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스틸 컷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스틸 컷 ⓒ 넷플릭스

 
로봇과 인간의 절묘한 컬래버레이션 아이언맨, 과거로 부터 온 절대 강자 캡틴 아메리카, 신화 속에서 길어온 토르, 신비의 섬에서 날아온 원더우먼, 먼 우주로부터 던져진 슈퍼맨에, 돌연변이 박쥐에 고양이 등등. 마블과 DC 히어로들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과연 여기에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가 더해질 수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히어로 캐릭터의 등장이 이어지고 있다. 침팬지의 유전자를 이식해 헐크처럼 큰 덩치로 괴력을 행사하는 히어로는 어떨까? 망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영매나 시간을 오가는 능력자는?

넷플릭스는 지난해 2월 새로운 히어로물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했다. 

한국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공개 이후 전미 넷플릭스에서 오랜 시간 동안 1위 자리를 유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은 미국의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제라드 웨이가 쓴 동명의 그래픽 노블(2007년 발간)을 원작으로 삼았다. 제라드 웨이의 그래픽 노블 내용 중 1부 종말의 조곡과 2부 댈러스가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지구 종말 앞에 던져진 히어로들 

시리즈의 시작은 러시아의 한 수영장이다. 여성 여럿이 한창 수영 연습 중인 가운데, 한 여성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임신을 한 적이 없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만삭이 되어 결국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이상 사례'가 전 세계에서 벌어져 43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7명이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컬럼 피오레 분)에게 입양된다. 아이들을 입양한 목적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하그리브스는 그 목적에 맞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조직하고 아이들을 훈련시킨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후, 하그리브스 경은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뿔뿔이 흩어졌던, 이제는 5명만 남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명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에서 4년을 보낸 맏이 루서(톰 호퍼 분)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진위를 밝히려 하지만, 둘째 디에고(데이비드 카스타네다 분)는 죽음의 의혹 따위에 아랑곳않고 아버지에 대한 애증에 전전긍긍한다.

그런가 하면 셋째 앨리슨(에리 레이버 림프먼 분)은 이혼 위기의 사생활에서, 넷째 클라우스(로버트 시한 분)은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형제들과 달리 히어로 훈련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막내 바냐(엘렌 페이지 분)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조차 마음을 모을 수 없는 형제들 앞에 15살 때 시간 속으로 사라진 넘버5(에이단 갤러거 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15살같은 외모와 달리 시간 여행을 하며 58살이 된 넘버5는 17년 만에 겨우 집에 돌아온 형제들에게 '지구 종말'이 겨우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통보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스틸 컷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스틸 컷 ⓒ 넷플릭스

 
히어로 물의 전형적인 서사에 따르며 좀 갈등이 있더라도 '히어로'의 사명감으로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쓰련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속 히어로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말이 '입양'이었지, '얼마주면 되겠니?'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사온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아버지'이지, 그는 자신을 '경'이라 부르라며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사랑은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이보그 어머니가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없어 숫자고 불리던 아이들(그래서 이름이 지어지기 시간 여행을 떠난 다섯째가 넘버5이다)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처받은 '아이' 그대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들 히어로들은 자신의 '히어로'적인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다. 형제들이 다 떠나버려 홀로 적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빠졌던 맏이 루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주입했던 집사 침팬지 포고의 DNA로 인해 '동물적인 육체'를 지니게 되었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도 가족 중에서는 그나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후 홀로 고독과 싸우며 견뎠던 달에서의 4년이 사실 '방치'였음을 알게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갖고 있음에도 '히어로'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둘째는 경찰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방식은 결국 그를 경찰 교신망을 도청하는 불법 히어로의 신세로 전락시킨다.

'소문으로 들었는데'라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앨리스는 그 능력으로 스타가 되고 가정도 얻었지만, 결국 그 능력으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넷째 클라우스는 거의 '폐인'이다.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 덕분에 일곱 히어로 중 한 명인 죽은 벤과 항상 함께 하지만, 때로는 처참하게 죽은 자들을 소환하는 그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절어 산다. 

지구 종말이라는 사명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팀으로써의 결집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그 지구 종말조차도 알고보니 이들 히어로 중 한 명인 '바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작할 때는 B급 정서에 기반을 둔 오합지졸 히어로들의 시트콤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던 시리즈는 중반을 넘어서며 꽤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간 히어로물이 그려왔던 당위적 사명을 가진 '남다른 존재' 히어로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다. 

'다른 존재란 이유로 혹은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간적인 행복조차 방기되거나 억압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히어로'라는 수식어를 떼고 보면 오늘날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과 결이 같다. 

아마도 이 작품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당대적 정서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은 '지구 종말'을 막아낼 수 없다는 화두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며, 그래서 기발하고 신선하다. 이런 전개는 늘 대의와 사명, 담론에 치우쳤던 이전 히어로물의 허를 찌른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 문제에 허우적거리다 지구 종말을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끝일까? 여기에 기막힌 '치트키'가 등장한다. 그 치트키를 통해 케네디 암살 시점인 1963년 댈러스로 떨어진 이들은 여전한 자신들의 숙명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시대적 감성에 기대어 마주하며 업그레이드된 서사를 이어간다. 과연 이들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엄브렐러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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