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 싸이더스

 
영화 <야구소녀>는 여성이라 겪는 어려움보다 노력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 혹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떤 전략으로 이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영화다. 즉, 삶의 태도를 어떻게 가지고 살아가느냐를 말하고 있다. 때문에 여성 선수로서의 고군분투로 한정하기 보다 꿈을 좇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적용되는 보편성을 갖는다.

수인(이주영)은 어릴 적부터 야구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134km 던지는 천재 야구 소녀는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실력보다 이슈에 가려진 선수기도 하다. 사회는 아직도 여성의 스포츠를 단순한 가십으로 다룬다. 때문에 자신을 증명하고, 사회의 편견과 싸우기 위해 오늘도 꾸준히 공을 던진다.

수인은 "넌 어차피 안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새롭게 부임한 진태(이준혁)는 수인에게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 쉽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수명을 다한 걸까. 유망주란 꼬리표, 여성 선수의 역사는 끝이 보이는 듯했다.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 싸이더스

 
여성 야구 선수가 아닌 '야구 선수'로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당시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되었다. 1996년에 이 조약이 폐지되며 여성도 프로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관련 문구를 인트로에 삽입하며 소수자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제대로 된 프로 야구팀 하나 없는 여성 선수가 온전히 야구를 한다는 건 예고된 가시밭을 가겠다는 의지다.

수인의 공 속도는 여성으로서 높은 기록이지만 프로 세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정도다. 공이 느리고 실력이 없다고 말하는 진태의 말은 여성이라서 안 된다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프로 입단을 결정하는 고교 야구의 마지막 학년 수인의 프로 입단은 불투명해진다. 이대로 야구를 접고 소질도 없는 취업은 하고 싶지 않다. 줄곧 야구만 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는 청춘이다.

하지만 진태는 그냥 두면 도태되어 버릴 수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리는 너클볼을 제안한다. 속도만 본다면 기준에 한참 모자라나 회전율이 좋기에 너클볼을 변형해 장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길만 있다고 생각한 수인에게 다양한 길을 열어준 진태를 통해, 수인은 여성 야구 선수가 아닌 '야구 선수'로서의 길에 한 발짝 다가간다.

부상당한 선수들이 던진다는 너클볼. 오직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만일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다. 앞으로 닥칠 여러 위험에 맞설 수 있는 경험을 얻었으니 말이다. 가다가 막히면 다른 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돌아갈지언정 늦더라도 원하는 목표에 도착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 싸이더스

 
수인은 포기란 말과 가까웠지만 애써 외면했다. 아빠(송영규)의 오랜 시험공부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엄해란)는 일찌감치 빠른 포기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했다. 몇 년을 했는데 1년 더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며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아마 엄마는 수인도 아빠처럼 될까 봐 겁이 났을 거다. 사랑하는 딸이 힘들어할 것을 알기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충고였다. 손에 잡히지도, 끝이 보이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는 건 괜한 시간 낭비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어떡하냐고,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아냐고 말이다. 영화는 그 느릿한 과정을 차분한 시선으로 좇는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단 한 번도 못한다고 포기한 적 없는 뚝심. 그런 수인의 꾸준함은 야구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빛을 발하는 좋은 자질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이 산을 넘으면 또 저 산이 기다리고 있다. 다소 판타지 같은 결말은 영화적으로는 해피엔딩이나 현실에서는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가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영화는 야구에 빗대 인생을 말하고 있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주수인에게 던지는 응원이다. 당신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야구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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