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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나는 오랫동안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아빠는 그저 평생 누구보다 성실히 노동했을 뿐인데, 못난 딸은 그 노동을 창피해하며 자랐다.

사람들은 그 노동 앞에 '막'이라는 단어를 붙여 불렀다. 막노동. 나는 그 단어가 너무 싫었다. 아빠는 노동을 막 하지 않았는데,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하셨는데, 왜 그 일은 막노동이라 불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수백 장의 이력서를 쓰던 취업준비생 시절, 나는 자기소개서의 수십 줄을 채우는 것보다 가족 관계란에 아빠의 직업 한 칸을 채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뭐라고 써야 할까? 일용직, 노동자, 막노동, 막일. 아빠의 일을 형용하는 그 단어들을 차마 쓰지 못했다.

망설여지는 고민들과 부끄러워했던 못난 생각 사이에서, 아빠의 직업은 그냥 회사원으로 써질 때도, 건설사 대표로 둔갑될 때도, 또 어떤 날은 자영업이라 채워진 날도 있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그 네모 칸을 도려내 휴지통에 버리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직장체험 수업이 있었다. 아빠 직장에 찾아가 하루 경험을 하고, 사진도 찍고 글로 써서 느낀 점을 발표하는 숙제였다. 그 숙제를 받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친구에게 부탁했다. 아빠의 일터가 아닌, 은행에 다니셨던 친구 아빠의 직장에 찾아가 숙제를 마쳤다.

다음날 숙제 발표 시간. 선생님이 나를 시키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다. 왜 아빠 직장에 가지 않았냐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가슴 졸였다. 숙제를 하고도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처럼 주눅 들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도 막노동이라 불렸던 아빠의 직업이 다른 아빠들과 무언가 다르다 인지했나 보다. 아빠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런 과제가 있었는지를. 내가 그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를.

설령 그때 말씀드렸다 해도 아빠의 직장에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알았다. 아빠는 직장이 아닌 현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공사장에 나가 배당을 기다리고, 연장과 자재를 이고 지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을 그 일을, 어린 딸도 아빠도 체험으로라도 함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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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장은 하루일 때도, 일주일일 때도, 몇 달일 때도 있었다. 50년을 넘게 일했지만 아빠는 회사 주소도, 내선 전화도, 명함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직장으로 출근했다면 나는 그 회사로 가 숙제도 하고, 아빠 내선 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도 하고, 아빠의 네모반듯한 명함도 만져볼 수 있었을까.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했던 건 아빠가 회사원이, 건설사 대표가, 사장님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긴 경력을, 유일한 직업을, 그 노동을 감추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참회와 반성이 참 많이도 늦었다. 행여 누군가 아빠의 직업을 물어올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던 낯없는 시간들. 창피한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노동을 글로 쓴다. 50년 치 밀려 있던 인정과 존중을 늦게나마 채우기 위해서 아빠의 일을 그리고 삶을 기록한다. 나의 글은 아빠의 이력서가 된다.

먼저 이십 대에 도려냈던 아빠의 직업란을 다시 붙여 꾹꾹 눌러 적는다. '건설노동자'.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아빠의 노동과 삶을 아빠를 대신해 깊게 써 내려간다. 자기소개서가 아닌 아빠소개서. 그렇게 아버지의 생을 더듬어 기록한다. 그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완성되면 나는 여기저기 잘 내놓아볼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위대한 삶이, 대단한 생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아빠의 평생 직업인 막노동 앞에 붙은 '막'이라는 한 글자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hjl0520)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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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