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비저블 라이프>포스터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포스터 ⓒ (주)삼백상회

 
여성의 삶의 질곡은 시대와 나라를 떠나 반복된다. 낯선 브라질 영화에서 한국 영화의 기시감을 발견했다면 맞을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자매들의 기구한 운명은 마르타바 탈라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다. 이를 스크린에 옮긴 가림 아나우즈 감독은 모계 중심 가정에서 자라며 남성의 부재 속 여성의 주도적인 삶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할머니, 어머니, 누이, 여동생, 이모로 이어지는 여성 연대기를 1950년 대 시대 속에 천착했다.

195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구스망 집안의 딸 귀다(줄리아 스톨클러)와 에우리디스(캐롤 두아르테)는 사이좋은 자매다. 어느 날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에 염증을 느낀 귀다는 항해사를 따라 그리스로 도피하고, 그런 언니를 동생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피아니스트가 꿈인 에우리디스는 오스트리아 유학을 목표했으나 사랑 없는 결혼으로 꿈을 잃는다. 그렇게 에우리디스의 첫날밤은 끔찍한 고통으로 새겨지면 언니를 향한 그리움의 진폭을 키워간다.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 스틸컷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 스틸컷 ⓒ (주)삼백상회

 
한편, 그리스로 떠난 귀다가 임신한 채 돌아오자 포르투갈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낸다. 낯선 땅에서 제빵사로 뿌리를 내린 아버지는 자식의 인생보다 사회적 이목이 중요했다. 때문에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자식을 단박에 내쫓아버린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귀다는 단 한 번도 집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 후 가난에 찌들어 혼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힘겨운 삶을 이어나간다. 대신 언젠가 닿을지도 모를 편지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버틴다. 영화에서 귀다가 에우리디스에게 보내는 간절한 편지글이 내레이션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그 어떠한 음악보다도 훌륭한 감정을 전달한다. 물리적으로 끊어 낼 수 없는 질긴 혈연은 부모와 자식 사이보다 동기 간에서 선명히 부각된다.

자매는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찾는다. 그 원흉은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묘사되는데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인연의 고리를 끊어 버린다. 어머니는 그 삶이 다하는 날까지 철저히 함구함으로써 힘없이 순응해 버린다. 둘은 한 번의 만남이 성사될 뻔한 상황까지 비켜가며 잊지 못해 애달픈 고통을 이어나간다.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 스틸컷

영화 <인비저블 라이프> 스틸컷 ⓒ 인비저블 라이프

 
<인비저블 라이프>는 가부장제 틀에서 날개를 펴지 못한 여성들의 안타까운 대서사시다.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원하지 않는 결혼과 출산으로 접어야만 했던 에우리디스의 날개는 끝끝내 부러지고 만다. 미혼모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이의 여권조차 만들지 못하는 귀다는 세상의 냉대와 싸우며 더욱 단단해져만 했다.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여성들의 희생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동안 가족의 틀 안에서 스러져간 한국 여성들의 수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영혼의 반쪽을 찾아 평생을 그리워하는 것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꿈이 있으나 꿈꿀 수도 없고 기회조차 박탈당한 여성의 삶은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다. 누군가의 조력자로서 꿈을 대리만족하고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곪아버린 모순이다.

영화는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태곳적 모습을 간직한 열대지방의 숲과 몽환적인 분위기는 강렬한 색채와 만나 독특한 인장을 남긴다. 한 가지 색으로 규정할 수 없는 스펙트럼을 가진 두 배우의 관능미는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투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여성과 자매들의 연대성이 내면의 깊은 감정까지 흔들어 놓는 마법을 부린다. 잃어버린 귀걸이 한쪽이 갖는 깊은 슬픔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밀도 있는 여성 서사와 아름다운 미장센은 이색적인 분위기 속으로 안내한다. 영화는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어 더 많은 영화를 접하고자 하는 당신의 갈증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두터운 장막을 걷어내고 불편한 진실을 볼 용기를 낸다면 충분하다.
인비저블 라이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