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게스트>의 한 장면

▲ <더 게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임신부인 세라(레이첼 니콜스 분)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남편과 청력을 잃는다. 출산이 임박한 비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밤. 갑작스럽게 벨이 울리고 어떤 여성(로라 해링 분)이 문을 두드린다. 그녀는 차가 고장이 나서 전화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낯선 이를 집안에 들이기 싫은 세라는 남편이 잠들었다고 거짓말을 둘러댄다. 그러자 의문의 여인은 세라의 이름과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문을 열라고 고함친다.

시대를 불문하고 리메이크 영화는 계속 나온다. 리메이크의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오션스 일레븐>(1960)을 리메이크한 <오션스 일레븐>(2002)은 시대에 맞춘 화려한 캐스팅으로 거듭났다. <스카페이스>(1932)와 <진정한 용기>(1969)를 다시 만든 <스카페이스>(1983)와 <더 브레이브>(2010)처럼 원작이 오래되어 더는 신선하지 않을 때 새 판본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괴물>(1951)과 <플라이>(1958)는 기술과 주제의식과 만나 <괴물>(1982)과 <플라이>(1986)로 바뀌었다. 대부분 의미 없는 다시 만들기에 그치는 '리메이크' 계보에서 이들처럼 원작과 맞먹거나, 또는 넘어서는 성과를 일군 작품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고유한 '스타일'이나 '해석'이 존재했다.

스페인 영화 <더 게스트>는 2007년에 발표한 동명(<더 게스트>의 원제는 <인사이드>)의 프랑스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런데 원작 <인사이드>는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 호러 장르의 팬들에겐 전설 같은 작품 중 하나가 <인사이드>다.
 
 영화 <더 게스트>의 한 장면

▲ <더 게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2000년대에 개봉한 프랑스 호러/스릴러 영화 가운데 강한 성적 묘사, 화면을 피로 물들인 폭력성, 정신병 등을 드러내며 사회적 통념과 금기를 넘어섰던 작품들을 하나의 경향으로 묶어 '뉴 프렌치 익스트레머티(New French Extremity)'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엑스텐션>(2003), <뎀>(2006), <프런티어>(2007),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이 있다.

<인사이드>도 '뉴 프렌치 익스트레머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신체가 잘려나가거나 신체 내부의 장기를 외부로 드러내는 등의 표현을 통해 전율과 공포를 창출하는 '고어 영화'에서 <인사이드>는 여전히 최고 수위를 자랑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프랑스 호러 영화의 절정기에 나온 작품, 그것도 고작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유는 무엇일까? 각본에 참여한 자움 발라구에로(<알.이.씨>시리즈의 각본과 연출로 유명하다)는 많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버전을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한다. 원작 <인사이드>는 소수의 고어 영화팬들이나 볼 법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연출은 <키드넵: 한밤의 침입자>(2010)와 <최후의 인류>(2015) 등으로 친숙한 스페인의 미겔 앙헬 비바스 감독이 맡았다. 그는 많은 사람이 원작에서 무엇을 바꾸었는가를 묻곤 하지만, 자신은 오로지 "내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고 강조한다. 줄곧 '가족'이란 주제에 천착했고 <더 게스트>에서도 세라가 여성에서 어머니로 변하는 과정에 집중했다고 부연한다. 그는 <인사이드>를 <더 게스트>로 옮기며 '모성'에 주목한 것이다.
 
 영화 <더 게스트>의 한 장면

▲ <더 게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더 게스트>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임산부와 그녀를 죽이려는 정체불명의 여인이란 원작의 전개를 그대로 가져왔다. 변화도 엿보인다. <인사이드>는 존 카펜터의 '살인마'와 다리오 아르젠토의 '색감과 고양이'의 영향을 깊이 받았었다. <더 게스트>는 <이창>과 <싸이코>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스타일을 흠모한다.

세라가 청력을 잃어 보청기를 사용한다는 설정을 추가하여 사운드의 효과를 노렸다. 원작이 밀실 공포증을 유발케 할 정도로 집 안에만 머물렀다면 <더 게스트>는 무대를 집 바깥까지 확장한 점도 눈에 띈다.

가장 큰 변화는 폭력의 수위가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더 게스트>는 머리통을 날리고 배를 갈라버리던 <인사이드>의 참혹함과 거리가 멀다. 평범한 호러 영화 수준의 피를 흘릴 뿐이다. 말하자면 '제한 상영가' 영화가 '미성년자 관람 불가'로 바뀐 셈이다.

<더 게스트>는 만듦새로 보면 크게 지적할 부분은 없다. 카메라, 공간 구성, 연기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엔딩도 바꾸어 자신만의 길도 모색했다. 하지만 "왜 리메이크를 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영화 <더 게스트>의 한 장면

▲ <더 게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인사이드>는 '이야기'를 중심에 둔 영화가 아니었다. 전개 자체로 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다. 서사의 빈칸을 채운 것은 자궁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연출, 베아트리스 달의 광기 어린 연기, 피가 마구 분출하는 엄청난 폭력성이었다. 이런 것들을 스타일로 묶어 관습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기에 찬사를 받았다.

<더 게스트>는 이야기에 여러 살을 붙였지만, 감독이 강조한 모성은 와 닿질 않는다. 도리어 의문의 여인을 그저 미친 여자로 묘사한 방식이 안타깝다. <인사이드>의 예상치 못한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더 게스트>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새롭게 내놓은 엔딩은 너무나 관습에 충실해서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더 게스트>는 공간, 연기, 폭력성도 평범해졌다. 살인마가 집을 공격하는 흔한 호러물로 전락한 모습이다. <더 게스트>는 (스페인의 힘을 빌린) 영어 버전과 낮아진 등급 외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을 리메이크한 <마터스>(2015)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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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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