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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추석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대보름달이나 귀성길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 몇 년 전 추석에 아버지가 나를 옆에 두고 "제발 우리 아들 정신 차리게 해 주세요!"라고 달을 보며 비는 모습을 보고 난 뒤로 한가위 대보름달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감이 생겼다. 귀성길도 마찬가지. 가족들이 모두 서울에 살게 되면서 나와는 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명절을 명절답게 만드는 것, 그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음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맛깔나게 부친 고기산적, 잘못 먹으면 혀에 가시가 콕 박히는 생선전,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끓인 시원 쿰쿰한 탕국, 빼놓으면 아쉬운 잡채까지, 명절에는 늘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우리 곁에 존재하니까. 한때 친척들의 듣기 싫은 오지랖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로 하여금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것은 그런 음식들이었다.

명절을 명절답게 하는 것은 바로 '갈비찜'  
 
 한 가지 요리지만 수많은 요소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갈비찜은 여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의 모습을 닮았다.
 한 가지 요리지만 수많은 요소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갈비찜은 여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의 모습을 닮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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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석 음식은 단연 갈비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갈비찜에 흰밥 한 그릇 해치우면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운 한 끼를 먹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자작한 국물 속에 빠진 무는 또 어떻고. 젓가락으로 슬쩍 누르면 파스스 부서지는 무는 무적에 가깝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씹어도 더 먹고 싶다. 게다가 갈비찜을 한 입 물고 차례상에 올라가는 청주 한 잔을 곁들이면 명절의 풍류가 절로 샘솟는다.

갈비찜은 어쩌다 명절 대표 음식이 되었을까? 갈비찜은 맛있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면 명절이 즐거워지는 법이니까. 갈비찜에 홀딱 반한 수많은 조상님들이 "명절에는 역시 갈비찜이지!"라고 주장한 결과 명절에는 갈비찜을 먹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아, 역사 전문가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은 아니고. 갈비찜 팬인 나의 아주 개인적인 추측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좋아하는 음식을 명절에 먹는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조상님에게도, 나에게도.

다만 조상님과 나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 먹고 싶은 사람이 갈비찜을 직접 해 먹는다는 것. 요리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명절은 조상님의 것으로만 남겨두자.

수많은 유투버들의 훌륭한 레시피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까. 심지어 백종원 선생님은 종이컵만으로도 갈비찜을 만드는 기적을 선사하였으니 유튜브를 켜고 주방으로 직진하면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럴듯한 갈비찜이 탄생할 것이다.

갈비찜의 첫 시작은 재료 손질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비찜용 갈비를 깨끗이 씻는 것. 갈비를 토막 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뼛가루가 조금씩 고기 안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흐르는 물에 잔여물을 꼼꼼히 씻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 갈비를 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기도 하지만, 나는 핏물을 빼지 않고 팬 위에서 갈비를 굽는 방법을 선호한다. 질 좋은 고기를 먼저 노릇노릇 구워주면 육즙도 살아나고 잡내도 훌륭하게 제거된다.

그 뒤로는 간장, 대파, 설탕, 맛술, 다진 마늘을 그릇에 넣고 휘휘 젓는다. 양념장 맛만 살짝 보아도 이미 갈비찜을 먹는 기분이 든다면 합격! 그리고 당근과 무를 섬세하게 깎아준다. 모난 부분이 없이 동글 매끈하게 당근과 무를 만들어주는 게 포인트다. 갈비찜 국물이 탁해지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낼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과정이 제일 귀찮다. 갈비찜은 어서 먹고 싶고, 재료는 그만 깎고 싶고, 이런 게 정성인가 싶고, 그래도 참고 버티면 근사한 갈비찜이 찾아오니까. 갈비찜을 함께 나눠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혹은 이 갈비찜에 심취할 스스로를 떠올리면서 열심히 버텨보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크게 어려운 것은 없다. 시간이라는 재료가 필요할 뿐. 준비한 갈비와 무를 냄비에 넣고 양념장을 부은 후에 충분히 끓여주면 된다. 이때 거품이 올라오기도 하는데 세심히 살펴가면서 숟가락이나 국자로 거품을 걷어낼 것. 그리고 타이밍을 보다가 당근을 넣어주고, 얼추 됐다 싶으면 양파와 고추를 추가한 뒤에 조금 더 끓이면 완성이다.

드디어 갈비찜을 입으로 즐길 시간이다. 단단한 뼈를 붙잡고 있던 고기가 유연한 몸부림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은 우아한 폴댄스를 보는 것만 같다. 게다가 입속에서 스르륵 사라지는 부드러운 고기는 포근한 육즙을 입속 가득 선사한다.

짭쪼릅한 국물은 밥을 부르고, 야들야들한 고기는 술을 부른다. 양념장을 잔뜩 머금은 각종 야채는 지친 혀를 뭉근하게 안아준다. 한 가지 요리지만 수많은 요소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갈비찜은 여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의 모습을 닮았다.

명절 음식 뒤에 숨은 누군가의 마음... 직접 만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   
 
 명절을 명절답게 만드는 음식,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마음까지
 명절을 명절답게 만드는 음식,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마음까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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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갈비찜을 가장 맛있게 먹어주는 건 다름 아닌 나의 아내다. 그녀는 나보다도 더한 갈비찜의 신봉자여서 명절이든 아니든, 추석이든 설날이든, 혼잣말처럼 늘 갈비찜을 외치니까.

오늘 좀 우울한데 갈비찜 먹을까? 배도 고픈데 갈비찜 먹으면 좋겠네. 해장이 필요한데 갈비찜 콜? 그런 그녀의 혼잣말이 외로워지지 않도록, 이번 추석에는 고급 한우로 갈비찜을 만들어 먹을 참이다. 레드 와인이나 향긋한 전통주를 곁들여서 그럴듯하게.

푸짐하게 만든 갈비찜을 싸들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함께 나눠먹어도 좋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즐겨 먹었던 수많은 명절 음식은 다른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잘 알게 되었으니까.

갈비찜이든 아니든, 자신이 좋아하는 명절 음식을 직접 요리해 본다면 느끼게 될 것이다. 명절을 명절답게 만드는 음식,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마음을 말이다. 타인이 차려주기만 하던 음식을 직접 요리해보는 일은 그 사람의 정성과 시간을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seung88)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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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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