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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사람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다시금 깨달았다. 4년 전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앉을 수 없는 의자'에 관해 생각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썼고, 주요 뉴스로 선정되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그것은 '앉을 수 없는 의자'로 인해 내가 직접 불편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밖의 어려움에 대해서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관련 기사: "이 의자에는 앉으면 안 돼요" http://omn.kr/1oq48)

"이은영 기자님, 마트 노동자분들이 손잡이 없는 상자 때문에 힘들어하시잖아요. 혹시 관련해서 기사를 써주실 수 있나요?" 
"네? 손잡이가... 어떤 상자요?"
"아... 제가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발음이 좀 그렇죠?"


속상하게도 편집자님의 발음은 너무나도 정확했다. 손잡이 없는 상자 때문에 마트 노동자분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마트에서 근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상자에 손잡이가 없어서 마트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힘들어한다고 하던데, 얘기 좀 해봐."
"응?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 마트가 워낙 크고 각자 하는 일이 달라서, 자기 분야가 아니면 사실 잘 몰라. 그건 마트노조가 잘 아니까 물어볼게."


마트에서 10~20년 넘게 근무하는 직원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동료의 어려움에 대해 모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사업주들이 마트노조 조합원들의 눈물 섞인 호소에도 눈과 귀를 닫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직접 어려움을 겪지 않는 한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닫는다. 

그들에게 상자 손잡이가 필요한 이유
 
 고용노동청 앞에서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 설치와 포장단위를 소규모로 바꿔 달라고 촉구하는 마트노조.
 고용노동청 앞에서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 설치와 포장단위를 소규모로 바꿔 달라고 촉구하는 마트노조.
ⓒ 마트산업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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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1일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 전국 주요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 산업노동조합(아래 마트노조)은 전국 6개 지역 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트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 설치와 포장 단위를 소규모로 바꿔 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마트 노동자들이 자필로 적은 '나에게 박스 손잡이가 필요한 이유'를 노동지청에 전달하고 면담도 했다. 당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상자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방안을 이른 시일 내 마련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트의 풍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

1년이 지나고 2020년 마트 노동자들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8일 추석을 앞두고 마트 노동자들은 "대형마트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구멍' 하나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트에서 파는 상품은 후방창고 정리부터 시작해 매장 진열 과정을 거쳐 고객의 손으로 가기까지 누군가의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마트에서 주로 근무하는 20~50대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3~5kg이 넘는 상자 400개를 들어야 한다. 마트노조가 노동환경 건강연구소와 5177명의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1일 10회 이상 25kg 이상 물체를 드는 작업에 노출되는 비율은 29.8%, 10kg 이상 물체를 드는 작업에 노출되는 경우는 45.7%로 나타났다. 특히 추석 때는 명절 세트 상품까지 300~400% 몰려 부담이 가중된다.

또한 중량물 진열 작업으로 인한 근골질환을 56.3%가 앓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69.3%는 병원 치료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안전보건법 규칙 663조에 따르면 "(중량물의 제한) 사업주는 근로자가 인력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에 과도한 무게로 인하여 근로자의 목, 허리 등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한, 665조에는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 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서비스연맹 법률원 조혜진 변호사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박스에 손잡이 구멍'... 마트노동자엔 절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단순 반복 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사업주가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노동법 제67조에 따른 벌칙이 부과된다"라고 덧붙였다.

상자에 손잡이만 생겨도 달라지는 삶의 질 
 
손잡이 없는 상자들 마트에서 파는 상품은 후방창고 정리부터 시작하여, 매장 진열 과정을 거쳐 고객의 손으로 가기까지 누군가의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 손잡이 없는 상자들 마트에서 파는 상품은 후방창고 정리부터 시작하여, 매장 진열 과정을 거쳐 고객의 손으로 가기까지 누군가의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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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손잡이 없는 무거운 상자 하나만 들고 옮겨도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된다. 그럴 땐 임시방편으로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상자 양옆에 구멍을 뚫거나, 박스 테이프를 칭칭 감아 손잡이 형태를 만들어 들어 올리기도 한다. 손잡이가 생기면 손 위치가 편해지고 허리를 덜 숙여도 된다. 무게까지 가볍게 느껴져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 

이처럼 상자에 손잡이만 생겨도 드는 자세에 따라 10~39.7%의 '들기지수' 경감 효과를 볼 수 있다. '들기지수(NLE, NIOSH Lifting Equation)'란 미국 산업안전 보건원(NIOSH)이 개발, 권장 무게 한계(RWL)를 구하고 실제 들려고 하는 중량물의 무게를 RWL로 나눠 1보다 낮도록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1'이상이면 요통발생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사업주는 어째서 '손잡이 있는 상자'라는 마트노조의 소박한 요구를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사업주는 박스 문제 해결 대상이 사업주가 아닌 상품 제조사 쪽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조사에서는 왜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비용 문제도 있지만, 상자에 손잡이 구멍을 내면 그 사이로 벌레나 이물질이 들어가 상품이 변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트 단위로 쌓아 올리는 재고 보관 특성상 손잡이 구멍으로 인해 하단부 박스가 접힐 우려도 있다. 특히 식료품일 경우 햇빛 노출 시 내용물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 납품 업체, 제조사는 상자에 구멍 뚫는 것을 꺼린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인천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마트노조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납품업체, 제조사에 제안할 예정이다. 하지만 법적 규제 대상은 아니라서 납품업체에서 거부한다면 사실상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마트노조 측은 "손잡이 설치가 추진되지 않는 주원인은 대형마트 사업주들의 책임 회피 탓"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사업주와 제조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에 애꿎은 마트 노동자들만 계속 '골병' 들어가고 있다.  홈플러스에서 근무하는 A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말하면 누군가는 그래요. '그러게 학교 다닐 때 공부하지 그랬니. 그 정도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엄살 피울 거면, 다른 일이나 알아봐라' 남의 사정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몸도 마음도 아파요."

누군가에게는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 연휴 기간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날로 또다시 다가온다. 하루빨리 무거운 상자에 손잡이 문제 개선이 이루어져, 우리의 이웃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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