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지난 12월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곽우신

 
토마스(톰) 위버는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유명한 작가이다. 토마스는 어렸을 적 그의 친구 앨빈 켈비와 약속을 하나 한다. 먼저 떠나는 친구를 위해 남은 친구가 송덕문을 작성해주기로. 아주 오래 전 약속이었지만, 토마스는 앨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로 돌아왔다. 앨빈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토마스는 앨빈이 자살을 한 건지, 사고사를 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친구의 죽음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토마스가 앨빈을 마지막으로 본 건, 일주일 전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그때 앨빈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송덕문을 토마스에게 부탁했다. 토마스는 영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의 가장 아름다운 시 중 하나를 골랐다. 하지만 앨빈이 원한 건 다른 사람이 쓴 시가 아니라, 토마스가 쓴 앨빈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토마스는 앨빈이 부탁했던 송덕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한 지도 오래된 그에게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쓸 수 없는 작가 토마스는 빈종이 위에 펜을 들고 갈등했다. 앨빈을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야 하나, 오랜 친구라고 써야 하나. 그를 특별했다고 적어야 할까, 아니면 특이했다고 해야 할까.
 
그때, 토마스의 머릿속에서 앨빈의 목소리가 울린다. 송덕문을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토마스에게, 갑자기 등장한 앨빈은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라며 그냥 아무거나 골라서 적으라고 쉽게 말한다. 그런데도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토마스를 위해, 앨빈은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며 송덕문에 적을 만한 걸 함께 고르자고 제안한다. 토마스의 머릿속은 마치 서점처럼, 도서관처럼 빼곡하게 책의 형태로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으니까.
 
토마스는 머릿속 앨빈의 도움을 받아 애써 잊은 척 해왔던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토마스는 잃어버렸던 가장 소중했던 걸 찾기 위한 기억 속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한다.
 
토마스 위버와 앨빈 켈비의 이야기
 

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토마스가 처한 상황 "요즘 사람들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토마스의 감정을. '안 쓰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진짜 말이 쉽죠. '네가 원하면 하지 마, 네가 글이 써지지 않으면 안 쓰면 되잖아, 잠깐 쉬어, 내려와'라고 해도 '그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라고 할 수밖에 없죠. 어떻게 보면 정말 밀림과 정글 같은 곳에 토마스가 있는 거죠. 거기서 굉장히 '촉망받는 작가' 토마스가 받았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멈출 수 없게 됐을 것 같아요. 톰이 원하든 원치 않든. 톰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써야 되기 때문에, 해야 되기 때문에…." ⓒ 곽우신

   
배우 강필석은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맡아 연기하고 노래한다. 삼연 때부터 시작해 벌써 세 번째이다. 깊은 눈매가 매력적인 이 배우에게, 토마스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이다. 앨빈을 포근히 감싸주던 따뜻한 토마스부터, 앨빈의 편지를 몇 년째 외면하는 차가운 토마스까지. 토마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그 변화를 소화하는 느낌은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달라요, 이 작품은. 물론 모든 작품이 할 때마다 다르긴 한데. 어…. 좀 특이한 작품이잖아요, 이 작품 자체가. 그래서 나이가 들 때마다 느껴지는 게 정말 달라요. 표현도 달라지고요. 어떻게 보면 배우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가장 두드러지는 공연이기도 하면서, 또 개인적인 것도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타이트하게 짜여 있지 않거든요.
 
어떤 느낌이라고 얘기해야 할까. 따뜻해졌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또 차가워진 것만도 아니에요. 제가 바라보는 시점이 차가운 부분은 되게 차가워지고, 따뜻한 부분은 되게 따뜻해졌어요. 시즌을 하면 할수록, 그게 제가 많이 해서, 이 작품을 잘 알게 돼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조금 더 살아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해 12월 말,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 근처 카페에서 만난 강필석 배우는 토마스에게 많이 공감하고 있었다. 무대 사이 계단으로 핀 조명이 떨어지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토마스 위버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단상으로 올라간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을 바라볼 주변의 눈빛들 탓에 그는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처음에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너무 슬퍼지는 거예요.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희한하게. 예전에는 훨씬 이성적이고, 지금 상황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톰이었어요. 지금은 이 송덕문을 내가 어떻게 써내려갈지가 더 중요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답을 찾아가는 톰이었다면, 지금은 이미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그 답을 부정하고 있는 토마스라는 느낌이 들어요.
 
