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한국농구를 요약하자면 '시련과 극복'이다. 한국농구의 인기를 이끌었던 농구대잔치 세대가 세월의 흐름속에 밀려나고 프로농구는 경쟁력 하락과 이슈 부재 속에 장기간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승부조작, 탱킹, 불통 행정 등 연이은 악재들도 농구팬들을 등 돌리게 만든 원인이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묵묵히 한국농구를 지탱해준 스타들은 존재했다. 농구인기의 황금기였던 90년대-2000년대만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켜준 선수들이 있었기에 한국농구는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10년대 한국농구를 이끈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위대한 리더 '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
 
 지난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오리온의 경기에서 현대모비스 양동근이 3점 슛을 던지고 있다.

지난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오리온의 경기에서 현대모비스 양동근이 3점 슛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대가 명실상부 '양동근의 시대'였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없을 것이다. 사실 양동근은 강동희-이상민-김승현 등으로 이어지는 천재 포인트가드들의 황금시대 끝자락에 등장한 듀얼가드로서 과소평가받았던 측면이 있다. 서장훈이나 주희정처럼 무지막지한 누적 기록을 쌓은 것도 아니고, 이상민같은 폭발적인 인기도, 허재같은 천재성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양동근은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꾸준히 그리고 묵묵하게 정상을 지켜온 소나무같은 존재였다. 한국 나이로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도 양동근은 여전히 KBL 최고의 가드로 건재하다.

울산 현대모비스가 통산 7회 챔프전 우승, 특히 2010년대에만 5회나 정상에 올랐을 때 그 중심에는 양동근이 있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우승 당시의 주전가드도 바로 양동근이었다. 그는 31일 현재 프로무대에서 총 14시즌 동안 현역 최다인 653경기에 출전하며 11.9점, 5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중이다. 농구선수의 에이징 커브인 35세 구간을 넘으며 평균 득점만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면에서 전성기와 큰 차이 없는 생산성을 유지중이다. 전성기에는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에서 주인공은 물론 도우미 역할까지 묵묵히 감수하며 항상 팀을 위하여 헌신해온 양동근은 한국판 팀 던컨(샌안토니오 스퍼스)처럼 어쩌면 스타라기 보다는 '위대한 리더'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선수다.

'대한건아' 라건아(울산 현대모비스-서울 삼성-전주 KCC)

2017년 한국 귀화이전의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이든, '한국 선수 라건아'든, 그가 2010년대 KBL을 지배한 최고의 빅맨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외국인 선수로 처음 한국땅을 밟은 2012년만해도 다듬어지지 않은 미완의 유망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차츰 경험이 쌓으며 KBL 최초의 챔프전 3연패 포함, 모비스에서만 4회의 우승을 달성했다. 백업멤버에서 시작하여 '육성형 외국인 선수'의 최대 성공사례로도 꼽힌다.

특별귀화 이후로는 한국농구 부동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 농구월드컵 본선진출과 25년만의 1승에도 크게 기여했다. 다만 귀화 이후 폭행사건 등 경기 외적인 행실 문제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8시즌 동안 평균 19.6점, 11.1리바운드, 올시즌 통산 7500점-4000리바운드 고지를 돌파한 라건아는 은퇴한 서장훈(1만 3231점, 5235개, 역대 1위)만이 보유하고 있는 1만득점-5천리바운드 고지에 도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후보로 평가받는다.

초창기에는 백업멤버로 출전하여 누적 기록에서 손해를 봤지만 아직 30세에 불과해 2020년대에도 아직 4~5년은 충분히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어, 얼마나 많은 기록을 추가할지 기대된다.

'태종대왕' 문태종(인천 전자랜드-창원LG-고양 오리온-울산 현대모비스)

친동생인 문태영과 함께 귀화혼혈선수 돌풍의 최대 성공 사례이자 KBL판 레이 앨런, 2010년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클러치 3점슈터라 불러도 손색 없는 이는 바로 문태종이다. 이미 KBL에 오기 전부터 유럽 정상급의 슈터로 명성을 쌓았고 30대 중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한국에 왔음에도 9시즌간 5375점, 3점슛 681개, 정규시즌 MVP, 챔프전 우승 2회 등 화려한 기록을 쌓았다.

특히 국가대표로 출전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당시 최대 고비였던 필리핀-이란전에서 보여준 탁월한 클러치능력은 농구팬들에게 잊지못할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2018-19시즌 모비스에서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은퇴했다.

