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지난 6월 10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에서 김원효가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KBS


개그맨 김원효는 지난 6월 17일 방송된 새 코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 복귀했다. 모니터 하나만 두고 서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탠딩 코미디' 형식을 차용했다.

"예의가 없어" 이재명 도지사의 인터뷰 발언 패러디

그가 개그소재로 삼은 것은 정치인들이었다. 개그맨보다 정치인들이 더 웃겨서 개그맨의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첫 방송에서 김원효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투쟁을 언급하며 "이 사람이 이슈를 다 잡아먹는 바람에 복귀가 늦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어 "그래서 언제 치고 들어갈까 고민하다 보니 누군가 진짜로 '치고' 들어갔다"고 김 원내대표를 폭행한 괴한을 언급했다. 일종의 언어유희였던 셈이다.

보통 이런 식이다. 실제로 공백이 있었던 김원효가 복귀를 준비하는 사이에 있었던 정치·사회의 이슈를 언급하며 '개그맨들보다 더 열심히 웃기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대한항공 '갑질' 논란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24일 방송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언급했다. PD는 김원효가 SBS 예능 프로그램 <웃찾사-레전드 매치>에 갔다가 다시 개콘으로 돌아왔던 점을 상기시키며 "그럼 이제는 tvN <코미디빅리그>로 갈 거냐"고 묻는다. 이 대목에서 김원효는 "이상하게 얘기하면 바로 끊어버릴 거다" "잘 안 들립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예의가 없어"라며 6.13 지방선거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인터뷰를 패러디했다.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김원효는 "예의가 없어"라며 돌아서 나가버렸다. ⓒ KBS


그런데 간만에 나온 <개콘>의 정치풍자 코너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반응이 심상치 않다. 김원효의 정치 개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개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부정적 댓글을 달았다. "개콘이 언제부터 정치 얘기를 했느냐" "정치색을 띤 내용은 자제해달라" 따위의 반응들이 대표적이다. 정치 풍자가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반응들을 민감하게 의식했는지 지난 1일 방송에서는 아예 정치적 이슈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을 소재로 삼았다. 직접 영상에 달린 악플들을 읽기도 했다.

정치 풍자는 안 된다고요? 약자 조롱은 괜찮나요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그런가 하면 다른 코너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10일부터 방송된 '다있Show'라는 코너에서는 24일 '흙수저'와 '금수저'를 이용한 개그를 선보였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경제적 계급이 고착화된 상황을 자조하기 위해 젊은층이 만든 신조어다. 결국 '흙수저'와 '금수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런 불평등의 문제를 꼬집는 것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다 있Show>의 방식은 달랐다. 먼저 멋지게 차려입은 금수저와 낡고 더러운 옷을 입은 흙수저가 나와, 각자의 경제적 사정을 자랑하거나 자조하는 방식의 노래를 한다. '하늘을 달리다' 멜로디에 맞춰 금수저는 "집이 너무 넓어 간신히 내 방으로 도착했을 때"라고 하면 흙수저는 "귓가에 울리는 쥐소리 바퀴벌레 발소리 그게 나의 잠자리였어"라고 노래한다. 심각해진 우리 사회 양극화를 비판하기 보다는 단순히 흙수저의 가난한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약자를 비하하는 개그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고 폐지가 논의되는 것에 비하면 '다있Show'의 흙수저 조롱은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는 모양새다. 정치 풍자보다 약자 비하에 더 관대한 한국 사회의 민낯인 걸까.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풍자가 어렵다니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를 비판하는 일부 시청자의 생각과는 달리, <개콘>은 이전에도 정치 풍자를 해 왔다. 박근혜 정권 당시 이슈를 모았던 '민상토론'과 '대통형'이 대표적이다. '민상토론'은 연예인, 특히 코미디언들이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점을 이용해 영리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풍자하는 데 성공했다. '대통형'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을 패러디하면서 '비선권력'이 존재하는 청와대를 정면 풍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는 '민상토론'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의 행정지도를 내렸다. 메르스 정국에서의 미흡했던 정부 대처를 지적했던 것을 두고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개그맨 이상훈은 어버이연합을 풍자했다가 어버이연합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뀐 뒤에는 정치 풍자가 좀 쉬워졌을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와 '다있Show' 논란이 그 대답이 될 것 같다. 시청자나 제작진, 개그맨들 모두가 이제는 정치 풍자에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약자 비하에는 조금 더 엄격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개그콘서트 #정치색 논란? #흙수저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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