송덕문 내용은 어떻게 만들지? 앨빈은 도대체 왜 자살한 거지? 왜지? 왜인지 모를, 내 책임인 것 같은 죄책감이 톰에게 계속 있는 거예요. 그럼 난 이 송덕문을 어떻게 써야 되는 거지? 내가 쓰고 있는 게 맞나? 지금 내가 친구를 잃었는데, 그 친구가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진 않지만, 왜인지 나 때문일 것 같은 죄책감을 갖고 시작하게 돼요. 내 죄책감을 알고 있지만 계속 부정하다가, 어느 순간 그 죄책감을 맞닥뜨리며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톰.
 
제가 그걸 의도하고 연기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번 시즌에 이 노선으로 이렇게 한번 해보자'가 아니에요. 이 작품은 되게 자연스러웠으면 좋겠거든요. 억지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물 흘러가듯이 계속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이번 시즌 첫 공연할 때부터, 첫 장면 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너무 별로더라고요."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그게 송덕문이라는 거야
  

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토마스와 앨빈, 멀어지다 "토마스와 앨빈이 멀어진 건 토마스의 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에요. 앨빈 아버지 아프시고, 책방 와서 도와주다가 '그래, 네가 와. 재밌게 놀자'라고 했다가 너무 바빠지면서 '오지마'라고 하죠. 그때부터 앨빈과 토마스 사이가 안 좋은데, 토마스가 사람들에게 '아, 앨빈은 절 절대 이해 못했을 거예요'라고 하잖아요? 왜 이해 못했을 거라고 생각할까요. 설명해주면 앨빈도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토마스가 완전히 변해버린 거죠. 앨빈의 크리스마스 편지들에 답장도 안 해주잖아요." ⓒ 곽우신


토마스의 죄책감 기저에는 앨빈에 대한 미안함이 깔려 있다. 토마스가 쓰는 이야기들은 앨빈으로부처 시작됐다. 앨빈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에서, 앨빈은 토마스를 위해 생일선물로 책 한 권을 골라준다. <톰 소여의 모험>. 그 책을 받고 나서 톰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1876년이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 한 권 덕분에 1875년보다 훨씬 따뜻하고 좋았던 것처럼, 그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작가가 되기로 했다.
 
토마스는 앨빈이 해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 앨빈과 함께 경험한 시간들에서 소재를 얻었다. 토마스의 슬럼프도 앨빈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자신이 상을 받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앨빈의 이름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이 이야기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되뇐다.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정확하게 알고 있죠. 사실 수상소감 때 앨빈 이름을 얘기하고 싶은데…. 그 순간, 앨빈을 얘기하는 게 이 이야기가 자기 게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 거죠. 물론 내가 쓴 글이지만, 소재가 내 게 아니지 않나? 가령 앨빈 이름을 얘기했을 때,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작가에게 '어, 그 사람 도대체 누구죠?' '소재를 제공한 사람인가요?' '그럼 네 글이 아니잖아!'라고 하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말이죠.
 
그때의 토마스는 진짜 막혀 있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진짜 오로지 성공만 바라보고, 자기도 혼자 쓴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지만 '전부 나 혼자 썼어' '내 머리에서 나왔어'라고 계속 강조하죠. 하지만 이 글의 소재는 우리 것이라는 걸, 우리가 함께 나눴던 시간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걸 톰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걸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던 거죠.
 
사실 토마스가 앨빈의 글을 훔쳐서 책을 낸 게 아니잖아요. <레밍턴 선생님의 할로윈 파티> 역시 톰이 앨빈의 모습을 보면서 쓴 거고, <나비>도 앨빈이 그냥 해준 말을 듣고 톰이 쓴 거잖아요. '내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줄게'라고 앨빈이 얘기해준 걸 톰이 그대로 옮겨 적은 게 아니잖아요. 앨빈의 모습을 보면서, 앨빈이 해줬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걸 소재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죠. 모든 소재는 다 그렇게 얻어지거든요. 어떤 작가가 본인의 상상력만으로 소재를 만들어요. 그러면 사실 좋은 글을 쓸 수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토마스는 글을 잘 쓴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코너로 몰렸을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죠."

