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 티캐스트


대부분 가족이란 게 혈연으로 이뤄진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여기 그렇지 않은 가족이 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맺어지기보다는 그저 오갈 데 없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그들은 가족이다. 할머니 한 분에 젊은 부부와 아이, 그리고 배다른 처제라고 말하는 여성까지 외형적으로는 다정한 가족처럼 보인다. 여기에 집 밖에서 외로이 서 있던 5살 소녀까지 가족으로 함께 지내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들의 생계유지 유단은 일반적인 가족과는 다르다. 부부가 일을 다니지만 주로 좀도둑질을 통해 생활용품을 구하고, 할머니의 연금이 주요 생활비로 쓰인다. 처제는 유흥업소에 다니는데 형부나 언니보다는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더 각별한 관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이 가족은 어떻게 만나게 됐고, 왜 같이 사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제목 그대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어느 가족>은 모두가 남남이지만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할머니는 외롭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고 젊은 부부는 할머니의 연금 덕을 보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좀도둑질을 하면서도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를 보듬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어 보이면서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손쉽게 하는 이들 가족은 여러모로 의아스러울 뿐이다.

전통적인 가족관을 벗어난 '어느 가족'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가족의 의미에서 비켜선다. 결론적으로 영화가 다루는 것은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재구성이다. 굳이 혈연이나 혼인관계가 아니더라도 같이 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누구나 가족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혈연으로 구성되는 가족의 의미에 감독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고, 고정화된 가치관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과 맥을 같이 한다. 2013년 개봉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오랫동안 키워온 아들이 병원의 잘못으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기른 아이와 낳은 아이가 제 위치로 돌아가며 혼란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2015년 개봉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세 딸이 재혼한 아버지가 낳은 이복 여동생이 외톨이가 될 것 같은 상황을 보고 같이 살자고 제안해 네 자매가 함께 사는 이야기다.

핏줄이 아니었지만 긴 시간 키워온 아이는 남이 될 수 없었다. 친자만큼이나 소중한 가족이었다. 세 자매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동생을 잘 챙기며 한 가족으로 평온한 삶을 이어간다. 물론 갈등과 번뇌가 있었고, 고민이 필요했지만 존중과 배려, 끈끈한 정은 여러 난관을 뛰어 넘게 했다.

<어느 가족>도 가족의 재구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좀도둑질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살지라도 엄연히 존중받아야 할 가족이라는 것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일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베 정권과 우익의 인식과는 결을 달리한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그의 저서와 강연 등을 통해 "조부모와 부모 아이가 함께 사는 가족이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일본 전통적인 가족관을 강조하는 일본 보수단체의 시각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어느 가족>은 핏줄로 이어진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강조하는 현 아베 정부를 반박하는 성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아베 총리는 축하전화를 하지 않았고, 감독 역시도 일본 정부의 축의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영화에 대해 일본 우익이 불편해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혈연이 아닌 공동체의 가능성

 <어느 가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어느 가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티캐스트


굳이 일본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현실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함께 사는 성소수자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학대를 받아 집에서 내쳐지는 아동들, 혈연이라지만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으로 가족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경우 등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비록 혈연은 아니더라도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공동체로 살아갈 때, 충분히 가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온 "낳았다고 다 엄마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감독이 이 시대 전통적 가족관을 강조하는 시선에 던지는 물음이다. <어느 가족>이 남기는 여운으로 인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더 넓게 고민해보게 되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7월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족이란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기에 억압적으로 가족에 대해 규정하지 않는 게 좋은 자세"라며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관련 기사 : '어느 가족' 마지막 장면에 숨겨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한 수').

<어느 가족>은 지난 7월 26일 개봉 후 관객들의 호평 속에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개봉 7일 만인 1일 6만 관객을 넘어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2만 6천)와 <바닷마을 다이어리>(10만 2천)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기대되고 있다.

칸영화제 수상과 기존 작품들을 통해 국내에 형성된 신뢰, 감독을 지지하는 관객층, 그리고 영화적 완성도 등이 흥행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300만 관객이 들었을 만큼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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