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어스> 포스터

영화 <어스> 포스터 ⓒ UPI 코리아

  
'나'라는 존재를 선이나 악, 어느 한쪽으로만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주요 등장인물들의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제삼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영상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어떤 쪽이 선인지 악인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서 판단하며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 또는 주변 가족들을 바라볼 때는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은 선한 의도를 더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호의도 베풀고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활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빈부격차나 계급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 선진국에서는 그런 자본으로 나뉘어진 계급의 인식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위 계급으로 인식되는 저자본층은 상위 계급으로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든 가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며 상위 계급은 그 하위 계층을 무시하고 모른 척 살거나 압박하여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선악에 대한 인식과 계급갈등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영화

영화 <어스>는 자신에 대한 선악 구분, 계급 간의 갈등 같은 요소를 장면 장면에 은유적으로 담아낸 공포 영화다. 중심이 되는 가족은 엄마 애들레이드 윌슨(루피타 뇽오), 아빠 게이브 윌슨(윈스턴 듀크), 딸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아들 제이슨(에반 알렉스)이다. 이들이 휴가로 자신들의 별장으로 놀러 간 때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인물들이 별장 안으로 침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똑같은 인물이지만 새롭게 등장한 가족은 말을 못 하고 괴성만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외모도 뭔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다. 그들이 하는 행동도 굉장히 기괴하다.
 
 영화 <어스> 장면

영화 <어스> 장면 ⓒ UPI 코리아


그들이 윌슨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윌슨 가족은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포심에 사로 잡힌다. 마치 그들 자신이 악의 화신이 되어 나타난 것처럼 공포심에 사로잡히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아난다. 마치 분열된 자아와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하는 것처럼 윌슨 가족은 각자의 자신과 치열하게 대결한다. 쫓고 쫓기는 대결의 장소는 각 인물들의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 아빠와 도플갱어는 현관문 밖에서 주로 대결을 벌이고, 엄마는 집안에서 앉아서 서로를 바라본다. 딸은 외부에서 달리기로 대결하고 아들은 자신이 숨어서 장난치던 작은 창고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마주한다. 자신이 실제 생활에서 활동하는 패턴과 장소대로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엄마 애들레이드는 손이 묶여있다. 그는 이미 어렸을 때 한 놀이공원에서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났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도플갱어는 다른 가족보다는 자신에게 더 가혹하게 행동한다. 게다가 도플갱어 중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애들레이드의 도플갱어는 아주 세심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사를 이야기한다. 더 많이 알고 있던 존재에게 더 가혹한 형벌을 주는 것처럼 영화 내내 애들레이드의 손은 수갑으로 묶여있게 된다. 애들레이드가 영화 속 유일하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손이 묶여 있는 인물인데, 영화의 후반부까지 보고 나면 그것은 일종의 속박의 의미로 그 자신의 심리 상태 역시 도플갱어를 만난 순간부터 뭔가에 쫓기는 속박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난 기괴한 도플갱어

영화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여러 가지 전조를 보여준다. 에레미야 11장 11절이 강조된다던가 11시 11분에 시계를 보게 되는 등, 불안하고 공포심을 유발하는 전조들을 보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숫자 11은 영화 속 대칭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전조 증상이다. 이는 똑같은 도플갱어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모든 존재가 서로 동등하다는 평등의 의미도 가진다.
 
 영화 <어스> 장면

영화 <어스> 장면 ⓒ UPI 코리아


영화의 후반부에는 수많은 도플갱어가 등장한다. 지하에서 생활하던 수많은 도플갱어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길 원하며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향해 가위를 휘두른다. 가위는 대칭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도플갱어들이 자신들과 연결되어 있는 지상의 존재와의 연결을 끊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도 담겨있는 도구다. 윌슨 가족의 도플갱어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현재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윌슨 가족의 도플갱어들이 처음 별장으로 침입할 때 윌슨 가족이 묻는다. "당신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 말에 애들레이드 모습을 한 도플갱어는 쉰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리는 미국인이야."

미국 내에는 이민자들을 추방하거나 이민자들이 더 이상 들어오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려 하는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는 정책이나 이민자들을 차별화하려는 정책들이 실제 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강하고 이민자와 일반 미국민 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미국에 본래 살던 사람들은 그들과 사실은 동일한 위치에 있는 도플갱어들을 보면서 그들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민자의 존재는 뭔가 일그러져 보이고 정상적이지 않은 데다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존재들이다. 그렇게 인식하고 생활하던 어느 순간 지상으로 올라온 깨어있는 도플갱어가 지상의 미국민들에 섞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이민자 즉 도플갱어에게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살기 위해 대결을 벌인다.

미국 이민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묵직한 이야기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수많은 토끼들은 그런 도플갱어의 동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갇혀진채 살아가며 도플갱어들에게 생으로 찢겨 먹힌다. 그리고 도플갱어들은 지상의 사람들의 삶에 종속받고 연결되어 있지만 갇혀있기 때문에 모두 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낮은 계층이 살아가는 곳의 환경 자체도 영화처럼 좋지 않기 때문에 계급적 구분 짓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선명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 몇 개의 반전이 있는데 이는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 내용을 다 이야기할 순 없지만 꽤나 묵직한 메시지들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영화 <어스> 장면

영화 <어스> 장면 ⓒ UPI 코리아

  
꼭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이민자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들은 영화 속 도플갱어처럼 못 배운 사람들이고,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그래서 그들이 점점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불안함은 더 커지고, 그들을 더 배제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사회적 위치, 돈의 많고 적음으로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영화 속 상황처럼 서로를 죽여야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물고 뜯기는 잔인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괴한 루피타 뇽오의 뛰어난 연기

영화 <어스>는 공포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실제로 영화의 제목인 US는 '우리'를 뜻하는 것이지만, '미국'을 뜻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의미의 제목이다. 영화의 공포스러운 상황과 잔인한 생존 싸움은 굉장히 공포스럽지만 실제 현실도 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피가 나지 않을 뿐, 도플갱어들과 지상인들의 대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순간 상대방의 영역에 섞이게 되어도 삶과 생활이 다르지 않음을 영화는 증명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 루피타 뇽오의 연기다. 애들레이드와 도플갱어의 스타일을 다르게 하고, 특유의 눈빛을 통해 완전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누가 누군지 구분되지 않는 행동이나 패턴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끝까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의 기괴한 웃음과 목소리, 텅 빈 듯한 눈빛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의 머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도플갱어들은 각자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든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연대의 힘은 강력하다. 결국 영화는 계급과 사회적 위치가 다르더라도 무시당함이 당연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그 선과 악의 경계는 쉽게 정할 수가 없다. 영화 <어스>는 이런 강력한 메시지와 생각을 전해주는 완성도 높고 창의적인 공포영화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은 보는 관객들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들과 관련하여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이야기 하게 되는 영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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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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