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은 두터운 국내 장신 포워드진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외국인 선수를 상대로도 수비 매치업이 가능한 국가대표 이승현을 필두로, 허일영, 최진수, 장재석 등이 포진한 포워드진은 10개 구단 중 상위권에 해당하는 선수층이다. 올시즌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프로농구 판도에서 오리온은 충분히 6강 이상을 노려볼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오리온은 올시즌 기대치가 무색하게 4승 9패로 9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치고 있다. 각각 부상과 기량미달로 외국인 선수를 벌써 두 번이나 교체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 사보비치가 합류한 이후 백투백 일정으로 치러진 지난 주말 경기에서 강호 원주 DB를 제압했지만 하루 뒤 치러진 안양 KGC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완패하며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다른 팀에 비하여 오리온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포워드진의 부진이 아쉽다. 장신슈터 허일영이 사타구니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이승현과 최진수가 좀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현은 올시즌 6.9점, 5.0리바운드, 야투율 39.3%에 그치고 있는데 프로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최진수도 8.3점, 3.8리바운드, 야투율 38%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던 예년 시즌에 비하여 기록이 크게 하락했다.

두 선수와 함께 오리온 토종 빅맨진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장재석이 10.4점, 5.8리바운드야투율 52.9%로 개인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다른 팀들에 비하여 외국인 선수들의 팀 기여도가 떨어지는 오리온으로서는 믿었던 이승현과 최진수의 동반 부진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선수의 부진을 단순히 선수들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이승현은 비시즌 국가대표팀 차출로 농구월드컵에 출전하느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이승현과 함께 대표팀에 다녀왔던 이정현(전주 KCC), 이대성(울산 현대모비스) 등도 시즌 개막 이후 한 동안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현재 이승현은 발바닥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팀사정상 어쩔 수 없이 경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2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오리온-인천전자랜드 경기. 1쿼터 고양오리온 이승현이 슛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오리온-인천전자랜드 경기. 1쿼터 고양오리온 이승현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일승 감독의 외국인 선수 선발 실책도 이승현에게 부메랑이 된 모양새다. 추 감독은 올해 외국인 선수 진용을 구상하면서 정통빅맨을 뽑지 않고 가드 조던 하워드, 포워드 마커스 랜드리같은 백코트 위주의 선수들을 선발했다. 이승현과 장재석이 상대 외국인 빅맨들에게 어느 정도 버텨준다는 전제하에 시도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랜드리가 3경기만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대체선수로 가세한 올루 아숄루마저 기량미달로 판명되면서 이승현의 과부하는 더 심해졌다.

서장훈, 김주성, 오세근, 하승진 등 KBL 역사에서 이승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토종 빅맨들도 확실한 외국인 정통빅맨을 파트너로 두었을 때 최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프로농구 역사상 강력한 외국인 빅맨없이 우승한 경우는 바로 2015-16시즌의 오리온이 사실상 유일하다. 당시 오리온은 가드 조 잭슨와 포워드 애런 헤인즈로 구성된 외인 조합이 플레이오프에서 상대 매치업을 압도하는 '크레이지 모드'를 보여준 예외적인 사례였다.

추일승 감독은 3년전 '포워드 농구'의 향수에 젖어있지만 현재 하워드-사보비치로 구성된 오리온 외인들의 수준은 당시에 미치지 못하고, 이승현도 수년간 누적된 체력부담과 잔부상으로 신인 시절의 건강하던 몸상태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최진수는 오히려 이승현의 가세 이후 활용도가 애매해진 케이스다. 최진수는 프로 데뷔 초기부터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선수다. 좋게 말하면 3번(스몰포워드)과 4번(파워포워드)를 두루 소화할수 있는 멀티자원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어느 자리에서도 어정쩡한 '트위너'가 되어버린다.

지난 시즌 최진수는 이승현이 군제대 이후 복귀하기 전까지 커리어하이 성적을 기록하며 실질적인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비록 팀성적은 저조했지만 최진수만큼은 이승현이 빠진 4번 자리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며 볼소유시간이 길어지자 훨씬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승현이 복귀하면서 올시즌 다시 3번으로 기용되는 시간이 늘어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최진수는 데뷔 초기부터 '볼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좋은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안으로 파고들면 이승현이나 장재석과 동선이 겹치고, 외곽으로 나와서 '받아먹는 공격'을 시도하기에는 슈팅 매커니즘이 불안정해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출전시간과 공격 비중이 감소한만큼 최진수의 기록과 자신감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성이 맞지 않는 두 주전급 선수의 공존은 추일승 감독이 벌써 몇 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다.

이승현은 현재 출전시간을 어느 정도 관리받고 있지만 지금같은 몸상태로 계속 출전을 강행하는게 팀에 득이 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다행히 210cm의 장신인 사보비치가 가세하면서 오리온은 골밑 운영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게 됐다. 사보비치도 아직 체력과 경기 감각이 충분하지 않지만 이 정도는 실전을 거듭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차라리 이승현에게 과감하게 회복할 시간을 주고, 대신 최진수를 4번으로 기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아니면 과감하게 한 선수를 벤치에 내리고 식스맨으로 활용하는 결단도 가능하다. 오리온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던 KGC(오세근)나 창원 LG(김시래)는 당장의 출혈에도 불구하고 부상 선수들을 무리하게 투입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이승현-최진수 두 선수 모두 자신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당장 하위권으로 추락한 성적 때문에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은 길고 경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눈앞의 1승보다 이승현-최진수의 '부활과 공존'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오리온의 올시즌 반등은 어렵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농구 최진수이승현 사보비치 추일승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