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노래방을 홈구장으로 보유한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초반이 영 마음 같지 않다. 5승 12패로 시즌 개막 후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두 번이나 두 자리 승수를 올렸던 새 외국인 투수 펠릭스 듀브론트의 부진(3패 평균자책점 9.68)과 '안경 에이스' 박세웅의 늦은 합류다. 그렇다고 팀 타율 7위(.271) 팀 홈런 최하위(13개)에 머물러 있는 타선이 썩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특히 거인군단 부동의 4번타자 이대호의 부진은 안타까움을 넘어 당황스러운 수준이다. KBO리그 10개 구단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 25억 원을 받는 이대호는 올 시즌 17경기에서 타율 .270 1홈런 8타점 3득점 득점권타율 .214로 매우 실망스런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대역전승을 만들어낸 지난 13일 KIA타이거즈전에서 3안타 3타점을 몰아치며 끌어올린 기록이다.

하지만 롯데에는 부진한 4번 타자 이대호 대신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활약으로 조원우 감독과 롯데 팬들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 선수가 있다. 타석 수는 팀 내 10위(32타석)에 불과하지만 팀 내 타율 1위(.391), 홈런 공동 1위(3개), 타점 3위(10개), OPS(출루율+장타율) 1위(1.401)를 달리고 있다. 작년에 열렸던 2차 드래프트 이적 선수 중 최고의 성공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이병규가 그 주인공이다.

LG가 자랑하는 육성 선수 신화

희생플라이 치는 이병규 11일 오후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5회말 무사 2, 3루에서 롯데 이병규가 1타점 희생플라이를 쳐내고 있다. 2018.4.11

▲ 희생플라이 치는 이병규 11일 오후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5회말 무사 2, 3루에서 롯데 이병규가 1타점 희생플라이를 쳐내고 있다. 2018.4.11 ⓒ 연합뉴스


대구 출신의 이병규는 경북고 졸업 후 한양대에 진학해 대학야구 최고의 타자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정작 프로 스카우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할 4학년 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외야수로는 신장(178cm)도 작아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이병규는 2006년 LG트윈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당시만 해도 '적토마' 이병규와 이름이 같다는 것 외에는 LG 팬들에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병규는 입단 초기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올렸지만 당시 LG의 외야에는 박용택, 이대형(kt 위즈), 이택근(넥센 히어로즈) 같은 쟁쟁한 외야수들이 즐비했다. 결국 이병규는 프로 입단 후 4년 동안 1군에서 단 5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평범한 2군 선수에 불과했던 이병규가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중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박종훈 감독(현 한화 이글스 단장)이 부임한 2010년부터였다.

이병규는 2010년 LG의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103경기에 출전해 타율 .300 12홈런 53타점 57득점이라는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여기에 육성선수 출신이라는 스토리 라인이 더해 지면서 몇몇 LG팬들은 "두산에 김현수가 있다면 LG에는 이병규가 있다"고 이병규의 활약을 유독 자랑스러워했다(지금은 김현수가 LG에 있고 이병규는 롯데로 떠났다). 하지만 이병규는 고질적인 무릎부상 때문에 LG구단과 팬들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2011년 무릎 부상으로 단 33경기 출전에 그친 이병규는 2012년 .318의 고타율을 기록하고도 69경기 출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던 2014년, 이병규는 실로 오랜만에 건강하게 시즌을 치렀고 116경기에서 타율 .306 16홈런 87타점으로 맹활약하며 LG의 4번타자로 우뚝 섰다. 건강한 이병규가 얼마나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병규는 2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던 2015년 옆구리 부상에 시달리며 70경기 만에 시즌을 접었고 2016년에는 103경기에 출전하고도 타율 .272 7홈런 37타점이라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10월 8일 '적토마' 이병규의 은퇴 경기에서는 이병규의 현역 마지막 안타 때 홈에서 아웃당하며 레전드의 마지막 타점 기록을 날리기도 했다(당시 이병규는 2사 후였음에도 베이스러닝 도중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며 LG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부진하던 롯데 타선을 살린 '건강한 이병규'의 가치

이병규 3점 홈런 13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9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롯데 이병규가 3점 홈런을 치고 홈으로 향하고 있다. 2018.4.13

▲ 이병규 3점 홈런 13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9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롯데 이병규가 3점 홈런을 치고 홈으로 향하고 있다. 2018.4.13 ⓒ 연합뉴스


이병규는 남다른 각오로 2017 시즌을 준비했지만 LG는 2016 시즌을 통해 채은성, 김용의, 이천웅, 이형종, 문선재, 안익훈, 임훈 등 탄탄한 외야 라인을 구축했다. 수비에서 큰 장점이 없었던 이병규는 작년 시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19경기에서 타율 .205 무홈런 5타점에 그쳤다. 그리고 LG의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사실 롯데에서도 이병규의 입지는 썩 탄탄하지 않았다. 롯데의 외야에는 이미 슈퍼스타 손아섭과 지난 3년 동안 타율 .310 373안타를 기록했던 교타자 김문호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지난 1월 검증된 중장거리 좌타자 채태인이 사인앤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에 합류하면서 1루수와 지명타자의 정원도 꽉 찼다. 현실적으로 이병규가 롯데에서 노릴 수 있는 자리는 백업 외야수 혹은 왼손 대타 요원 정도였다.

이병규는 1983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36세다. 롯데 야수들 중 이병규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이대호와 채태인뿐이다. 이병규는 이적하자마자 졸지에 외야수들 중에서 최고참이 된 것. 롯데 팬들 중에는 매년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고참 선수를 영입한 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비판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병규는 시범 경기부터 타율 .545(11타수6안타) 4타점을 기록하며 무난히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리고 이병규는 정규 시즌에서도 한정된 기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롯데가 7연패에 빠졌던 3월 7경기에서 9타수 3안타를 기록했던 이병규는 4월에 열린 8경기에서 14타수 6안타(타율 .429) 2홈런 7타점 7득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최근 4경기에서는 지명타자와 좌익수로 각 2경기씩 선발 출전하며 롯데의 주전으로 도약하고 있다.

사실 이병규는 LG시절 두 차례나 .42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선구안이 좋다. 매 타석 홈런을 노리는 거포 유형이 아님에도 탁월한 장타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병규가 LG의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이유는 'KBO리그 공식 유리몸'이라 불리는 잦은 부상 때문이었다. 현재 이병규는 자신이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누빌 때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인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 이 건강을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유지하는 것이 이병규의 가장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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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이병규 빅뱅 2차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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