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수들에게는 잔혹한 희망고문으로 끝난 시간이었다.

유럽축구의 여름이적시장이 지난 6일(한국시간)로 문을 닫았다. 김민재(베이징), 이강인(발렌시아), 이재성(홀슈타인 킬), 이동경(울산) 등 그간 유럽에서의 무성한 이적설로 관심을 모았던 한국인 선수들의 이적은 모두 불발로 끝났다. 선수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활약중인 이강인은 그동안 팀 내에서 부족한 출전 기회로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하비 그라시아 감독 체제에서는 프리시즌부터 출전기회를 늘려가며 잠시 달라진 위상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개막이후 출전시간이 들쭉날쭉하며 선발과 벤치를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스페인 현지 매체에서는 최근 이강인이 발렌시아의 재계약 요청을 거부했고 여러 클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강인의 이적은 이번에도 성사되지 못했다. 발렌시아의 내부 사정은 현재 대단히 복잡하다. 싱가포르 재벌 피터 림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고있는 발렌시아는 올시즌 유럽대항전 진출 실패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정난까지 겹쳐 다수의 주축급 선수들을 떠나보내며 전력이 약해졌고 눈에 띄는 선수보강도 없었다. 현재 팀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인 이강인을 쉽게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강인으로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희생양이 되는 꼴이다. 현재 팀내 입지가 불안정하고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의문부호가 달리는 상황에서 이강인으로서는 발렌시아와의 재계약을 꺼릴 수밖에 없다.

중국무대에서 활약중인 국가대표 중앙 수비수 김민재의 유럽 빅리그 진출도 가시화되는 듯했으나, 이적료를 둘러싼 견해차이로 협상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팀 베이징은 김민재의 몸값으로 약 1500만유로(약 205억원)의 이적료를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유럽 구단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잉글랜드 토트넘, 이탈리아 라치오에 이어 이적시장 막바지에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등 여러 유럽 명문구단들이 김민재에 실제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베이징이 이적료에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며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베이징이 그동안 김민재의 대체자로 알려진 보스니아 출신 수비수 슈니치를 영입 보름 만에 허난 전예에 임대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김민재의 잔류 가능성은 더욱 굳어졌다.
 
 축구선수 김민재

축구선수 김민재 ⓒ 연합뉴스

 
이영표 이후 수비수가 유럽에 진출하여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고, 특히 중앙수비수의 유럽행은 더욱 희귀한 사례였기에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수비수인 김민재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190cm의 장신에 발기술까지 갖춘 김민재는 이미 아시아권에서 톱클래스의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2019년 전북을 떠나 베이징으로 이적한 이후 상황이 꼬였다.

김민재는 올해 5월 한 유투브 방송에 출연하여 소속팀과 중국 동료들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민재는 구단과 동료들에게 사과했지만 중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고, 동기부여가 떨어진 듯 경기력도 다소 하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국내 팬들은 애초에 유럽 직행 대신 중국으로 진출한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홀슈타인 킬에서 뛰고있는 이재성도 새 출발의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2018년 여름 K리그 전북 현대를 떠나 킬 유니폼을 입은 이재성은 비록 2부지만 2시즌 동안 15골·18도움을 기록하며 사실상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미 이재성이 유럽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킬과의 계약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아 이적료를 받고 떠나기에도 적기였다.

실제로 독일 호펜하임과 베르더 브레멘을 비롯한 여러 유럽 1부리그 팀들로부터 적지않은 관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소속팀 킬이 제동을 걸었다. 홀슈타인 킬 입장에선 시즌 초반 리그 선두권을 달리며 1부 승격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이라 핵심선수인 이재성을 이적시키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K리그 울산 현대에서 활약중인 이동경은 유럽 진출이 성사 직전에 좌절됐다. 이동경은 최근 포르투갈 1부리그 보아비스타 입단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지난 2일 상주 상무전이 끝난 후 이동경이 이미 선수단에 작별 인사까지 마치고 팀을 떠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돌연 이적이 불발됐다. 자세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수로서는 큰 실망과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소집된 이동경은 A대표팀과 올림픽팀간의 스페셜 매치를 마치고 울산으로 다시 복귀할 예정이다.

선수 입장에서 이적 불발은 큰 상실감을 안길 만한 상황이다. 과거의 이근호처럼 유럽진출이 무산된 이후 정신적 후유증으로 한동안 큰 슬럼프에 빠졌던 사례도 있었기에 우려를 자아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대응과 극복이다. 축구계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벌어진다. 이미 일어난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다. 선수들 본인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도 아니다. 아쉽지만 현실로 복귀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게 최선이다. 

다행인 것은 선수들이 아직 젊고 장기계약으로 묶여있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1992년생인 이재성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다. 다행히 이재성과 킬의 계약기간은 2021년 6월까지로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김민재는 베이징과 2021년 12월,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2022년 6월까지 계약되어있다. 이들 모두 현 소속팀과 재계약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이적료 회수를 고려한다면 시간을 지체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구단 쪽이다. 당장 몇 달 남지않은 겨울이적시장에서 다시 이들의 이적 논의가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들은 현 소속팀에서도 아직 보여줄 것들이 많다. 이강인의 발렌시아는 유럽 최고의 무대인 스페인 라리가에 속한 팀이다. 이재성의 킬은 다음 시즌 1부 승격을 노린다. 이동경의 울산은 정규리그와 FA컵 더블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이동경으로서는 유럽무대 진출로 새로운 리그와 경쟁에 적응하는 것보다 소속팀에서 경기력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또한 김민재는 과연 빅리그에서 그만한 투자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선수인지 실력뿐 아니라 '멘탈'도 증명해야 한다. 유럽 경험이 없는 아시아 수비수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할 만한 빅리그 구단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간에 거쳐 무수한 이적설이 거론될만큼 유럽에서 이름을 알렸기에 김민재 입장에서도 의미 없는 시간으로 보기 어렵다. 지금은 김민재가 이적 무산과 경기력을 둘러싼 중국 언론의 조롱과 폄하를 실력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우선적으로 집중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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