 
하지만 앨빈은 한 번도 토마스를 원망하지 않았다. 토마스가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도, 자신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앨빈과 토마스가 멀어지게 된 건. '짜부시켜도 되는 자그마한 벌레' 사건 때부터였을까. 앨빈을 향해 도시로 오라고 했던 약속을 직전에 토마스가 취소했을 때였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상상도 했어요. 실제로 앨빈일까? 벌어졌던 일은 앨빈이지만 중간중간 얘기해주는 게 앨빈일까? 사실은 앨빈이 아니라 제 기억 속의 어떤 걸 떠올리는 거잖아요. 어디로 가보지? 만약에 진짜, 어디부터 시작해야 되지? 11살부터 가보자. 12살, 재밌었지. 근데 이게 아니야. 우리가 왜 이렇게 멀어졌지? 우리가 갈라진 게 언제였지? 14살 때였나? 그때부턴가? 나 답답해했지. 아니야, 그러면서도 재밌게 놀았어.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앨빈이 천사 클라렌스처럼 진짜로 나타나서 같이 기억을 찾는 게 아니잖아요. 토마스가 그렇게 느낄 순 있겠지만, 사실은 토마스 안에서 혼자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토마스가 떠올리는, 토마스가 상상하는, 토마스가 바라보는 앨빈인 거죠. 앨빈이 상처 받은 기억들은, 사실 토마스가 상처를 준 기억들이에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도 토마스의 정서가 더 보여야 해요."

 

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강필석과 토마스의 비슷한 점? "저는 그래도 제 주변을 잘 챙기고, 소중한 걸 잊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5년이 지나고 인터뷰할 때는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게 토마스 같지 않나요? (웃음) 잘 챙기고 있을 리가 없지…. 연애도 안 하고 있지, 연애하고 빨리 결혼도 하고 이래야지 잘 챙기는 건데…. 말하고 싶지 않은 거죠. 토마스같이. (웃음)" ⓒ 곽우신

 
앨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앨빈은 아버지의 송덕문을 써달라고 토마스에게 부탁했다. 신문 부고란에 토마스 위버가 송덕문을 한다고 광고까지 냈다. 토마스는 자신이 보기에 멋진, 위대한 시 한 편을 인용하는 것으로 송덕문을 대신하려 한다. 앨빈은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실망하고 만다.
 
"작품에서 처음 앨빈이 나타났을 때, 그게 톰의 머릿속에 앨빈이 처음 등장한 게 아니거든요. 앨빈은 계속 나타났겠죠. 뭐만 하면, 글을 쓸 때도 툭툭 나타나고, 아마 앨빈이 살아있을 때도 계속 나타났을 거예요. 토마스한테 앨빈은 뮤즈이면서도 그게 너무 싫은 느낌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무의식에 앨빈은 계속 나타나는데…. 사실 앨빈과의 좋은 추억들을 막 얘기하면서 토마스도 같이 신나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면 '아니야. 아니야'라며 부정하죠.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기억들을 보면서 '어, 내 모습이 왜 저랬지?'하고요.
 
앨빈 아버지를 위한 송덕문을 읽어주는 장면도, 현실에서는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부정하잖아요. 영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정말 유명한 시였다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라고 해요. 그런데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본인도 알잖아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알아요. 하지만 그건 현재의 톰이 되돌아볼 때의 관점이고, 당시의 톰에게는 최선을 다한 걸 수도 있잖아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패닉 상태였으니까.
 
최선을 다했지만 이게 최고가 아니라는 걸 토마스는 알고 있어요.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니까 그게 강력한 자기방어로 드러난 거죠. 거기서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이 대사가 당시의 토마스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인 것 같아요. 둘이 싸우고 있는데 '조용히 해, 사람들이 보잖아'라고 말하는 대사에 앨빈은 '상관없어!'라고 얘기하죠. 뭐가 중요해요, 둘 사이인데. 둘 사이에 지금 너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든 말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하지만 그때의 토마스는 앨빈과의 문제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훨씬 더 중요했죠. 그렇기 때문에 앨빈 아버지에 대해 절대 하지 말아야 될 말도 막 해버리고요."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 정말 아름답지 않니?
  

유명 작가 토마스 위버가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토마스 위버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을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 강필석은 이번 시즌에 토마스 위버를 세 번째로 만나 연기하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동시에 그만큼 무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 보았다.

