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영화 포스터

▲ <리벤지> 영화 포스터 ⓒ (주)컴퍼니 엘


돈 많은 유부남 리처드(케빈 얀센스 분)는 내연녀 제니퍼(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 분)와 사막 한복판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즐긴다. 그런데 리처드와 사냥을 함께 하기로 했던 친구 스텐(빈센트 콜롬보 분)과 드미트리(기욤 부쉐드 분)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다. 네 사람이 파티를 즐긴 다음 날, 스텐은 리처드가 사냥 등록 때문에 잠시 별장을 비운 틈을 이용하여 제니퍼를 강간한다. 같은 곳에 있던 드리트리는 못 본 척한다.

돌아온 리처드에게 제니퍼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리처드는 도리어 제니퍼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한다. 리처드는 제니퍼가 받아들이지 않자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사고사로 위장하려 한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제니퍼는 세 남자를 하나씩 처단하기 시작한다.

결이 다른 복수

연말이 되면 많은 영화 매체와 평자가 '올해의 영화'를 꼽는다. 그중에서 '2018년 호러 영화 베스트'에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강간과 복수를 다룬 프랑스 영화 <리벤지>다.

1972년 <왼편 마지막 집>과 1978년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후 강간과 복수로 이뤄진 영화는 '리벤지 필름'이란 장르를 이루었다. 대표작으론 미국의 <복수의 립스틱>(1981), 일본의 <프리즈 미>(2000), 유럽의 <호라>(2009)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미>(1985)와 <오로라 공주>(2005), 최근엔 <언니>(2018)가 나왔다. 이미 많은 리벤지 필름이 나온 상태에서 <리벤지>는 무엇을 보여주어 호평을 얻었을까?
 
 영화 <리벤지>의 한 장면

▲ <리벤지> 영화의 한 장면 ⓒ (주)컴퍼니 엘


<리벤지>의 이야기는 '강간을 당한 여성이 직접, 또는 가족이 나서서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장르의 일반적인 전개에 충실하다. 그러나 여성 감독의 시각으로 변주를 시도하여 여타 리벤지 필름과 결을 달리한다.

보통 리벤지 필름은 주인공이 성적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지나치리만치 길게, 그리고 자세히 보여주곤 한다. 여성이 처한 폭력을 고발하겠다는 영화가 도리어 강간당하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리벤지>는 강간 장면의 연출에 주의를 기울여 선정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영화는 강간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단지 소리를 들려줄 뿐이다. 그 소리는 범죄를 모른 척 외면하는 드미트리가 TV의 볼륨을 크게 틀면서 묻힌다.
 
 영화 <리벤지>의 한 장면

▲ <리벤지> 영화의 한 장면 ⓒ (주)컴퍼니 엘


<리벤지>의 전개는 현실과 거리를 둔다. 나뭇가지에 복부를 관통당하는 상처를 입은 여성이 말도 안 되는 응급 처치를 통해 살아난다는 설정 자체가 의학 상식과 거리가 멀다.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것도 여성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총과 칼로 가해자들을 응징한다는 전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비현실의 화법으로 현실을 그린다. 등장인물은 제니퍼, 리처드, 스텐, 드미트리까지 4명에 불과하다. 공간 역시 일상과 거리를 둔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리처드는 남성이 가진 돈과 권력, 힘을 의미한다. 스텐은 범죄의 가해자이고 드미트리는 방관자다. <리벤지>는 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폭력을 겪는 여성의 심리적, 사회적 상황인 셈이다.

제니퍼를 관통한 나뭇가지는 남근을 나타낸다. 제니퍼는 남근이 가한 상흔을 스스로 치료하며 신화의 인물, 영화 속에선 독수리 문양을 갖고 부활한다. 이런 전개를 <람보>처럼 받아들이면 황당하다고 느낄 테지만, <에이리언>으로 생각한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리벤지>는 복수를 보여주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상징과 은유로 쓴 여성의 다시 태어남이자 생존기다.

패배하는 남성
 
 영화 <리벤지>의 한 장면

▲ <리벤지> 영화의 한 장면 ⓒ (주)컴퍼니 엘


<리벤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리처드가 알몸 상태로 제니퍼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던 장르에서 남성이 생식기를 드러내고 싸우는 광경을 만나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다. 연출을 맡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리처드가 알몸으로 제니퍼와 싸우도록 연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권력을 가진 리처드는 제니퍼와 대결에서 이길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 처한다. 둘째, 영화에서 노출은 여자의 몫인 경우가 많은데 뒤집고 싶었다. 셋째, 영화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등장인물도 단지 두 명이고 동선도 한정적이다.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마지막 액션신이 참신하고 강렬하길 바랐다"
 
 영화 <리벤지>의 한 장면

▲ <리벤지> 영화의 한 장면 ⓒ (주)컴퍼니 엘


<리벤지>의 첫 장면엔 헬기에 앉은 리처드와 제니퍼가 등장한다. 이때 화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인물은 리처드다. 제니퍼는 주변에 머물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선 다르다. 화면을 온전히 차지한 인물은 바로 제니퍼다. 그리고 제니퍼의 몸은 '대상'에 머물던 처음과는 다른, '주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부여된다.

강간과 복수라는 위험천만한 소재로 가득한 리벤지 필름에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그녀만의 멋진 여성 복수극이자 근사한 페미니즘 영화를 완성했다. 2018년 돋보이는 데뷔작 중 한 편이다. 제50회 시체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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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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