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LG 감독이 1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 키움과의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1

류중일 LG 감독이 1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 키움과의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1 ⓒ 연합뉴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가을야구는 올해도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다. LG는 5일 두산 베어스와 202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PO 2차전에서 7대 9로 패했다. 지난 1차전에서도 0-4로 패했던 LG는 시리즈 전적 2연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올해로 LG와의 3년 계약이 만료되는 류중일 감독의 거취도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류중일 감독은 2017년 10월 3년 21억 원의 특급 대우로 LG의 12대(MBC 청룡 시절을 포함하면 18대) 사령탑에 올랐다. 현역 시절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선수-코치-감독까지 역임한 삼성 '원클럽맨' 이미지가 강하던 류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제외하고 다른 유니폼을 입은 것은 LG가 처음이었다.

류 감독은 삼성 감독 시절(2011-2016) 전대미문의 정규 리그 5년 연속 우승(2011-2015)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통합 제패(2011-2014)라는 눈부신 업적을 세우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타급 선수들을 아우르는 덕장의 면모와 단기전에서 노련한 용병술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94년 마지막 우승 이후 정상과 인연을 맺지못하고 있던 LG는 삼성에서 물러난 이후 재야에 머물고 있던 류중일 감독에게 손을 내밀며 '우승청부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

LG 류중일호는 부임 첫 시즌인 2018년 페넌트레이스 8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고, 지난 2019년에는 정규리그 4위로 3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에 올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NC 다이노스를 꺾고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지만 키움 히어로즈의 벽을 넘지못하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시즌인 올해도 4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하고 포스트시즌에서 WC전에서 키움에 승리했으나, 준PO에서 잠실 라이벌 두산에 완패하며 결국 지난해와 똑같은 순위에 만족해야했다.

어쨌든 재임 기간 중 두 번이나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으니 실패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LG가 류중일 감독에게 원했던 기대치나, 감독 본인의 삼성 왕조 시절의 명성과 비교하면 결코 만족하기도 어려운 성적표다. 첫 시즌은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고, 두 번째 시즌이 그럭저럭 절반의 성공이었다면, 세 번째 시즌은 결실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9년과 2020년의 팀 순위는 결과적으로 똑같지만 무게감이 전혀 다른 이유다.

2020 시즌은 LG가 21세기 들어 모처럼 투타에서 최상의 전력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한 해였다. 많은 전문가들도 올 시즌의 LG를 두고 5강 진출을 넘어 우승권에도 도전해볼만한 전력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류 감독으로서는 3년 계약이 만료되는 마지막 시즌에 최소한 지난 시즌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보여줘야 재계약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LG는 시즌 내내 상위권을 달리며 막판까지 kt-키움-두산 등과 치열한 2위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안이한 경기 운영으로 최하위 두 팀(한화-SK)에게 내리 2연패를 당하며 2위 탈환의 마지막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특히 재임기간 내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류중일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과 주전 의존도가 이번에도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았다는 게 더 뼈 아팠다. LG는 결국 4위까지 추락하며 포스트시즌을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야 하는 험난한 상황에 놓였고, 이때부터 이미 류중일호의 해피엔딩은 멀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두산포비아'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류중일 호의 한계였다. LG는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두산에 계속 열세이기는 했지만, 류 감독이 이끈 지난 3년간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졌다. 2018년 6승 10패, 2019년에는 1승 15패에 전패 위기까지 몰리는 등 대망신을 당했고, 올 시즌도 6승 1무 9패로 재임 기간 내내 한번도 두산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류중일 감독이 부임한 3년간 두산과의 정규리그 상대 전적은 13승 1무 34패로 승률 .271에 불과하다.

올해 정규시즌 LG는 79승 4무 61패로 두산과 똑같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상대 전적에서 밀려 4위까지 떨어졌다. 포스트시즌에도 끝내 두산에 가로막혀 탈락했으니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천적이 따로 없다. 삼성 감독 시절이던 지난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연속 우승 기록을 저지한 것도 바로 당시 김태형 감독이 첫 지휘봉을 잡은 두산이었다. 이쯤 되면 류감독에게 두산과 김태형 감독과는 악연이라고 할 만하다.

류중일 감독은 유난히 변수가 많았던 올 시즌, 부상 선수가 속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며 특유의 안정된 선수단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3년간 꾸준히 젊은 유망주 육성 등으로 팀의 스쿼드를 두텁게 다지는데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3년간 정규 시즌 승률 .523(226승 6무 200패)은 LG 트윈스 창단 이후로는 마지막 우승 감독인 8대 이광환(.541)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재임기간 5할대 이상의 승률을 넘긴 감독은 9대 천보성 감독 이후 무려 21년 만이다.

하지만 내용 면으로 들어가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여전히 데이터보다는 감독 본인의 직관에 의존한다거나, 자신이 믿는 선수만 과도하게 고집하는 '나믿야구' 등으로 현대야구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 '올드스쿨' 감독의 전형적인 단점들 또한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규 시즌 2위의 운명이 걸려있던 지난 10월 28일 한화전에서 6점차 리드를 지키지못하고 선발투수 임찬규의 교체타이밍을 놓쳐 연장전 끝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장면, 두산과 준PO 2차전 4회에서 진해수를 지나치게 믿다가 내리 7실점을 내주며 흐름을 완전히 내준 장면은 이른바 '류중일 야구'의 한계를 보여준 결정적인 장면들로 꼽힌다. 2차전에서 LG 타선이 뒤늦게 터지며 1점 차까지 맹추격을 펼쳤기에 류 감독의 초반 마운드 운영은 더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26년 만의 정상 탈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LG 팬들은 아쉬운 PS 탈락 이후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결국 류중일 감독에게 있다고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류중일 감독의 실패는, 최근 KBO리그에서 계속되고 있는 '우승 감독 거품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KBO리그에는 그동안 한 시대를 지배했다는 평가를 받는 5팀의 '왕조'가 존재했다. 감독의 역할과 권한이 중시되는 한국 야구에서 심지어 우승을 여러 차례 이끈 감독들은 당대의 '명장'으로 칭송받으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0-90년대를 풍미한 해태 타이거즈(현 KIA)의 김응용 감독, 2000년대 초반의 현대 유니콘스(현 키움 히어로즈)의 김재박 감독, 2000년대 후반의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 2010년대 전반기의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과 2010년대 후반기의 두산 베어스의 김태형 감독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중 현재진행형인 두산 김태형 감독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의 감독들은 전성기를 보냈던 왕조 시절이 끝나고, 다른 팀의 지휘봉을 잡고나서 참혹한 실패를 맛본다는 징크스를 반복했다.

해태-삼성 시절까지 무려 10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김응용 감독은 말년의 한화(2013~2014)시절에는 2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굴욕을 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현대와 SK 왕조를 이끈 김재박 감독과 김성근 감독도 각각 LG(2007-2009)와 한화(2015-2017)에서는 3년간 단 한번도 가을야구 무대조차 밟지 못하며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이들은 나란히 소속팀과 재계약에 실패했고 이후 더 이상 프로 감독으로 재기하지도 못했다. 올해 '현역 최고령 사령탑'이었던 류중일 감독 역시 만일 LG와의 재계약에 실패한다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대야구에서 감독 개인의 전지전능한 1인 리더십에 대한 환상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경험이 풍부한 우승 감독들의 연이은 실패는, 이른바 '명장 허상론'에 또다시 불을 붙이며 현대야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베테랑급 감독들이 왜 갈수록 밀려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보여준다. 이는 KBO리그에서 앞으로도 감독의 진정한 역할과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류중일 LG트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