다혈질에 감정표현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았던 다른 귀화혼혈 선수들과 다르게, 스타플레이어였음에도 특유의 침착하고 진중한 성격으로 주변의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이승준이나 전태풍과 달리 특별귀화로 비교적 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에도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문화에 동화되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팬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타고난 재능과, 아쉬운 내구성' 오세근(안양 KGC 인삼공사)

서장훈-김주성에 이어 2010년대 한국농구의 간판 빅맨 계보는 오세근으로 이어진다. 빅맨으로서는 다소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수를 능가하는 괴물같은 파워와 정확한 슈팅능력, 농구센스까지 겸비하여 만년 중위권팀이던 안양 KGC를 일약 우승권 팀으로 끌어올린 핵심이었다. 2번의 KBL 챔프전 우승, 정규리그 MVP, 2014 아시안게임 우승, 2017 FIBA 아시아컵 베스트5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제몫을 다해준 빅맨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앙대 재학 시절 불법도박에 배팅한 것은 흑역사로 남아 있다. 농구선수로서의 유일한 단점은 의외로 유리몸이라는 것이다. 부상으로 2년차인 2012-13시즌을 완전히 날린 것을 비롯하여 올해도 어깨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며 커리어 평균 출장률이 70%(9시즌 303경기)가 되지 않는다. 빅맨으로서 준수한 평균(13.7점, 7.4리바운드, 2.5어시스트)에 비하여 누적 기록에서는 손해를 많이 봤다. 내구성만 받쳐줬다면 선수 위상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가 달리면 곧 길이 된다' 김선형(서울 SK 나이츠)

2010년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돌격대장', 폭발적인 스피드와 현란한 스텝을 활용하여 상대 진영을 공략하는 돌파력은 최근의 KBL에서는 보기드문 김선형의 트레이드 마크다. 김선형에겐 프로 진출 이후 자신의 고유 플레이스타일을 존중해주면서도 슈팅가드에서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변화시킨 문경은 감독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9시즌간 통산 373경기에서 13.1점, 4.6어시스트. 3.1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중이다. 외국인 선수에게 에이스 역할을 넘겨주고 국내 선수들이 조연으로 전락한 KBL의 흐름속에서 김선형은 특유의 강심장을 앞세워 국내 무대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자신감있는 플레이를 펼칠 줄 아는 몇 안 되는 스타 선수다.

2000년대까지 모래알 군단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SK가 2010년대 성적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인기 구단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선형과 애런 헤인즈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면서부터였다. 오세근과 마찬가지로 대학시절 불법도박 혐의에 연루되어 한동안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큰 물의 없이 SK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로 착실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의 감독 유재학(울산 현대모비스, 2010,2013-14 농구대표팀)
최고의 팀 울산 현대모비스

 
 지난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오리온의 경기에서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지난 18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오리온의 경기에서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대에만 5회의 우승, KBL 최초의 챔프전 3연패. 역대 최다우승(7회) 울산 현대모비스가 2010년대 KBL을 지배했다는데 이견을 달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비스 왕조의 중심에는 유재학 감독이 있었다. KBL 원년부터 지도자로서 공백기 없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도 유 감독이 유일하다.

오랜 암흑기를 보내던 농구대표팀을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2014 농구월드컵 본선-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등으로 이끌며 부흥의 계기를 마련한 것도 유 감독 시절이다. 어느덧 리그 최고령 감독이 된 지금도 수비전술이나 선수장악, 구성 능력에선 그를 따라올 만한 인물은 없을 정도다. 종종 시대착오적인 행동으로 질타를 받은 것은 옥에 티다. 그래도 유재학이라는 지도자가 모비스를 넘어 '질식수비와 조직력'이라는 KBL 특유의 농구스타일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점은 부정할수 없다.

그 밖에 반드시 언급해야할 선수들
김주성 이정현 조성민 양희종 함지훈 이승현 문태영


'한국판 케빈 가넷' 김주성의 신체적 전성기는 사실 2000년대에 가깝지만 2010년대의 김주성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리그에서는 세 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2000년대에 비하여 2010년대에는 준우승만 4번이나 기록하며 '콩주성'이라는 아쉬운 닉네임을 얻기도 했지만,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우승으로 2002년에 이어 유일하게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건 농구선수가 됐다. 혹사와 노쇠화로 운동능력이 하락한 후반기에도 특유의 농구센스와 수비력을 바탕으로 장수했으며 말년에는 슈터로 변신하기도 했다. 좀더 일찍 빅맨으로서의 봉인을 해제하고 다재다능함을 살렸더라면 더 좋은 기록과 위상을 남겼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성민과 이정현은 각각 2010년대 한국농구의 전후반기를 대표하는 간판 슈터들이다. 조성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오프더볼 무브와 전술소화력으로 언제 어디서든 기복 없이 제몫을 해주는 선수였다면, 이정현은 내외곽을 가리지않는 역동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폭발력이 돋보인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안정감은 조성민이, 소속팀에서의 성과는 이정현이 우위에 있다. 다만 조성민은 30대를 넘기며 운동능력 하락과 함께 노쇠화도 일찍 찾아왔다. 이정현은 '으악새'혹은 '국악새'로 불리는 과도한 플라핑과 오버 액션 때문에 농구팬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린다.

'코트의 파이터' 양희종은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팀공헌도로 2010년대 KBL한국농구를 이끈 숨은 주역이었다. 안양 KGC에서 두 번의 챔프전 우승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보듯, 득점력은 높지않아도 중요할 때 한방씩 터뜨려주는 클러치능력도 발군이었다. 이밖에 함지훈과 이승현은 언더사이즈 빅맨의 한계를 극복하고 프로무대에서 성공신화를 개척했다. 문태종과 함께 2010년대 한국농구의 귀화혼혈선수 열풍을 주도한 3인방 이승준-문태영-전태풍 등도 저마다 뛰어난 기량과 특유의 쇼맨십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KBL의 인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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