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시작은 미약했다. 모든 것은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 하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영상에는 올해 대학 축제에서 '비밀번호 486'을 부르는 가수 윤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실 윤하는 이미 유명한 가수고,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구태여 찾아 듣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축제 영상 속에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뛰어 다니는 윤하를 보고 문득 그의 라이브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뿐이었달까. 그렇게 며칠 동안 지난 몇 년 간의 윤하 라이브 영상과 뮤직비디오를 통째로 찾아보게 되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는' 뮤직비디오 갈무리.

'비가 내리는 날에는' 뮤직비디오 갈무리. ⓒ C9엔터테인먼트

 
그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윤하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고 고백(?)을 하자, 친구는 "영업에 성공한 것 같다"면서 기뻐했다. 며칠 뒤에는 윤하 팬클럽 'Y. Holics'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좋아하는 가수들 노래를 즐겨 듣는 것 외에는 해본 것이 없는 입장에서 아마 윤하 덕질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팬클럽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다. 심지어 가입하려면 돈까지 내야 하는데... 그래서 돈을 내고 팬클럽 4기에 가입했다. 

참고로 올해는 윤하가 한국에서 데뷔한 지 13주년이 되는 해다. 2004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윤하는 2006년 KBS <인간극장>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고, 이후 디지털 싱글 < Audition >을 발매하며 공식적으로 한국에 데뷔했다. 그래도 나름 데뷔한 지 꽤 된 가수라, 윤하 덕질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근데 요즘 그 사람 한물 가지 않았어?"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윤하를 덕질하지 않았어도 저 말은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사람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왜 덕질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면 말을 말거나, 정중하게 물어보면 될 것을 왜 저런 식으로 속을 긁는 걸까? 저 질문이 문제인 이유는 덕질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가수를 변호하고 싶어서라도 구차하게 반박거리를 찾아내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윤하가 요즘 왜 상승세인지 주저리주저리 변호를 하게 되더라. 안 그래도 올해 발매된 미니앨범 < Stable Mindset >이 대중적으로 반응이 좋고... 대학축제에 늘 꾸준히 초대받고 있고... 이런 이유가 없어도, 내가 좋으면 그만인 건데...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늦깎이 덕질의 2019년 최종 행보는 연말 콘서트였다.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다른 곳도 아니고 콘서트에 지불할 수 있다니. 주변 지인들은 콘서트를 자주 다니곤 했지만, 나는 그럴 돈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윤하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R석을 예매했다. 9만 9천원. 수수료까지 합치면 10만원이 넘는. 아직도 내가 그걸 결제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지속가능한 덕질이 되려면
 
 응원봉과 <느린 우체통> 악보집.

응원봉과 <느린 우체통> 악보집. ⓒ 김민준

 
 
 25일 진행된 연말 콘서트 <Winter Flower> 2일차.

25일 진행된 연말 콘서트 2일차. ⓒ 윤하 인스타그램

 
그래서 25일, 성탄절에 윤하 연말 콘서트 < Winter Flower >에 다녀왔다. 콘서트가 처음이라 사람들 다 신나게 노는데 나 혼자 돌부처처럼 서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뭐 어때, 다음에 볼 사람들도 아닌데!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었다. 오히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돌부처처럼 있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공연은 너무 좋았다. 무대 구성도 너무 감각적이고 셋리스트도 관객들의 취향과 아티스트의 취향이 고루 잘 반영된 것 같아서 대만족이었다. 공연 도중에 윤하가 말했다. "이제 대학 들어가는 친구들은 <비밀번호 486> 잘 모르잖아요."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탄식을 내질렀다. 그러자 윤하 왈, "아냐 현실을 인정해야죠". 그렇지만 한물 갔느니 퇴물이니 뭔 소리를 들어도 어차피 롱런 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 아니겠나?

본격적으로 '입덕'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나는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나도 나름 열심히 덕질하고 싶은데, 진짜 본격적으로 덕질하는 사람들은 고가의 장비를 사고, 윤하가 출연하는 공연은 어디든 따라 다닌다. 직찍러(직접 찍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 중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도 있고, 유튜브에 업로드해서 조회수를 챙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법상 창출된 수익은 모두 노래의 저작권자가 가져간다. 

그럼 돈이 될 일은 없고 돈이 빠져 나갈 일만 남은 이 덕질이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져보면 "제대로 찍으려면 이런 저런 장비를 갖춰야 하고, 최소한 몇 백만원은 쉽게 나간다." 이런 여론들이 많은 듯하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분명한 것은 덕질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 돈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님 역시 분명하고.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지만 자발적인 '탈덕' 없이 꾸준히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공연장을 나섰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덕질할 수 있길 바라며. 
#윤하 #덕질 #콘서트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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