▲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 "바빠서, 빨라서 놓쳤던 것들을 챙겨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아, 정작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진 않나? (웃음) '야, 네 시계가 제일 빨라'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기본적으로 빠른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약간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건데. 그래서 그 바쁜 와중에도 그냥 게으르게 사는 것 같아요." ⓒ 곽우신

 
앨빈이 상처받을 이야기를 쏟아내고, 앨빈이 자기 대신 조문객들 앞에 나서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토마스는 지켜봤다. 그때서야 그는 무언가를 하나 깨닫는다. 혹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외면하고 있던 것을 마주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앨빈이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을 때 그는 또 다른 하나를 깨닫는다. 아니 이것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 해왔던 건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 토마스는 되돌아온다. 앨빈은 왜 뛰어내렸을까. 앨빈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정말로 뛰어내린 걸까?
 
"엄청난 깨달음을 순간 받는 적도 있고, 서서히 내가 이렇게 알아가다가 마지막에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런데 '깨닫는다'라고 하기에는 망치를 맞은 것처럼 깨달은 건 또 아니거든요.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이에요. (웃음)
 
사실 앨빈은 토마스가 원하는 그 답을 말해주지 않거든요. 앨빈이 'This is it(이게 전부야)'에서 '너 한번 생각해봐'라고 하잖아요. 톰은 앨빈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사차원 또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알고 있었잖아요. 앨빈도 톰처럼 똑같이 다 알고 있었어요. 앨빈 입장에서는 톰이 멍청하고 바보 같다는 걸 알고 있어요. 되게 놀랍더라고요. 톰은 앨빈이 그냥 평범하지 않은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랑 아예 생각이 다르고 대화조차 안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앨빈의 대답은 톰에게 두 가지를 주는 것 같아요. 하나는 '내가 어떻게 됐는지가 사실 톰, 너한테 중요하진 않아. 나는 네가 더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느낌을 확 줘요. 그런데 'I didn't see Alvin(그때 난 보지 못한거죠)'에서 토마스도 이미 알아버렸잖아요. 인정을 해버리잖아요. 앨빈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였는지…."

 
우리는 다들 그런 식이다. 소중한 친구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 친구보다는 나 자신을 앞세울 때가 많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모나고, 때로는 친구를 귀찮아한다. 반대로 때로는 이타적이고, 때로는 둥글고, 때로는 친구를 걱정하며 그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실수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가장 소중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알지 못하는 우리들. 여러 관객이 순수하고 따뜻한 앨빈을 바라보며 치유를 받는다. 그 '바라봄'은 사실, 현실적인 토마스의 시선일 때가 많다. 도시로 떠난 토마스와 지금의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겹쳐있으니까.
 
"저는 사실 앨빈보다 토마스가 훨씬 이해가 되고 이입이 되거든요. 토마스는 우리랑 너무 가까운 사람이에요. 관객 분들도 토마스를 통해서 우리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모습을,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주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의 소중함을 얼마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그런 순간들이 되게 많거든요.
 
우리는 훨씬 더 빨라지고 편리해졌는데 왜 그 전보다 훨씬 바빠졌을까? 우리는 여유롭게 살려고 모든 것들을 빨리 만드는데, 왜 우리는 계속 바쁘다라는 말을 할까? 토마스가 딱 그랬을 것 같아요. '바빠' '시간 없어' 앨빈의 시계와 토마스의 시계는 완전 달랐을 것 같아요. 저희들도 그걸 모르고 있지 않잖아요. 알고 있지만 하지 못하는 거죠."

 
시간이 왔다. 앨빈으로부터 제일 궁금했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대신 오랫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눈 속의 천사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앨빈과 작별한 토마스는 다시 송덕문을 쓰기 위해 펜을 잡고 있던 그 단상 앞에 섰다. 토마스는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며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앨빈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라고. 토마스가 조문객 앞에서 하고 싶었던 그 하나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다 얘기했겠죠, 다. 여태까지 내가 감추려고 했던 것들, 모든 내 이야기의 출발은 앨빈이었고, 나한테 너무 소중한 친구였고,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송덕문을 못 쓴 거지, 인정하면 사실 다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잖아요.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다 있는데 왜 그걸 꺼내려고 하지 않니?'라고 앨빈이 말했잖아요. 그 몇 천 개의 이야기를 해주었겠죠."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강필석 프로필 포스터

▲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강필석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단순히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는 시간이 됐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가장 핵심적인 정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내린 결론은 "잊고 있었거나, 잊은 척 애썼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그래서 "잊지 말아달라고 하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오는 2월 17일까지 서울 백암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 (주)오디컴퍼니

강필석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토마스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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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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