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비슷한 시대 배경이지만 성격은 매우 다른 두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아래 <항거>)와 <자전차왕 엄복동>(아래 <엄복동>)를 두고 개봉일 희비가 엇갈렸다. 

두 영화 모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해가 마침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해 시의성이 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항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00년 전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통을 당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8호실 여성 감방에서 만세를 외쳤던 25명의 열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엄복동>은 자전차 대회 우승으로 식민지의 설움을 씻어줬던 엄복동을 조명했다.

상승세 탄 <항거>, 반면 <엄복동>은...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항거>의 오프닝 스코어(개봉 27일)는 9만 9761명, <엄복동>(개봉 27일)은 4만 756명이었다. 각각 3위와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오컬트 장르의 <사바하>와 법정 휴먼 드라마 장르 <증인>이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와중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항거>는 10억 원대의 제작비를 들인 저예산 영화다. 배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류경수 등 상업영화와 다양성영화를 고루 아우른 실력파 배우들이 의기투합했다. 열악한 촬영조건에서도 영화가 품고 있는 취지와 이야기에 공감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물인 것. 

이에 비해 <엄복동>은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순제작비만 100억 원가량이 든 큰 규모의 상업영화다. 배우 이범수가 제작을 맡았고, 정지훈·강소라·민효린 등 스타성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컷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컷 ⓒ (주)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정서 면에서 봐도 두 작품의 차이는 확연하다. <항거>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를 소재로 삼아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감 생활에 집중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형무소에 잡혀 온 유 열사와 동료들이 어떻게 신념과 정신을 지켰는지에 집중했다. 여러 사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영화는 묵직하고 진지하게 주제를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엄복동>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긴 했지만, 자전거 대회 우승과 당시 군중들의 반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요 사건을 상상력으로 엮어 놨다. 연출을 맡은 김유성 감독은 지난 19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영화에 블록버스터, 스포츠영화, 로드무비의 정서, 로맨스 요소까지 담고 싶었다"며 강한 의욕을 보인 바 있다. 그만큼 오락성에 방점을 찍고 흥행을 염두에 둔 것. 

현재까지 관객 수만 놓고 보면 <항거>에 더욱 관객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28일 오전 11시 기준 예매율을 봐도 <항거>는 <캡틴 마블>(32.8%), <사바하>(12.15)에 이어 12.1%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엄복동>은 5.2%로 6위다. 좌석판매율 또한 <항거>는 23.8%로 <엄복동>의 13.5%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다. 이대로면 3.1절 연휴와 주말에서도 <항거>는 상위권을 유지하게 되고, <엄복동>은 사실상 흥행 실패 흐름으로 가게 된다.

홍보인가 무리수인가

이런 흐름을 반전시키려는 것일까. 28일 <엄복동>의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측은 해당 작품이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의 공식 후원작으로 지정됐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10여 매체가 이를 받아 기사로 썼다. 해당 위원회는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 가치를 보전하고 이후 100년을 준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기구다. 

현재 나온 기사만으로는 마치 <엄복동>이 유일하게 해당 위원회의 후원을 받았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제작사가 작성한 자료이기에 다른 정보가 가려졌다고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엄복동> 이외에도 선정된 후원작들이 더 있다. 현재까지 위원회의 후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3월 14일 개봉 예정인 < 1919 유관순 >과 MBC에서 방영할 약산 김원봉의 삶을 다룬 드라마 <이몽> 등 총 3편이다. 
  
 지난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 현장.

지난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 현장. 출연 배우들이 포토월에 서 있다. ⓒ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지난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 현장.

지난 2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에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위원장도 참석했다. ⓒ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앞선 두 작품의 경우 극 중 소재로 다룬 인물이 독립운동가로서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엄복동의 경우 실존인물이 반복된 자전거 절도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고, 독립운동가로서의 행적 또한 불확실하기에 후원작으로써 적절한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 소속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작품 후원사업은 재정적 지원이 아닌 위원회의 명칭과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가 작품을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요청이 들어온 작품에 한 해 검토한다"며 그는 "(엄복동의 절도 행위 등) 영화 관련해 내부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긴 했지만 민초들의 삶을 전달하는 부분에 초점을 뒀다. 작품성을 검토한 결과 후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보도자료를 냈으면 (후원작으로 선정된) 세 작품을 다 언급했을 것"이라 덧붙였다.

<항거>와 <엄복동> 모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각 영화의 흥행 결과 역시 이젠 관객의 선택에 맡겨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작품이 포장되고 홍보되는 과정에서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가려지거나 훼손된다면 또 다른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정신을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자전차왕_엄복동 항거_유관순이야기 임시정부 독립운동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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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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