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라미스드 랜드> 스틸컷. 배급 CGV무비꼴라쥬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 스틸컷. 배급 CGV무비꼴라쥬 ⓒ 이준한

 
미국의 한 작은 마을 맥킨리에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 '글로벌'의 스티브(맷 데이먼)와 수(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찾아온다. 맥킨리는 경기 하락의 영향으로 지역경기까지 침체된 곳이다. 마을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가치의 천연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스티브와 수의 목적이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족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액수를 제시하며 현혹한다. 몇몇 사람들은 솔깃한 액수에 토지 판매를 약속한다. 그러나 채굴설명회 장소에서 마을 고교 교사인 프랭크(할 홀브룩)의 반대로 마을의 여론이 흔들리고, 결국 3주 후에 최종투표를 실시하기로 약속한다. 설상가상으로 스티브와 수 앞에는 환경운동가 더스틴(존 크랜신스키)가 등장해, 천연가스를 채굴하면 마을 환경이 파괴된다며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프라미스드 랜드>에는 천연가스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지하자원의 채굴은 손쉽게 찬반을 나눌 수 있어서 창작자의 입장에선 매우 반가운 소재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우리가 이 영화의 첫 10분을 통해서 떠올리는 건 각 진영이 이익을 위해 벌이는 패싸움 따위의 익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 우리는 갈등이나 승자 그리고 패자 대신,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동일한 전략을 가져오는 집단들의 흥미로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21세기의 우리는 타인의 물건을 원할 때 협박 등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인간은 그것을 '신뢰'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프라미스드 랜드>는 신뢰에 대한 이야기다. 자, 그렇다면 고민해보자. 신뢰는 진심에서 비롯되는가, 진실에서 비롯되는가.
 
구스 반 산트는 언제나 자신의 영화를 통해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외부인의 모습을 그려왔다. <굿 윌 헌팅>에서 윌 헌팅은 학교청 소부지만 학생이 아니었고, <투 다이 포>에서 수잔은 강한 출세욕에 비해 가정에서는 한정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여성이었다. <프라미스드 랜드>의 스티브와 수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인인 그들은 내부인들(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더스틴 역시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타인을 경계한다. 비록 타인이 자신과 같은 궤를 이룬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프랭크가 자신을 찾아와 주민들의 승리를 도와주겠다는 더스틴의 제안에 "이곳 사람들은 환경운동에 나갈 만큼 의욕이 없을 텐데. 우리가 이길 테니 걱정말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돈을 내걸거나 호의를 증명할 무언가를 제시하고 그 주변을 수백 바퀴 서성인다 할지라도, 외부인은 그저 외부인으로서 남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티브와 수, 더스틴이 맥킨지라는 공동체의 호감과 믿음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돈이나 증거 따위가 아닌 주민들에게 내미는 손 한 뼘 딱 그 면적만큼의 신뢰였다. 믿음이 인간관계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교류에 필요한 건 나에게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신용임은 분명하다.
 
영화는 관객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소 속도를 낮추며 결말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해치는 요인이 되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애초에 이 영화가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주는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한 공동체에서 외부인이 얻고자 하는 선의에 대한 공감과 신뢰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많은 시도와 수고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신뢰는 진심에서 비롯되는가, 진실에서 비롯되는가. 신뢰는 분명 공감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구스반산트 프라미스드랜드 영화리뷰 신뢰와믿음 맷 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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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잘 쓰진 못합니다. 대신 잘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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