소감으로 뭉클한 감동을 남겼다. MC 김성주는 "부족한 부분은 저희가 더 채워서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뭉찬>은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 안정환을 감독으로 하여 허재(농구), 이만기(씨름), 이대훈(태권도), 김동현(격투기), 이형택(테니스), 여홍철(체조), 모태범(빙상), 이용대-하태권(배드민턴), 김병현-양준혁(야구), 김요한(배구), 이봉주(마라톤), 박태환(수영) 등이 아마추어 축구팀 '어쩌다FC'를 결성하여 조기축구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대한민국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들을 한 자리에서 모아놓은 놀라운 '섭외력', 이들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벗어나 축구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원팀이 되어가는 '성장드라마'를 표방하며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뭉찬>의 인기 비결은 축구와 예능간의 적절한 안배와 조화를 통하여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스포츠 예능의 공통적인 고민 요소는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해당 종목 특유의 '전문성'과 예능물로서의 '오락성'이 얼마나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느냐에 달렸다. 너무 진지하면 예능이 아닌 다큐가 되어버리고 너무 가벼우면 스포츠 본연의 매력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뭉찬>의 기획은 대중적 접근성이 높은 축구라는 종목을 선택했다는 것과 바로 안정환이라는 이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축구는 대표적인 생활체육으로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고 보편적 공감대가 많은 스포츠다. 룰도 모르는 완전한 초짜에서부터 어느 정도 공을 다룰 줄 아는 경력자까지 개성도 실력도 천차만별인 선수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함께 성장하고 하나의 팀이 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축구라는 종목이었기에 가능했다.

안정환은 2002 한일월드컵이 배출한 축구영웅이자, 최근 방송인으로서 가장 성공한 스포테이너이기도 하다. 안정환은 내로라하는 운동계 선후배들 사이에서 축구 감독으로서 진지할 때는 진지하면서도, 웃어야할 때는 함께 웃고 망가질 줄 아는 적절한 완급조절을 통하여 프로그램의 균형을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축구인과 방송인으로서 양쪽의 시스템을 모두 잘 이해하고 있는 안정환이 없었다면 <뭉찬>은 결코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스포츠 스타들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었지만 정형돈, 김성주, 김용만 등 이른바 연예인 멤버들의 중요성도 결고 가볍지 않았다. 비록 축구 실력으로는 큰 보탬이 되지못했지만, 이들은 운동부 특유의 위계문화에서 자유로운 특성을 살려 예능에 서툰 운동선수 출연자들의 '방송 캐릭터'를 잡아주거나, 선을 넘지 않는 유쾌한 만담과 상황극을 통하여 예능과 축구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담당했다. 각기 다른 종목과 세대가 공존하던 어쩌다FC가 큰 잡음 없이 화기애애한 팀워크를 유지했던 데는 연예인 멤버들의 윤활유같은 공헌도가 컸다.

게스트 파워도 화려했다. <뭉찬>은 '용병'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충희, 추성훈, 윤성빈, 신진식, 윤경신 등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번갈아가며 출연시켰고, 이 과정에서 정식 멤버로 합류한 경우가 많았다. 황선홍, 조원희, 고정운, 신태용, 유상철 등 축구계 레전드들도 번갈아가며 등장하며 어쩌다FC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어쩌다FC는 방영 6개월이 넘도록 첫 승조차 거두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을 면치못했다. 하지만 안정환 감독의 세심한 조련과 새로운 멤버들의 영입, 경기 경험과 전지훈련 등을 거치며 부쩍 성장했고, 공식 대회에 도전했던 여름 마포구 대회 4강과 피날레무대였던 JTBC배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제는 어엿한 조기축구 강팀으로 성장한 <뭉찬> 멤버들의 끈끈한 팀워크와 포기하지않는 도전정신은 종목이 달라져도 그들이 왜 대한민국 스포츠 레전드인지를 보여주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뭉찬>이 남긴 영향력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스포츠 예능과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 진출 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뭉찬>의 후속작으로 농구를 다룬 <뭉쳐야쏜다>를 비롯하여 <노는 언니>(여성 스포츠 레전드), <다함께 차차차>(풋살), < RUN >(마라톤), <씨름의 희열>(씨름),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농구), <축구야구말구>(생활체육 전반)등 스포츠나 체육인들을 소재로 한 방송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시발점 역할을 해냈다.

<뭉찬>을 통하여 새롭게 재조명받은 스포츠 스타들은 이후로도 방송의 단골손님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허재는 첫 회부터 축구 룰을 몰라서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기행을 선보이는 등, 농구인 시절의 상남자 이미지와는 또다른 허당 매력을 발산하여 예능 대세로 급부상했다. 허재는 차기작 <뭉쏜>의 감독으로 낙점된 것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방송과 CF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실상 이 시리즈가 배출한 최대 수혜자가 됐다. 이밖에도 김병현-이형택-여홍철-이용대-이대훈-모태범 등 그동안 운동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적었던 스포츠스타들의 인간적이거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장기화되면서 아쉬운 부분도 속출했다. 방송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스포츠팀이다보니 경쟁과 우열은 피할 수 없었고, 회가 거듭할 수록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크게 갈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제작발표회 당시 "에이스는 없다. 모든 선수를 에이스로 만들겠다"던 안정환의 공약과 달리, 어쩌다FC는 몇몇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큰 팀이었고 이들이 부진하면 경기력도 요동치기 일쑤였다. 이대훈처럼 신체능력이 걸출한 현역 멤버들을 영입하면서 아마추어들의 성장기라는 초기의 콘셉트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마지막 무대였던 전국대회로 접어들면서 이만기-김재엽-양준혁-김용만 등 이른바 '시니어 라인'은 사실상 결과가 결정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출전기회도 얻지 못하는 전력 외 멤버로 전락했다.

일부 출연자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안전불감증 논란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프로그램 원년멤버였던 사격 레전드 진종오는 소리 소문 없이 하차하며 제작진으로부터 홀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봉주, 박태환, 김요한 등은 <뭉찬> 촬영 중에 큰 부상을 당하여 하차를 하기도 했다. 

축구 자체가 격렬한 운동이기에 부득이했던 측면도 있지만 예능 분량을 만들기 위하여 축구와 상관 없는 폐타이어 끌기를 한다거나, 갈비뼈나 발목 부상을 당한 선수를 경기에 출전시키며 '부상투혼'으로 미화하는 모습 등은 우려를 자아냈다. 출연자들이 모두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웅들이다. 이미 은퇴한 지 오래되어 몸상태가 좋지 않은 중장년도 있고, 심지어 아직 현역인 선수들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예우'가 아쉬웠던 대목이다.

<뭉찬>은 비교적 꾸준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후속작은 농구를 소재로 한 <뭉쳐야 쏜다>가 방영될 예정이다. <뭉쏜>에서는 감독과 선수 신분이었던 안정환과 허재의 '역할 체인지'를 비롯하여 <뭉찬> 출신 멤버들 다수가 그대로 합류할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코치로는 현주엽, 축구레전드 이동국의 농구도전 등 새로운 멤버들의 가세도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뭉쏜>이 스포츠 예능과 '뭉쳐야 시리즈'의 성공 바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뭉쳐야찬다 스포츠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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