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난적 보스니아를 상대로 기분 좋은 출정식을 원했던 신태용호의 계획이 틀어졌다. 제코와 퍄니치를 앞세운 보스니아는 한국 대표팀이 잊지 말아야 할 3가지 교훈을 던졌다.

지난 1일 오후 8시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초청 평가전 대한민국과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1-3 완패를 당했다. 전반 28분 선제 실점을 내줬지만 2분 뒤 이재성이 깔끔한 칩 슛으로 동점골을 만들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그러나 뜨거워진 전주성(전주 월드컵경기장 애칭)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추가 시간 선제 득점의 주인공 에딘 비슈차에게 추가골을 내준 한국은 후반 34분에는 기어코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지난 5월 28일 있었던 평가전 상대 온두라스와는 차원이 다른 보스니아 선수들의 플레이에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보스니아는 월드컵을 코 앞에 둔 신태용호에게 크게 3가지 문제점을 알려줬다.

'기성용 딜레마'

기성용 '센추리 클럽' 가입 축하하는 가족들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 하프타임에 기성용 선수의 센추리 클럽 가입 행사가 가족들의 축하 속에 열리고 있다.

▲ 기성용 '센추리 클럽' 가입 축하하는 가족들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 하프타임에 기성용 선수의 센추리 클럽 가입 행사가 가족들의 축하 속에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보스니아전을 통해 A매치 100경기 출장에 위업을 달성한 기성용은 신태용호의 핵심이다. 이날 경기에서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을 쓰리백의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한국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기성용의 수비수 출장은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4년 전 신태용 감독의 감독 대행 시절 효과를 봤던 그 전략이다. 당시 감독 대행이었던 신태용 감독은 남아메리카의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기성용 쓰리백' 카드를 처음으로 꺼냈다. 비록 승부에서는 0-1로 패했지만 세계적인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가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정도로 수비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우루과이전의 좋은 추억은 보스니아에게는 먹혀 들지 않았다. 수비수 기성용의 플레이는 준수했지만, 기성용을 보좌하는 양 쪽 스토퍼 윤영선과 오반석의 활약은 미비했다. 스피드에 약점이 있는 기성용이기에 스토퍼가 상대 공격수의 뒷공간 침투를 제어해야 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기성용을 수비수로 기용함에 따라 한국의 빌들업은 수준급이었다. 대신 기성용이 전문 수비수가 아니라는 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약점이 됐다.

여전한 기성용 딜레마다. 기성용은 어떤 포지션에서든 제 역할을 하지만 그를 안정적으로 도와줄 선수가 마땅치 않다. 기성용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을 때 그의 짝을 찾는 일은 한국 축구의 오랜 숙제다. 기성용을 아예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성용의 공격 작업에 오래 가담하면 후방 지역은 그만큼 에너지를 잃는다.

묵묵히 기성용을 지원할 '짝꿍'이 절실한 순간이다. 최근 평가전 중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박주호다. 지난 3월 있었던 북아일랜드와 경기에서 박주호는 철저히 기성용을 보좌하는 플레이로 합격점을 받았다. 무리없는 안정적인 패스와 위치 선정으로 기성용의 자유로운 플레이를 도왔다. 그 어떤 선수가 되었던 간에 월드컵 본선에서 기성용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희생'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넓은 간격

보스니아전에서 드러난 선수들 간의 '넓은 간격'은 기성용 쓰리백 카드의 실패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성용은 상대의 속도감 있는 공격에 취약하다. 기성용을 약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선수들 간의 촘촘한 간격 유지가 필수적이다. 좁은 간격이 유지되어야 상대 공격에 속도를 꺾을 수 있다.

하지만 보스니아와 경기에서 한국은 넓은 간격을 자주 노출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선제 실점 과정이 대표적이다. 보스니아의 왼쪽 측면 공격 상황에서 측면 수비수 이용과 미드필더 정우영, 구자철 사이에 넓은 공간이 형성됐다. 이를 포착한 보스니아 선수들은 빠른 2대1 패스로 측면을 완전히 허물었다. 엘다르 시비치에 발에서 떠난 크로스는 비슈차의 발을 거쳐 골로 연결됐다.

냉정하게 월드컵 무대에서 상대보다 개인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이 적에게 넓은 간격을 노출한다는 것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보스니아전과 같은 넓은 간격은 뛰어난 개인 기량을 갖춘 멕시코와 독일 선수들에게는 훌륭한 먹잇감이 될 뿐이다.

보스니아와 경기에서 발생한 넓은 간격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는 기존의 '플랜 A'인 4-4-2 포메이션이 있다. 구조적으로 4-4-2 포메이션은 좁은 간격을 항시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신태용호는 지난해 11월 있었던 콜롬비아전에서 4-4-2 포메이션을 활용해 대성공을 거둔 기억이 있다.

또한 선수들 사이에 완벽한 호흡이 요구되는 쓰리백과 달리 포백을 기반으로 한 4-4-2 시스템은 기초적인 포메이션이라 단기간에 조직력을 끌어 올리기 쉽다. 러시아 월드컵 개막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 속에 놓여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포백이든 쓰리백이든 90분 내내  넓은 간격 대신 좁은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전략을 갖추는 것이다. 

집중력 부족

보스니아전 패배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꼽히지만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는 바로 집중력 부족이다. 실점 과정 대부분에서 선수들의 집중력이 아쉬웠다. 첫 번째 실점 과정에서는 크로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흘린 김민우의 집중력이 부족했다. 분명히 걷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처가 아쉬웠다.

두 번째 실점 장면은 집중력 부족의 집합체였다. 전반 추가 시간이 끝나갈 무렵 사고가 터졌다. 후방 지역에서 하리스 두예비치가 공을 잡았는데 한국 선수들 그 누구도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두예비치는 전방으로 빠르게 달리는 비슈차에게 곧장 패스를 건넸다. 

허리 자원들이 두예비치의 패스를 넋 놓고 지켜본 것에 이어 수비수 오반석도 집중력 부족으로 비슈치의 침투를 놓쳤다. 오반석이 마크해야 할 공격수는 비슈차가 유일했음에도 비슈차의 질주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공격 작업에서의 집중력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전반 27분 손흥민이 슈팅을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패널티 박스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골문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공을 기다리는 황희찬에게 패스를 하는 대신 직접 슈팅을 시도했다. 손흥민의 슈팅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선제 골을 잡아낼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손흥민이다.

손흥민 '혼신의 힘을 다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슛을 하고 있다.

▲ 손흥민 '혼신의 힘을 다해'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 상황보다는 자신의 득점에만 집중한 우를 범한 손흥민이다. 월드컵 무대에서 선제 득점의 중요성은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한 팀의 '에이스'라면 자신의 득점보다는 팀이 처한 상황에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약체인 한국 대표팀에게 월드컵에서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득점에 가까운 기회에서 집중력을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몇 안되는 기회를 놓치면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를 뿐이다. 보스니아와 경기에서도 3골 모두 한국이 결정적인 공격 찬스를 놓친 이후에 발생했다. 공수 양면에서 집중력이 요구된다.

본선에서 만날 스웨덴을 대비해 가진 보스니아와 평가전은 한국 대표팀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주장 기성용이 말했듯이 모든 부분에서 '압도'를 당했다. 스웨덴은 물론이고 나아가 멕시코와 독일은 이보다 강하다. 남은 2주 간 보스나이전에서 드러낸 3가지 문제점을 빠르게 개선해야 할 신태용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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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전 신태용호 기성용 딜레마 넓은 간격 집중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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