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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더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나는 더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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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녀의 친구까지 함께 보게 됐다. 내 오랜 친구는 예고도 없이 이런 일을 자주 만드는 편인데, 누군가 불만을 표할 법도 하지만 매번 즐거우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나 역시 몇 년 만에 또 만난 '친구의 친구'를 반기며 그간의 소식들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이직과 새로운 진로 탐색에 비해 내 일상은 변한 게 없이 그대로였다. 그러다 저녁 식사까지 이어지게 되자, 그제야 내 신상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난 3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현재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나의 말에 놀란 그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 말했다.

"네가? 고기를 그렇게 먹던 네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그게 가능해?"

그녀에겐 수년 전 내가 고기를 먹던 모습이, 아마도 그 양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내 가족과 지인들은 그간의 내 점진적인 변화를 지켜봐 왔던 터라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나는 더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고 이미 너무 많이 먹었다는 것에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래도 나는, 채식이 너무나 즐겁다 

그날 우리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메뉴를 고르기 위해 다소 애를 먹었다. 좋아서 택한 채식이지만 여전히 불편할 때는 있다. 괜찮은 채식 식당 몇 군데를 알긴 하나 동네에는 전무한 형편. 야식도 그림의 떡이다. 남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음식을 전보다 자주 이용한다는데, 나에겐 딴 세상 이야기였다. 

채식을 하기 전이었다면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겠지만 이제는 고민할 것이 없다. 내게 허락된 것은 오직 떡볶이뿐. 그나마도 어묵과 메추리알, 소시지, 치즈 등등을 빼달라고 요청사항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몽땅 빠진다 해도 값은 똑같다는 함정.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조미료까지 묻는 건 왠지 영업 비밀을 묻는 것 같아 하지 않지만, 사실 그것까지 생각하면 찜찜함을 떨치기 힘들다. 게다가 요청사항을 반영하지 않고 배달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당황스러움은 바로 추가다. '핫'한 동네에 살면 좀 나으려나 모르겠다만, 오래된 주택가의 채식인은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나는 그러한 단점보다 더 떠들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바로 채식이 너무나 즐겁다는 사실이다. 냄새가 강하고 하얗게 굳는 동물성 기름이 식탁 위에 오르지 않으니 식사 준비는 물론 식후의 뒤처리도 한결 간단해졌다. 종종 튀김 요리를 하지만 그때도 고기를 조리할 때보다는 훨씬 깔끔하다. 

음식이 행여 덜 익었을까 염려할 일도 없다. 내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생으로 먹어도 괜찮은 것들이다. 혹시 상하진 않았을까, 신선도가 떨어진 건 아닐까 걱정하며 냄새를 맡아볼 일도 없다. 육류나 해산물과 달리 과일이나 채소의 상태는 비전문가가 봐도 딱 알 수 있다. 시든 부분은 떼어내면 된다. 

고기든, 생선이든, 그 물컹한 질감을 만질 일이 없으니 속 시끄러울 일도 없다. 아무리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죽은 동물의 촉감을 사랑하는 경우는 드물 듯하다(내 섣부른 판단인지는 몰라도). 

여기에 남편의 건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말한다면 화룡점정이 될까 싶지만,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어 다음으로 미룬다. 대신 확실한 이것을 덧붙이고 싶다.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던 죄책감의 중량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환경에 빚지고 살아가겠지만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면 
 
 샴푸 대신 고형 비누를 쓰게 된 것도 다 채식 이후의 변화다.
 샴푸 대신 고형 비누를 쓰게 된 것도 다 채식 이후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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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식에 대한 죄책감을 말할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어떻게 살아?"

내 경험을 말하자면,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살 수 '있다'. 물론 내게도 쉬운 것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것에 연연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내 관심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더 적극적이 되어간다. 

환경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지만 고백컨대 큰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채식을 시작한 뒤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고,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포장재가 마음이 쓰여 택배를 최소화하고 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이 내 시야를 확장시켰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무섭게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생수를 끊었고 몇 달에 한 번 필터를 교체하는 간이 정수기를 들였다. 샴푸 대신 고형 비누를 쓰게 된 것도 다 채식 이후의 변화다. 물론 어디 가서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정도지만,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확장되고 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살 수 있다고. 그런 것 안에는 다른 무엇이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환경, 빈곤, 불평등 등등 잘 알지도 못하는 거대한 문제들을 방구석 내가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시작할 수는 있다.

그것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적어도 나 한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는 이렇게 변해가는 내가 좋다.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어쩌면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 채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것도 소위 꼰대가 되는 징조일까 싶어 조심하고 있지만 가끔은 호들갑스럽게 말하고 싶다. 채식, 너무 좋다고.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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