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기고 당연히 우승할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것이 축구의 매력이다. 정말로 영원한 승자는 없는가 보다. 우리 여자축구계에 믿기 힘든 이변이 일어났다. 한국 여자축구 주도권을 5년간 틀림없이 휘어잡았던 인천 현대제철이 경주에서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창단 2년밖에 안 된 팀에게 완패한 것이다. 이를 두고 지각 변동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문희 수석코치가 이끌고 있는 경주 한수원 여자축구팀이 2일 오후 7시 경주에 있는 황성3구장에서 벌어진 2018 WK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 인천 현대제철과의 홈 경기에서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기적의 우승을 꿈꾸게 됐다. 

압박과 조직력으로 챔피언 무너뜨려

우리 여자축구 판도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인천 현대제철이 그리 어렵지 않게 WK리그 챔피언에 오르며 6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몇 년 전에는 이천 대교라는 듬직한 라이벌 팀이 있었기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이라도 흥미진진했는데 지금은 그 팀도 해체된 터라 그들의 적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11월 첫 금요일 경주의 저녁은 공기부터 달랐다. 수원 도시공사(3위, 14승 8무 6패 48득점 34실점)와의 플레이오프를 2-0으로 이기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경주 한수원(2위, 16승 5무 7패 54득점 35실점) 선수들의 눈빛부터 달라진 것이다. 경기 내내 높은 위치부터 끈질긴 압박 축구를 펼치며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을 것 같은 인천 현대제철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두 팀이 맞붙은 최근 경기 기록이 지난 9월 14일 2018 WK리그 22라운드 '경주 한수원 1-5 인천 현대제철'로 남아있고, 시즌 네 차례 마주친 기록조차 3승 1무(9득점 3실점)로 밀리지 않았던 인천 현대제철이었기에 이 챔피언결정 1차전 양상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경주 한수원은 세 명의 외국인 선수들 활약이 눈부셨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두 공격수(나히, 이네스)는 역습이 전개될 때마다 놀라운 스피드로 인천 현대제철 수비수들을 흔들어 놓았고 일본인 미드필더 다나카 아스나는 특유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중원을 주름잡았다. 

경기 시작 후 8분만에 왼쪽 날개공격수 나히가 가로채기 후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인천 현대제철 베테랑 골키퍼 김정미를 긴장시킨 순간부터 경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는 34분에 이 경기 가장 결정적 장면이 나왔다. 홈 팀 경주 한수원이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미드필더 김아름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인천 현대제철 미드필더 이소담의 팔에 맞았는데 마침 그 자리가 페널티 지역 바로 안쪽으로 판명된 것이다.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은 핸드 볼 반칙 자리가 박스 밖이라고 주장했지만 1부심과 상의하며 거듭 확인한 오현정 주심은 11미터 지점을 분명히 가리켰다.

그리고 다나카 아스나의 페널티킥은 야속할 정도로 정확하게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인천 현대제철 골키퍼 김정미가 킥 방향을 예측하고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막아내기 어려운 구석 깊은 곳이었다. 

후반전 쐐기골까지 놀라웠던 경주 한수원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까지 6년 연속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것이라 믿었던 인천 현대제철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기록(21승 6무 1패, 84득점 21실점)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팀이었다. 올해 한 번밖에 없는 패배는 지난 5월 18일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6라운드 화천 KSPO와의 0-1 경기였다. 

그러니 이 경기 후반전에 인천 현대제철이 다시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경주 한수원의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에 둔 압박 축구는 좀처럼 인천 현대제철의 슛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경주 한수원은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오히려 추가골까지 만들어냈다. 압박 전술의 효과가 날카로운 역습으로 빛난 것이다. 42분, 이금민의 오른쪽 크로스가 인천 현대제철 골문 앞으로 날아왔을 때 경주 한수원 왼쪽 날개공격수 나히가 끈질긴 몸싸움을 펼치며 상대 수비수 김도연의 자책골을 이끌어냈다.

아무리 홈 경기라지만 최고의 팀 인천 현대제철을 맞이하여 2-0으로 전반전을 끝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인천 현대제철 최인철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왼쪽 날개 공격수 자리에 한채린 대신 박희영을, 센터백 심서연 대신 골 넣는 수비수 임선주를 들여보내며 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경기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경주 한수원 선수들이 놀라운 체력을 자랑하며 높은 수위의 압박 전술을 풀어주지 않은 것이다. 72분에 돌이킬 수 없는 수비 실수까지 이어지며 인천 현대제철은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경주 한수원 공격형 미드필더 김아름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인천 현대제철 센터백 김도연의 공을 가로채 혼자서 공을 몰고 골문으로 달려간 것이다. 김아름의 첫 번째 슛은 베테랑 골키퍼 김정미가 각도를 줄여 기막히게 막아냈다. 하지만 곧바로 높게 뜬 그 공을 향해 김아름의 헤더 슛이 적중했다. 

정규리그도 아닌 챔피언결정전에서 이처럼 3-0이라는 점수판이 만들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챔피언 인천 현대제철의 실질적인 유효 슛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반전에 인천 현대제철의 브라질 출신 날개 공격수 따이스의 대각선 슛이 골문 왼쪽으로 아깝게 벗어난 장면은 있었지만 국가대표 골키퍼 윤영글이 지키고 있는 경주 한수원 골문을 아찔하게 위협한 인천 현대제철의 슛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지난 9월 중순 쇄골 골절상을 입고 시즌을 마감한 인천 현대제철 간판 골잡이 비야의 빈 자리가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제 두 팀은 오는 5일 오후 7시 장소를 인천 남동구장으로 옮겨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1차전 3-0 기록이 결코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인천 현대제철의 이번 시즌 득점 기록만 놓고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계산기 두드릴 일 없이 그녀들은 정확하게 경기당 3골(28경기 84득점)을 터뜨릴 줄 아는 팀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4일 정설빈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경주 한수원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무려 5-1로 이긴 것을 떠올리면 또 하나의 놀라운 역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경주 한수원의 끈질긴 압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년 6월 7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윤덕여 감독도 경주 한수원의 돌풍을 눈여겨보고 있다. 역습에 특화된 이금민의 공간 패스와 공격형 미드필더 김아름의 뛰어난 집중력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2018 WK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 결과(2일 오후 7시, 황성 3구장-경주)

★ 경주 한수원 3-0 인천 현대제철 [득점 : 다나카 아스나(38분,PK), 김도연(42분,자책골), 김아름(72분)]

◎ 경주 한수원 선수들
FW : 나히(87분↔김인지), 이네스(90분↔정지연), 이금민
MF : 박예은, 다나카 아스나, 김아름
DF : 이은지, 정영아, 손다슬, 박세라
GK : 윤영글
경고 - 나히(43분)

◎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
FW : 정설빈
AMF : 한채린(46분↔박희영), 이세은, 이소담(58분↔후카), 따이스
DMF : 이영주
DF : 장슬기, 심서연(46분↔임선주), 김도연, 김혜리
GK : 김정미
경고 - 이소담(45+2분)

◇ 2018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일정
- 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오후 7시, 인천 남동구장
☆ 인천 현대제철 - 경주 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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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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